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글 Mar 05. 2021

이직, 그게 뭐라고(2)

하루에 네 번 면접 본 사연


가끔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온다. 난이도 고르기 글로, 회사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하는 것취준생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어려운지.


오늘 그 어려운 선택지에서 답을 골랐다. 내가 고른 쪽은 전자다. 확실히.



여러 이유로 이직을 고민하고 준비하던 나는 n년을 꽉 채운 이번 달, 회사에 결국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일하던 포지션의 충원을 위한 채용이 진행되었고, 나 역시 이직을 위한 면접을 같은 시기에 보게 됐다.


회사의 규모나 특성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있는 곳은 인사팀에서 채용을 진행하지 않고 각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짐작하다시피 채용 공고를 올리고 이력서를 추리고 면접을 진행하는 일련의 일에 내가 투입됐다. 하하...




으흑흑. 코가 시큰, 호두 턱을 하고 보게 되는 짤.




#나도 면접봐야 되는데, 면접관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투정('이걸 왜 내가 다 해요...')을 했고, 두 번째로는 걱정을 했다. 아니, 내가 뭐라고. 몇 년이나 일했다고 이 중요한 일을 시키는 건가 싶어서. 세 번째로는 '잠깐만, 근데 이런 경험도 꽤 쓸모가 있겠는데?' 싶었다.


공고 마감 다음 날, 수백명의 지원자 중 n명의 면접자를 추렸다. 각각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프린트해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분께 올렸다. 2차 검토를 거쳐 다시 n명의 면접자가 정해졌고, 오후에 면접 전화를 돌렸다.


"지원 감사드립니다. 서류 합격하셔서 n월 n일 면접 진행할 예정인데 참석 가능하신가요?"


아차, n월 n일은 가고싶던 회사에서 2차 면접을 보기로 한 날이었는데... 어쩌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재직 중인 걸 감안해주셔서 나의 이직 면접은 퇴근 후에 진행하게 됐다. 코시국이라 화상 면접이 적극 도입되어 있기도 했고. (야호!)




#면접관이자 면접자가 되었던 날

그렇게 이직을 준비하던 어느 날, 나는 면접관으로 하루 세 번의 면접을 진행했다. 그리고 퇴근하고 나서는 면접자로 한 번의 면접에 참여했다. 회사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하기가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이야.



퇴사를 앞두고 채용까지 담당하면서 모든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한 사람당 몇 분씩 꼼꼼히 살펴볼 여력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핵심 역량과 본인의 경험, 역량을 fit하게 어필하는 이력서들은 개중 눈에 띄었고, 몇 번씩 읽게 됐다. 성의 있고 일목요연하게 작성한 포트폴리오에는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그 과정에서 막막하게 비밀리에 진행했던 내 '이직 프로젝트'도 조금씩 탄탄해졌던 것 같다. 이력서나 포트폴리오에서는 어떤 역량을 어떻게 어필하는 게 좋을지, 면접에서는 어떤 질문이 오고가는지, 경력 면접의 분위기는 어떤지에 대해 감을 잡았다고 할까.


물론 퇴사로 인한 충원이라는 일 자체만으로 개인 업무에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다. 이번 주 중 어떤 날에는, 내게 주어진 9시간의 업무시간 중 내 일에 집중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데일리 업무를 하고, 회의를 하고, 이력서를 살피고, 자잘한 일들을 쳐내고 나니 시계는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5시 59분을 향해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너무 벅차서 자꾸 울고싶어지기도 했는데, 벽에 붙여둔 요 그림을 보면서 눈물을 다시 쏙 집어넣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몇 달동안 나는 퇴근하고 밥을 먹고, 치우고, 씻고 10시가 되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새로 올라온 포지션에 지원을 하고, 앞으로 있을 면접을 준비하고, 가끔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업무 전화에도 덜덜 떨던 내가 벌써 n년차 직장인이 돼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고 있다. 치열하게 뽑고, 뽑히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직, 그게 뭐라고. 이번 주말에는 잠을 오래 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직, 그게 뭐라고(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