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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Dec 24. 2022

휴대폰 분실하면 내 생활은 로그-OFF

영화를 보고 나니 휴대폰이 없어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영화관을 내려오면서 아내에게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차라리 물에 빠뜨렸으면 낫겠다. 잃어버린 게 확실하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잃어버렸으면 이해가 되지. 꼼짝도 안 하고 의자에만 앉아 있었잖아. 그런데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게 말이 되냐고."

  "옆에 앉았던 사람이 주워가지 않았을까? 끝나자마자 불이 나게 나갔잖아."


  허상과 망상이 혼돈하는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정신없이 부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엎드려 의자 아래쪽으로 라이트를 비추고, 의자 틈새로 손을 넣어 보기도 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의자를 정리하던 직원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러저러하다고 하니 가볍게 몇 번 찾는 시도를 하더니 분실신고 절차를 얘기하고 가버렸다.


  진동으로 해놨는데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이곳에 있다. 그런데 내 손에 없으니 잃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찝찝함이 더욱 짜증 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밀려드는 다음 관람객을 위해 퇴장을 해야만 했다.        


  2층 카운터에 들러 분실신고부터 했다. 그리고 또 뭘 해야 하지. 막막했다. 아내 전화로 분실신고를 하려 했더니 선택 메뉴를 누르고 세부항목으로 들어가 다시 선택을 하는데 내가 원하는 항목이 없다. 못 찾는 건지. 결국엔 상담원과 연결을 시도했다. 늘 그렇듯 통화 중이다. 그들은 365일 언제나 통화 중이다. 도대체 그들은 언제 쉴까? 사람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할 수 있는 아날로그 시스템이 간절했다.  


  휴대폰엔 카드부터 인터넷뱅킹 인증서, 카톡, 페북, 사진자료 등등 내가 현재 문명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이 대부분 들어 있는데, 그것도 간단한 숫자 몇 개 뒤에 숨어있는 날 것이나 마찬가진데. 마치 벌거벗은 채 거리에 서 있는 듯,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시베리아 찬 대륙성고기압이 나를 휘감고 있는 듯 냉랭한 불안감. 그간 생각 없이 누리기만 했던 편리함의 대가 치고는 가혹한 것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내 통장을 다 털어가는 듯한 불안과 긴장감. 친구나 사무실 전화번호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평상시 자동연결되던 어플이나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기 위해 알아야 하는 아이디나 비번에 대한 기억조차도 불확실한 좌절감, 유휴의 틈새 시간을 메워주며 뉴스나 지인들과 소통을 나누던 것도 막혀버린 고립감과 허전함. 좀 비약하자면 느닷없이 꿈속에서 나무조각에 의지한 채 망망대해에 떠 있는 듯한 위태로움이랄까.  

  

  현대사회에서 전기가 차단되는 블랙아웃 같은 재난이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감당하고 공유하고 협력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게도 위안이 되지만 휴대폰 분실이라는 블랙아웃은 홀로 섬에 떨어진 듯한 두려움과 고립감을 견디고, 모든 것이 털릴 수도 있다는 불안한 박탈감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대한 재난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온 것이다. 갑자기 빛이 사라지 듯 내 생활은 예고 없이 로그-오프(OFF)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핸드폰 속에 더 많은 것들을 포함시키고 더 쉽게 접근시키기 위한 노력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만 빼면 현대문명을 이해하는데도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간편 자동으로 진화될 것이며 자신의 실존까지도 의심하게 될 만큼 발달할지도 모른다. '철이' 자신이 인간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리얼 휴머노이드의 이야기를 담은 김영하의 [작별인사]라는 소설이 이야기만이 아닌 현실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저녁 친구들 모임에 가서도 오가는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러갔고, 아바타의 영화 줄거리 보다 핸드폰의 존재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했다. 기약 없는 소식을 기다리며 괜스레 아내의 전화만 만지작거렸다.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리지 않은 듯한 찜찜함을 해소하던. 깨끗이 잊고 새 휴대폰을 사는 결단을 하던 내 시스템을 로그온 상태로 복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 영화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조영화 상영시간을 검색하고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 상영시간에 맞춰 관람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상황에 쫓겨서 그랬는지. 귀신에 씌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어제와 똑같은 방법으로 의자 사이에 손을 넣는 첫 번째 시도만에 바로 아내가 바로 소리쳤다.

  "찾았다. 여기 있어."

  "어제 그렇게 간절하게 찾을 땐 없더니 이게 뭔 일이야. 밤새 누가 갖다 놓기라도 했나!"

  숨기려고 해도 그렇게 하긴 어려울 만큼 꼭 끼어 손가락 끝에 닿는 감촉이 마치 딱딱한 바닥처럼 느껴졌다. 어제는 그 생각을 못했고, 지금은 시간 여유가 있어서 감촉을 다르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순간 잃어버리지 않은 듯 잃어버린 어정쩡한 상황에서 곧바로 빛이 들어오며 내 생활은 다시 로그-온(ON)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 있나?

  로그-오프(OFF)를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하지? 자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살까?

  분실을 방지하려면 목에 걸고 다닐까?

  휴대폰 분실이 참 많은 걱정과 생각들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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