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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Jun 07. 2023

내 가게 앞 소화전 옮겨주세요

민원이 민원이기 위한 조건

  공무원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고 국가에 채용된 사람이다.


  위와 같은 선서를 하고 국가에 채용된 공무원에게 임무란 사기업에 다니는 사람의 임무와는 차이가 있다. 이익의 대상이 사적이냐 공적이냐로 갈린다. 정확한 잣대로 이익의 그래프화를 시도할 수 없는 것이 공적영역의 임무이기 때문에 법의 집행과정에서 때론 이익의 형량을 따져 사인의 이익을 본의 아니게 침해할 때도 있다.


  내게 고민스러운 민원이 접수되었다. 카페 앞 도로에 있는 소화전 때문에 사람들이 주차를 꺼려 장사에 방해가 되니 소화전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는 요지의 민원이다.

     

  이 민원이 고민스러운 건 공무원인 내게도 민원을 제기한 시민에게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소방관계법령에 따르면 소화전은 주거, 상업, 공업지역은 100m마다 소화전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시계획을 하면서 상수도 관로를 설치하고 규정에 맞게 소화전이 설치된 후 건물이 들어섰다. 소화전 인근에는 주정차 등 소방활동을 방해하거나 장애물의 설치나 방치가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지만 몇몇 사회적인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본격적으로 도로교통법이 논의되면서 소화전을 중심으로 도로 경계석 좌우 5m 이내에 빨간 페인트로 주정차 금지 경고를 표시하도록 규정되었다.


  민원인은 카페 건물을 임대할 당시에는 이런 표시 규정이 없었는데 나중에 신설되면서 손해를 보고 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는 것이었다. 일면 관계인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가게 바로 길 건너편에 이십여 면의 공영 주차장이 있고, 당장 7-8m 앞 뒤로 흰색선의 주정차 가능 공간에 편도주차표시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가게 문 앞에 차를 세우고 테이크아웃을 하길 원하는 손님은 불법 주차로 사진이 찍혀 과태료를 낼 위험 때문에 오길 꺼리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소화전을 이전하는 비용은 대략 4-5백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럼 민원이 제기되었다는 이유로 소화전을 옮길 수 있을까? 관련 규정을 검토하고 민원인과 공공의 이익을 형량해 봤을 때 소화전을 옮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시내 곳곳에는 이와 유사한 소화전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화전이 이전된다면 시내의 수많은 소화전을 다 옮겨야 하지 않을까. 몇 미터 옮긴다고 소화전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금을 허투루 쓰는 꼴이 될 뿐 아니라 또 그곳에 건물이 신축되고 비슷한 민원이 제기될 때마다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할 처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관계인과 대화를 통해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지만 면전에서 얼굴을 붉히며 계속 민원을 제기하겠다는 협박 같은 불만을 얘기하곤 휑하니 가버렸다. 지속적인 민원제기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불법이 아닌 이상 견뎌야 할 민원도 있는 것이다.


  혹여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소화전 점검과 주기적인 관리를 의해 소방공무원들이 다녀가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는 뉴스를 상상을 해본다.

  당장 눈앞의 불편이나 불이익을 감수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양보하고 견디는 시민의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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