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장마는 6~7월이지만 고사리가 나는 시기인 4월쯤 장마처럼 궂은 날씨가 이어지는데
제주에서는 이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올해는 고사리 장마라고 할 정도의 궂은 날씨가 이어지지 않아 고사리가 많이 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하루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은 땅속에서 고사리가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다.
나의 이번 달 제주여행은 제주에 있는 친구들과 고사리를 꺾기로 했다.
한 친구가 지난주에 물영아리 오름에 갔더니 고사리가 많았다면서 우리를 물영아리 오름으로 안내했다.
고사리를 제대로 꺾으려면 새벽에 나가야 된다.
일단은 누군가가 한번 꺾고 나면 꺾을 고사리가 없을뿐더러
해가 뜨고 나면 고사리 세어 버린다.
또한 낮에는 햇빛이 뜨겁기도 하거니와 햇빛 때문에 고사리가 눈에 잘 띠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새벽에 나가기는 쉽지 않아 8시쯤 제주시에서 출발했다.
제주시에서 물영아리 오름 주차장까지 가는 중산간 도로에는 승용차들이 군데군데 주차되어 있다.
진풍경이다.
고사리를 꺾으러 온 제주도민들이 세워둔 자동차들이다.
제주시에서 남원읍 수망리에 있는 물영아리 오름 주차장까지는 승용차로 약 45분 걸렸다.
물영아리 오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오름 입구로 들어섰다.
목장 너머로 완만한 곡선의 물영아리 오름 능선이 보인다.
오름 초입에서 바라본 물영아리 오름 능선
'물영아리 오름'에서 '영아리'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으로
'물영아리'는 '분화구에 물이 있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물영아리는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지정된 람사르 습지라고 하니 기대가 컸다.
근데 친구들이 분화구 안에는 물이 거의 없고 오름 오르는 경사가 심해서 오름은 다음에 가자면서
잣성을 따라 고사리가 많이 있는 곳까지 걸었다.
여기서 잣성은 또 무엇일까?
잣성에 대한 안내문이다.
"마을 공동목장 등 목축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수망리에 중요한 자원으로 조선시대 한라산 중산간 지대 국영 마목장인 십소장을 설치하면서 축조된 잣성이다."
친구가 '잣성'에서 '잣'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니'잣성'은 '돌무더기로 쌓은 돌담'을 말한다.
그럼 왜 중산간 지역에 이런 돌담을 쌓았을까?
강만익의 '조선시대 제주도 잣성(牆垣) 연구'자료에 따르면
'잣성은 조선 초기부터 한라산에 설치된 국영목장의 상하 경계에 쌓은 돌담을 가리킨다. 이러한 잣성은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으로 나누는데 하잣성은 해안지대 농경지와 방목지의 경계 부근에 쌓은 돌담이고, 상잣성은 중산간지대의 방목지와 산간지대 삼림지의 경계 부근에 쌓은 돌담이다. 중잣성은 상잣성과 하잣성 사이의 공간을 이등분하는 잣성이다. 하잣성은 중산간 목축지에 방목 중인 우마들이 해안 지대의 농경지에 들어가 입히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축장 되었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중산간 지대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지역주민들의 농경지 개간을 금지함으로써 이 지대를 목장 지대로 지정한 다음 안정적으로 말을 사육할 목마장을 설치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잣성은 우마들이 한라산 삼림지역으로 들어가 동사하거나 잃어버리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기술하고 있다.
연구 자료에서 보듯이 제주에서는 말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말들이 한라산 쪽으로 올라가 동사하는 일을 막기 위해 상잣성을 쌓았고 해안가 주민들이 중산간 지대를 개간해 농지로 쓰지 못하도록 즉, 목장 용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하잣성을 쌓았다니 말이다.
그리고 잣성은 한라산 지대에 국영 목마장이 설치되기 시작한 조선시대 세종,
14세기 초부터 등장했다고 하니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물이다.
이 돌담들을 역시 제주 백성들이 쌓았을 것이고 제주 백성들이 이 담을 쌓으면서 흘렸을 땀을 생각하니
잘 복원하고 보존해서 길이길이 유물로 남기고 또 자원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현재 조선시대 목축 활동과 관련된 잣성이
제주도에만 분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가치가 얼마나 큰가 말이다.
이곳 수망리 잣성(돌담)은 울창한 삼나무와 어우러져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잣성을 걷으니
휘파람이 절로 난다.
여기 남원읍 수망리 잣성은 돌담 길이가 3.71km에 이른다고 한다.
잣성 이야기를 하다가 고사리 순이 다 세어 버리겠다.
발길을 서둘러 고사리가 있는 밭으로 이동해야겠다.
잣성을 따라 40여 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고사리 밭이 보인다.
'벳고사리'밭이다.
고사리에도 두 종류가 있다.
자라는 서식지에 따라 '벳고사리'와 '자왈고사리'로 분류한다.
어제 고사리를 꺾어 어머니께 가져갔더니 '백고사리'를 꺾어왔다고 해서
나는 백고사리, 하얀 고사리로 들었는데 볕을 많이 받는 곳에서 나는 '벳고사리'를 꺾어왔다는 말이었다.
제주에서는 '햇빛'을 '벳'이라고 말한다. '벳이 와랑와랑 하다'는햇빛이 뜨겁다는 말이다.
벳고사리는 벳(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가늘고 짧은 게 특징인데
어제 내가 꺾은 고사리 대부분은 대가 가늘고 길이가 짧았다.
반면에 '자왈고사리'는 음지에서 자라 대가 굵고 길이가 길며 수분을 많이 품고 있어 부드럽다.
물영아리 오름 근처 고사리 밭 벳고사리는 이미 세어버려
우리는 '자왈고사리'를 꺾으러 골자왈 숲으로 들어갔다.
골자왈은 수풀이 우거진 숲을 뜻한다.
가시덤불이며 억새풀이 엉켜 있고 조그맣게 길이 미로처럼 나 있다.
고사리는 이 덤불 안 음지에서 숨어 자라고 있었다.
자세히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잡풀과 분간하기 어렵다.
자왈고사리 풀숲 음지에서 자란다
친구가 고사리가 마치 보호색을 하고 올라오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가시덤불 안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자세히 들여다 봐야 보인다.
가시덤불 안 고사리는 얼마나 길이가 긴지 제주에서는
'프로들은 서서 고사리를 꺾고 아마추어들은 앉아서 고사리를 꺾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나는 서서 보이는 고사리가 많지 않을 걸 보니 아직은 아마추어인 것 같다.
고사리를 하나 꺾어 돌아서면 또 하나가 보이고 돌아서면 또 하나가 보이고
빙빙 돌아가면서 엎드려 꺾는다.
고사리는 또 아홉 형제가 있다고 한다.
한번 꺾은 고사리에서 아홉 번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고사리철에는 아홉 번을 가서 꺾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니 고사리를 꺾은 날은 '밤에 누워도 천장에 고사리가 보인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 같다.
낮에 보는 고사리와 아침 이슬에 빛나는 고사리
가시덤불을 헤치며 고사리를 꺾느라 모자가 가시에 벗겨지기도 하고
안경이 나무에 걸려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덤불을 밟아 전진하느라 다리가 가시에 베이기도 하는 등
골자왈에서 고사리를 꺾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왈고사리를 꺾으러 갈 때는 복장도 중요하다.
가급적 두꺼운 옷을 입고 갈 것과 손목에는 두꺼운 토시가 필요하다.
우리 일행은 한 시간 반 정도 고사리를 꺾은 후 다시 잣성을 따라 내려왔다.
오는 길에 교래리에서 닭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친구가 설명을 보탰다.
교래리에는 농사가 잘되지 않으니 닭들을 많이 키워서 닭 요리가 발달했다고 한다.
닭칼국수의 면은 녹차가 들어간 면발이었다.
닭칼국수집 앞에 있는 제주 시골마을의 상징인 팽나무
<고사리 손질법>
고사리는 꺾는 것도 중요하지만 꺾은 후 손질 또한 중요하면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일단 고사리를 꺾으면서 순들을 다 문질러서 없앴지만 집에 와서는 다시 양동이에 물을 받고
고사리를 넣은 다음에 박박 문질러 위에 난 순도 없애고 더러운 불순물들도 씻어낸다.
그런 다음 삶는다.
삶은 방법은 친구가 알려준 방법인데 끓는 물에 넣어 10분간 삶으면 좋다고 한다.
삶은 후 다시 헹구어 양지바른 곳에서 이틀 정도 말린다.
혹은 생고사리로 먹으려면 삶은 후 맑은 물에 24시간 정도 담근 후 먹으면 좋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륨과 칼슘 등의 무기질도 풍부하다.
고사리의 풍부한 영양소는 둘째치고 나의 경우에는 일 년에 세 번 명절과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