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
10년 전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 상급자에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렇게 입고 출근한 겁니까?"
이렇게? 이렇게가 어떻게인데? 속으로는 대꾸하면서 그가 훑고 내려간 시선을 따라 나도 내 옷차림을 다시 훑어보았다. 겨울이라 청바지에 패딩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사실 전업 육아 3년 만에 한 출근이라 이렇다 할 옷이 없기도 했지만,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는다고 챙겨 입은 게 ‘이렇게’ 취급을 받고 말았다.
“제가 일 잘하기를 바라시나요? 옷 잘 입길 바라시나요?”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었나 보다. 지금도 저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혈기왕성하고 근자감에 가득 찬 나의 말을 듣고 그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말에 응수할 시간이 없었다. 회사에서 가장 큰 일인 사장 보고를 앞두고 있었다. 오늘 배석해야 하니 어디서 재킷이라도 빌려 입으라고 했다.
에이 미리 말을 하지, 내가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라지만, 사장님 보고가 있다고 하면 뭐라도 걸치고 왔을 텐데, 속으로 생각하며 우리 팀 직원의 재킷을 빌려 입었다.
내가 한 말도 있고 해서 진짜 열심히 일했다. 초과근무가 100시간 찍힌 달도 있어서 따로 불려 가 경고를 받기도 했다. 물론 나의 ‘열심히’는 인정받지 못했다. 옷도 제멋대로 입으면서, 일도 못하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 조직에서 일 잘하는 기준이 달랐다. 직급에 맞게 옷을 챙겨 입는 것도 일의 일부였다. 옷이 곧 자신의 직급이자, 현재의 실력을 상징하며,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조직의 문화와 상급자에 대한 존중이 없고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옷 잘 입는 대신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몸버둥을 쳤던 100일간의 외로운 싸움 끝에 백기 투항했다. 그까짓 옷이 뭐라고. 내가 소싯적에는 옷을 좋아해서 옷가게도 하려고 했었다고, 하면서 출근 3개월 만에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사 신고, 재킷도 사 입었다.
뒤늦게 현타가 온 것이다. 굴러들어 온 돌이 맞춰야지, 하면서 빠르게 적응해갔다. 신기한 것은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나를 대하는 눈빛과 태도, 평판과 평가가 달라졌다. 직장 생활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 재미에 한동안 옷 사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다. 회사에서 좀 스트레스받은 날은 보상심리가 발동해서 옷을 샀다.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점심시간에 나가 옷을 사고 옷가게에 맡겨두었다가, 퇴근할 때 들고 가기도 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그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고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사실은 끝까지 불화했다. 드레스업 하면서 앉아서 일하는 게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힐 신고 매일 넘어졌고,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옷은 어쩌면 아주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워낙 큰 회사이고, 수직적 위계와 통제와 규율, 의전 문화가 강한 조직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에 다니다가 1도 유연하지 못해 미안할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극과 극 체험이었다. 계속 다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느라고 머리가 아파서 타이레놀을 밥 먹듯이 먹었다. 나에겐 컬처 핏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연봉 1억이면 컬처 핏이고 뭐고 필요 없다. 다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 아니라면 가능한 자유롭고 수평적인 회사에 다니고 싶다. 무엇보다 옷 좀 편하게 입고 다니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