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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윤 Jun 12. 2024

난 외고생이야 / 모의고사 몇 점이야?

우리 학교는 모의고사가 끝나면 공식 성적표 발부일자에 맞추어 벽에 등수를 걸어놨다. 1등부터 50등까지 학과와 이름이 걸렸고 그것은 우수 인재 리스트를 의미했다. 내 소속은 일어과였고 일어과 학생은 몇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하려고 한다. 꿈과 희망을 가득 안고 학생들은 입학했다. 부모들도 마치 같이 입학하는 심정이었다. 외고에 입학하기만 하면 연고대를 보내준다는 이야기에 학생들은 중학교 시절 내내 학원에 돈을 퍼붓고 새벽까지 공부를 했으며 첫 입시 시험인 외고별 입학시점의 문턱을 넘어 자랑스러운 외고생 신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2011년도 대입 수능이 불수능, 특히 언어(국어)와 외국어(영어)가 심각히 어려워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졸업생은 내 체감상 70%는 재수를 하였으며 재수를 해서도 연고대에 입학한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앞에 뭐든 붙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과학, 외국어, 자립형사립 등등


난 고3이 되어서야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름하여 서성한 중경외시 라인을 졸업생 방문 행사를 통해 알게 되었으나, 그곳은 미끄러진 자들이나 가는 곳이며 무언가의 불가항력적인 힘이 작용하여 우리 모두를 연고대에 보내줄 줄 알았다. 나는 3기였고 우리 기수에는 특별한 운이 작용할 것으로 망상했다.


우리 학교는 모의고사가 끝나면 공식 성적표 발부일자에 맞추어 벽에 등수를 걸어놨다. 1등부터 50등까지 학과와 이름이 걸렸고 그것은 우수 인재 리스트를 의미했다. 내 소속은 일어과였고 일어과 학생은 몇 없었다. 영어과는 우수하고 중국어과는 중간이며 일어과는 뒤쳐졌었다. 난 그 프레임 내에서 문제 과라는 꼬리표에 맞게 계속 문제 행동을 일으키며 3년 간 학교를 다녔다. 웃기지도 않은 어른들의 줄 세우기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순응하고 그것을 따랐고, 학교 밖에선 외고생이라는 기세등등한 신분을 내세워 일반고 학생들 우위에 선 기분을 누렸다. 그 안에서 내 친구들은 소속 고등학교별, 학교 내에선 과별, 과 내에선 점수별, 점수 내에서도 과목별로 사람을 나누는 생활을 배웠다.


학생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기수는 250명 정도였다. 난 그중 150등에서 200등을 오가는 학생이었다. 내신은 바닥이었다. 아예 포기하고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고 수능 공부는 문제를 맞히는 맛이 있어서 했다. 일어과 학생들은 문제 집단이라고 낙인이 찍혀서인지, 실제로 선생님들이 차별을 해서인지 패배감을 안고 공부했다. 영어과라 하더라도 영어일어과(영일과)와 영어중국어과(영중과)가 있었는데, 영중과가 탑이었고 영일과는 그보다 못하다고 해서, 특히 활동적이고 동아리 활동을 좋아하는 남자애들은 덜 열심히라 문제라는 소리를 들었다. 점수가 모든 걸 결정했다. 우리의 인격까지도.


여기서 출신성분은 덤이었다. 우리 학교는 목동, 일산, 분당, 인천 그리고 외의 지역도시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됐다. 목동에서 온 애들은 보통 똑똑해서 공부를 잘하고 일산이나 분당 그 외 교육 도시는 중간은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인천은 성실하다는 평이 있었다. 지역도시는 그 지역 내 가장 성실한 학생 중 한 명이 왔기 때문에 내신은 놓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역도시 친구들은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우리 학교는 학교에서 먹고 자는 기숙사 학교였다) 학원을 다니지 못했고, 사교육 인프라 속 이런저런 정보를 직접 취하지는 못해 수도권 아이들하고 또 분리가 됐다. 적어도 나는 그들을 약간 내려다봤다. 난 도시의 아이고 그들은 지방의 아이들이라고. 친구들과 종종 그런 얘기를 나눴으니 다른 친구들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작은 사회에서, 애초에 서울권 외고는 쳐다도 보지 못하고 경기권 외고 중 그나마 만만해서 이 외고에 온 주제에 왜들 그렇게 나누고 올라서서 자존감을 챙기려 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패배감을 메꾸기 위해서다.


여기서 몇 명만 밑에 깔고 올라가면 연고대를 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러면 부모를 만족시킬 수 있고 성공가도를 달릴 것만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못 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든 순간에도 우리는 어쨌든 외고생이니 어찌 될 거라는 신화를 붙잡고 합리화를 이어갔다. 모의고사 성적은 어떻게든 뒤집힐 것이라는 망상. 전부 2등급이 나와도 어찌하다 보면 연고대 성적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 누가 서성한을 가겠냐는 어이없는 소리. 애초에 그 구분이 내 삶에 무슨 의미를 주는지는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점에서 내가 조금 달랐던 점은, 난 그 대학이란 게 대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질 못해 성실히 공부하지 않았다. 재수 때 위기감을 느끼고 몰아서 공부했다. 보통의 친구들이 현역 시절에 반절 정도 느꼈던 그 위기감이 재수 때 작용해 눈물을 흘리며 공부했다. 그러나 이 재수 때까지도 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별 의미도 없는 순위에 연연하고 나를 루저라고 자학하며 나를 벼랑 끝으로 세웠다. 재수를 해서도 그럴듯한 대학에 가지 못한 친구들은? 난 그 사정을 애초에 물을 용기조차 없었다. 이게 내가 겪었던, 당시 2000년부터 10여 년간 이어진 외고붐의 실황이다.


예체능과 제2외국어를 대하는 자세는 더욱 처참했다. 체육은 그나마 재밌어서 야외 수업은 열심히 했지만, 주요 과목이 아닌 예체능과 제2외국어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후순위였고 아예 등한시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게 바로 내신 포기자, 제2외국어 9등급 경쟁 그룹이었다. 보통 남학생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대표였다. 이 점은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도 비슷했을 것 같은데, 주요 과목이 아닌 내신점수는 대입에 영향이 덜하거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수행평가가 아닌 종이 시험은 거의 맞추라고 답을 알려주듯이 후다닥 시험 전주에 선생님들이 일러주기 때문에 과목에 몰입하는 학생은 없었다. 여기서 수업 자체가 수능하고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과목을 등한시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 예체능 과목의 선생님들은 적어도 수업과 관련해선 취미 활동 강사와 같은 격이지, 우리가 무언가 얻고자 질문하고 존경하는 언수외 선생님들과 대우가 달랐다. 젊은 교생 선생님들이 오시면 더 친근하게 대했다. 그래도 인성 교육을 가정에서 대부분 잘 받고 온 학생들이어서 되바라지게 구는 학생은 없었다. 다만 언수외 교사들이 구조적으로 가질 수 있었던 카리스마를 예체능 교사들이 갖기란 불가능했다.


과목의 교내 중요도가 태생에 따라 갈린다는 게 교육 기관의 본질인지는 참으로 의문이고 당시 학생으로서도 위화감을 느꼈다.


제2외국어는 반반이다. 실제로 제2외국어가 사회탐구 1개를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언어는 삶 자체나 이후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하는 학생은 열심히 했다. 그러나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였고, 이미 공부라면 질려버린 학생들은 이를 안 해도 되는 과목으로 치부했다. 그래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중간 기말고사에 모든 문제를 찍었다. 그러면 운으로 9등급 그룹이 정해진다. 누가 더 잘 찍었냐에 따라 9등급이 결정된다. 성적표가 나오면 누가 일본어 9등급을 맞았느냐가 불성실 학생 그룹 내에선 놀이였다. 참으로 끔찍하다. 그 과목의 선생님의 위신은 어떻게 되며, 아이들에게 주어진 학습의 기회는 무참히 버려진 셈이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외국어를 등한시한다. 난 당시의 학생이었던 우리를 욕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들을 욕하고 싶지도 않다. 언수외 공부하느라 안 했다고 해버리면 지도할 방법도 없다. 구조가 빚어낸 모순이다. 외국어 공부를 대충 하는 외고 학생들.


2010년대에 들어 외고 입학 전형 구조가 바뀌면서 예전만큼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나중에 모교에 방문하니 너네만큼 성적 나오는 학생은 반도 안되며 너네 중 중간이 지금 일등일 것이라 했다. 경기권 외고는 정말 그랬을 것이고(일부 탑은 예외였을 것이다), 서울권은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성적을 시작으로 오간다. 얘들은 몇 등이다, 너네는 몇 등이었다... 추억도 감정도 거기서 시작된다. 지금도 이와 같다면 눈앞의 명성, 명성인지도 잘 모르겠는 그것을 잠깐 치워두고 교육의 본질에 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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