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지중해의 고양이일지라도

[약동하는 생명체 #1]

by 카일루아의 고양이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음을,

봄이 스르르 골목 어귀까지 스며왔음을,

출근길 어슴푸레 걷히는 어둠에

문득, 깨닫는 요즈음.



길게 드리워진 오후 녘 따사로운 볕 힘에

한껏 늘어지는 건

제아무리 지중해 뙤약볕에 단련된 고양이일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양껏 오수(午睡)를 취하곤

원껏 기지개를 켜는 저 본새라니!


다음 생엔 나도

볕 쬐는 지중해의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



바싹바싹 호기롭게 그을린 모습의

지중해냥일지라도

마냥 부럽지 아니한가?



무 중에도 낮잠은 필수인

아니지,

주침(晝寢)이야말로 주 근무조건인

세상 근사한 팔자를 타고난

나는 고양이소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비로소 깨어있을 나.


누구도 지 못할 나만의 세계를 응시하는

그 은밀한 기쁨이라니!



따끈따끈하다 못해

발바닥 내리찍으면 치익-하고 녹아내릴 듯한

사과상자 안팎에서도

세상만사 제쳐두고 놀이에만 몰두하는

내 이름 석자는 바로

고 양 이.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한창 자라나는 어리디 어린 주인님께

간택받은 나.


밸런타인데이인 오늘.

오늘부터 우린, 누가 뭐래도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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