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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 Mar 13. 2024

전공은 뭐 하셨어요?

어떤 학과냐에 따라 학교 내에서 다시 한번 서열이 매겨지고, 복수전공자는 학과 순혈주의에 따라 본전공자와 같아질 수 없으며, 전공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단정 지어버린다.


나는 철학과, 신문방송학과 두 전공을 수료했다. 철학과로 입학해서 신문방송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 전공을 밝히는 문화가 거의 없다고 느껴져서 어느 순간 신문방송학과 전공 언급은 포기하고 철학과를 나왔다고 말한다. 여기엔 한 가지 사람을 구분 짓는 대원칙이 숨겨져 있는데, 우리나라엔 학과 순혈주의가 있다. 쉽게 얘기하면 복수전공으로 어떤 전공을 수료한 자를 본전공으로 졸업한 자와 완전히 똑같이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과란 것이 배움의 추구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 타고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 얼마나 수능을 잘 봤는지, 대학 내에서 해당 전공으로 입학해 어떤 네트워크를 쌓았는지, 또한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아무래도 본전공자가 더 전문성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섞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본전공자와 복수전공자를 똑같은 선상에 두지 않는다.
학교 학과를 점수로 순위 매기는 대학 입시 배치표. 대학 입시를 거쳤다면 성인이 되기 위한 관문 같은 것.


내가 목격한 예시로 내가 속했던 인문학부의 모든 동기가 상경계열을 복수 전공했음에도 상경계 내 이등시민 의식이 있었다.


본인의 입학 전공을 숨기고 단일 경영학과 졸업생인 것처럼 무리하게 주장하려는 자가 있었고, 복수전공이건 무엇이건 전공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가 있었고, 본인은 순혈 경영학과가 아님을 인정하고, 나 원래 전공은 사학과, 국어국문학과, 철학과, 종교학과인데 복수전공으로 경영학과를 했어, 라고 본인 전공 소개에 역사를 담아 소개하는 자가 있었다. 이 세 가지 모두에는 앞서 말한 큰 원리가 작용하는데 학과 순혈주의다. 그 당시는 인스타가 없었던가, 무튼 모두가 페이스북을 했다. 내 어떤 한학번 위 친구는 본인이 사학과임은 올리지 않고 경영학과라고 어느 날 페이스북 프로필을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취업 준비 시기가 다가올 때 학생들의 관심사는 졸업장에 경영학과가 본전공 밑에, 그러니까 두 번째 줄에 적히는데 이것으로 본인이 비순혈 경영학과 전공생임이 노출되는지, 또 면접을 볼 때나 자소서를 쓸 때 경영학과를 나왔다고만 써도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정보였다.


경영학과를 공부했는데 왜 공부했다고 말하질 못하며, 원래 공부했던 전공을 말하는 것은 또 무슨 문제일까. 전 철학과, 경영학과 두 가지를 전공했습니다. 철학에선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경영학에선 기업 생태에 이를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너무 간단한 문장이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다. 경영학으로 입학한 것도 아닌 주제에 속이려 들지 말라고, 분명히 어떤 유형의 사람이 그렇게 시선을 꽂을 것이다. 그게 다수인지 일부인지 소수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무서워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숨기거나, 무시하거나, 인정하고 비순혈임을 고백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러한 구분 짓는 시선이 완전히 문제가 있느냐?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내가 졸업한 모교의 복수전공 시스템은 지나치게 간편하고 구별이 없다. 복수전공 선택에 요구 학점도 없고, 수료해야 하는 학점이 대폭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입학 전공의 심화 과정을 복수전공의 전공 학점으로 대체하도록 한 것이 그 당시의 체계였다.


그러니까 어느 한쪽도 완전하게 사 년에 걸쳐서 흡수하는 과정이 아니라, 반반씩 섞어서 한 전공 또는 1.5 전공 정도 되는 공부량을 소스로 두 가지 전공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수료에 제한도 없으니 수많은 상경계열 학생들이 양산된다.


본래 상경계로 입학한 학생들의 불만은 커진다. 여기서 상경계 학생들이 복수전공자들을 차별하거나 낮잡아 보는 경우는 적어도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바로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고(어딜 가나 비뚤어진 자가 있으니 그런 자연발생적인 정도만 있었을 것이다), 수업을 신청하려고 해도 상경계 라벨이 붙은 학생이 너무 많으니 수강신청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경계 수업은 한 강의의 1, 2, 3, 4 복수의 수업이 열렸다. 경제학원론 1반, 2반, 3반, 4반. 거기엔 모든 출신의 학생이 섞여있다. 본전공이 상경계열인자, 사학과인자, 정치학과인자, 심리학과인자, 일본어과인자, 또 무슨 과인자... 다양한 출신을 가진 학생들이 본인 출신을 상경계로 탈바꿈하고자 수업을 들었다. 전공은 이런 식으로 다뤄지다 보니 출신처럼 여겨졌다.


아내의 학교도 사정이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서울대학교 모 소비자학과를 나왔다. 문과생은 필수로 복수전공을 선택했어야 하는데 경영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비중이 적어도 반절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하는 비극은, 복수전공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해도, 넌 원래 무슨무슨 학과를 졸업했고 경영학과는 복수전공이잖아, 라는 꼬리표가 달리니 학업 중 전과를 하는 학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졸업장 두 번째 줄의 학과를 첫 줄로 옮겨 적는 일은 원래 것을 포기하도록 학생들을 움직였다. 일종의 신분 세탁일까.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못한다.


아, 그 선배, 너 선배는 서울대 경영학과이긴 한데 원래 그걸로 입학한 게 아니고 중간에 전과해서 경영학과 나왔어.


아내가 실제로 직장에서 들었던 말이다. 신분을 세탁해도 그 히스토리를 지독하게 추적해서 결국엔 내 뿌리를 벌거벗기는 시선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순혈 전공자 타이틀을, 너가 그렇게 밉지는 않지만, 그래도 차이는 두어서 지켜야 하지는 않겠느냐. 세상에 모든 게 똑같이 다뤄지면 전공은 왜 있고 전문가는 왜 있느냐. 맞는 말이다.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모든 구분을 없애는 건 모두 머리를 밀고 민머리로 살겠다는 얘기다. 그런데, 의미 있는 구분과 없는 구분을 우리는 인간 역사의 교훈을 통해 알 수 있다. 전공으로 나눌 것이면 학점, 들었던 강의의 종류, 당시 나를 가르쳤던 교수의 국제적 명망, 작성했던 레포트의 그레이드, 출석률, 대외활동 개수, 공모전 수상이력 등등 한번 더 들어가 나눌 수 있는 지표는 얼마든지 있다. 구분은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옆으로 깔아 두고 다양한 경우로 인정해야지, 전공과 시작점을 위아래로 깔고 차등을 두는 건 방향이 난폭한 구분이다. 전공 수준과 시작점처럼 실체나 의미가 없는 것으로 위아래로 무리하게 구분 지으려는 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 그냥 누구랑 나를 위아래로 떼어놓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은 아닐는지.



전공은 그렇다면 어떤 역할을?


내가 마지막 직장, 그러니까 금융회사에 입사해서 동기들과의 첫 식사에서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서울대 나오셨어요?(두 눈이 휘둥그레), 였다. 이유는 전공을 물었는데 철학과를 나왔다고 하자 어떻게 철학과가 기업금융 본부에 입사했는지 놀랍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를 욕보일 의도가 없다. 나 같아도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태초에 두 가지 모순이 우리의 대학 입학 원서를 어지럽힌다. 상경계열이 있어 보이니 경영학과를 쓰고 싶기는 한데 학교 네임밸류가 떨어지면 또 고민이 된다.


연고대 서성한 중경외시... 또 경영 경제 정치학 아 이 정도인가, 심리학과는 재밌을 거 같긴 한데 거기 나오면 할 일이 없을 것 같고...


난 어떤 대학의 경영학과와 서강대 인문학부를 재다가 후자를 선택했다. 앞의 대학의 경영학과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서강대 인문학부는 인문학부라서 패배감이 들었다. 난 내가 뭘 공부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전공 탐색의 기회 같은 건 없었다. 학교냐 전공이냐 마음속에서 살짝 갈등하다가, 보통의 경우처럼 학교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서강대가 낫지 하면서 서강대를 썼다. 그렇게 흘러가듯이 입학해서 인문학생이 된 것일 뿐인데, 입학하고 보니 학교에서 대우해 주고 잘 나가는 건 경영, 경제 학생들이었고, 트랙이 다른 신문방송학과 정도의 학생과 성격이 많이 다른 공대생들이었다. 난 학교 보고 이제 좀 자존감 챙겨서 다니려고 했더니 학교 내 시민 등수를 전공으로 세우는 것이다.



전공은 생각하는 방법을 다양한 경우로 인도하는 길라잡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공을 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 전문성이 생기는 것은 기초적인 단계에서 뿐이다. 애초에 이삼사 년의 학습으로 평생의 전문성이 결정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주장이다.


경영학과는 기업 생태의 기준에서 실용적인 사고를 배우는 곳, 신문방송학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저널리즘과 미디어의 작용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 짓는 새로운 콘텐츠를 생각해 내는 곳, 철학은 생각을 공부하고 다시 생각해 보아서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을 손에 잡히도록 정제하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곳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나를 드러내는 도구 중 하나지 그것 자체가 내 능력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리학과 CEO, 사회학과 프로그래머, 컴퓨터공학과 시인, 노어노문학과 화가, 훨씬 더 흥미롭지 않은가?


난 철학과를 졸업해 복잡하게 꼬여있는 개념들을 알기 쉽게 정리하는 방법을 배웠고, 내가 속한 곳이 금융이든, IT이든, 아이리쉬 펍이든 문제 상황을 정의하고 해결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회사에서 거의 유일한 어떤 프로그램의 중급 이상의 숙련자라서 어려운 말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그러니까 경영 상황을 시각화하여 레포팅 하는 일을 했다. 금융업에 얽히고설킨 대내외 숫자들을 요리조리 조합해서 어떤 그래프로 보여줄지 결정하고 프로그래머처럼 약간의 코딩, 디자이너처럼 사용자 관점의 편리한 화면 구성, 또 본래 역할의 금융업 기획자로 지표들의 의미를 해석했다. 경영 경제학과를 졸업하지 않았고,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지 않았고, 꼭 그래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내가 철학과와 신문방송학과에서 배운 고찰하는 방법과 개념을 잘 전달하는, 생각하는 훈련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공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정표지, 직업 훈련 학교가 아니다.


적어도 지식 체계를 기반으로 손이 아니라 개념으로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손으로 하는 일도 오랜 노력이 쌓이면 전공의 의미가 희석될 것이다. 철학과를 졸업한 목수, 얼마나 멋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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