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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씁니다 Oct 26. 2021

가까운 회사에 다니고 싶다.

통근거리와 삶의 질

마지막 회사는 머나먼 남쪽나라에 있었다. 나는 경기도 북부 산골에 사는데, 회사는 서울 서초구 남부ㅇㅇㅇ역 가까이 있었다. 지하철 타는 시간만 1시간이 넘고, door to door  2시간, 그러니까 왕복 4시간을 길바닥에 버려야지 다닐 수 있는 회사였다. 그나마 다행인  갈아탈 필요 없이  번에  간다.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서서는 도저히  가겠고, 앉아서 가기 위해 7 출근, 4 퇴근하는 유연근무를 했다. 새벽 5  넘어 첫차를 탔다.  시간에는 널린  자리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잡아, 자기도 하고, 책도 읽고 그랬다.


5시 넘어 출발한 지하철이 아침 6시쯤 서울 시내 한복판에 들어서면 사람이 꽉 찬다. 내 기분 탓인지 몰라도 연세 드신 분들이 내 앞으로 많이 오셨다. 어떤 분들은 대놓고(살짝 터치하거나 뭐라 뭐라 말씀을 하심) 자리 양보를 요구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흔쾌히 자리를 양보해드렸다. 하지만 점점 반응 속도가 느려졌다. 머리로는 양보해드려야지, 생각하지만,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있는 관성을 택했다. 내적 갈등이 심했다.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양심을 실종시키기로 했다. 일부러 자는 척을 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행동은 뻔뻔한데, 마음이 그 뻔뻔함을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상체와 하체가 따로 놀았다. 죄책감이 끝맛이 오전 내내 남아있었다. 아침부터 이런 기분은 진짜 별로였다.


통근시간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좋은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다. 출근하고 딸이 아파 집에 가야 할 때도 있었는데, 택시를 잡아타도 1시간 이내로 갈 수 없었다. 회사에서 헬기로 모셔가거나 1억 이상 연봉을 받는다면 모를까, 그냥 아무 데나 가까운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 집에서 가까운 회사가 구직의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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