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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Oct 27. 2021

편하게 입고 다니고 싶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

10년 전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 상급자에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렇게 입고 출근한 겁니까?"


이렇게? 이렇게가 어떻게인데? 속으로는 대꾸하면서 그가 훑고 내려간 시선을 따라 나도 내 옷차림을 다시 훑어보았다. 겨울이라 청바지에 패딩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사실 전업 육아 3년 만에 한 출근이라 이렇다 할 옷이 없기도 했지만,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는다고 챙겨 입은 게 ‘이렇게’ 취급을 받고 말았다.


“제가 일 잘하기를 바라시나요? 옷 잘 입길 바라시나요?”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었나 보다. 지금도 저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혈기왕성하고 근자감에 가득 찬 나의 말을 듣고 그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말에 응수할 시간이 없었다. 회사에서 가장 큰 일인 사장 보고를 앞두고 있었다. 오늘 배석해야 하니 어디서 재킷이라도 빌려 입으라고 했다.  


에이 미리 말을 하지, 내가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라지만, 사장님 보고가 있다고 하면 뭐라도 걸치고 왔을 텐데, 속으로 생각하며 우리 팀 직원의 재킷을 빌려 입었다.   


내가  말도 있고 해서 진짜 열심히 일했다. 초과근무가 100시간 찍힌 달도 있어서 따로 불려 가 경고를 받기도 했다. 물론 나의 ‘열심히’는 인정받지 못했다. 옷도 제멋대로 입으면서, 일도 못하는 이 되고 말았다.


 조직에서  잘하는 기준이 달랐다. 직급에 맞게 옷을 챙겨 입는 것도 일의 일부였다. 옷이  자신의 직급이자, 현재의 실력을 상징하며,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조직의 문화와 상급자에 대한 존중이 고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옷 잘 입는 대신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몸버둥을 쳤던 100일간의 외로운 싸움 끝에 백기 투항했다. 그까짓 옷이 뭐라고. 내가 소싯적에는 옷을 좋아해서 옷가게도 하려고 했었다고, 하면서 출근 3개월 만에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신고, 재킷도  입었다.


뒤늦게 현타가 온 것이다. 굴러들어 온 돌이 맞춰야지, 하면서 빠르게 적응해갔다. 신기한 것은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나를 대하는 눈빛과 태도, 평판과 평가가 달라졌다. 직장 생활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 재미에 한동안 옷 사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다. 회사에서 좀 스트레스받은 날은 보상심리가 발동해서 옷을 샀다.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점심시간에 나가 옷을 사고 옷가게에 맡겨두었다가, 퇴근할 때 들고 가기도 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그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고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사실은 끝까지 불화했다. 드레스업 하면서 앉아서 일하는 게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힐 신고 매일 넘어졌고,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옷은 어쩌면 아주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워낙 큰 회사이고, 수직적 위계와 통제와 규율, 의전 문화가 강한 조직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에 다니다가 1도 유연하지 못해 미안할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극과 극 체험이었다. 계속 다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느라고 머리가 아파서 타이레놀을 밥 먹듯이 먹었다. 나에겐 컬처 핏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연봉 1억이면 컬처 핏이고 뭐고 필요 없다. 다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 아니라면 가능한 자유롭고 수평적인 회사에 다니고 싶다. 무엇보다 옷 좀 편하게 입고 다니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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