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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화 Oct 01. 2022

칠갑산에는 콩밭 매는 아낙네가 있을까!

지난 9월 추석 연휴에 충청남도 청양군에 있는 칠갑산을 다녀왔다. 칠갑산 정상(561m)까지 오르는 코스는 모두 9개이다. 편도로 가장 짧은 코스는 한 시간, 가장 긴 코스는 3시간 40분 걸린다. 물론 걸음걸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산을 오가며 수시로 휴대폰 카메라로 온갖 풍경을 담으니 1.5배는 더해 주어야 옳다. 우리는 가장 짧은 코스인 3.0km거리, 편도 한 시간인 산장로 코스를 택했다.

칠갑산 등반 코스 안내도

남편이 가장 오르기 쉽고 짧은 코스라 해도 믿어지지는 않았다. 지난번 계룡산도 네 시간 정도 산책삼아 갔다가 내려와서 점심 먹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나섰다가 완전 낭패를 당했다. 계룡산 무풍골 계곡에서 시작해서 큰배재에서 남매탑을 거쳐 삼불봉, 관음봉을 찍고 동학사로 내려오는데 7시간 가까이 등반을 했다. 간식도 안 챙기고 물도 조금 갖고 갔다가 배도 고프고 물도 빌어먹는 지경이었다. 하산 길은 또 얼마나 지루했던지 정말 짜증이 많이 났었다.


이번에는 혹시나 해서 추석명절 상차림으로 준비했던 과일이며 송편 등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세종에서 칠갑산 칠갑광장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거리였다. 추석날이고 이른 시간이여서 광장 주차장도 한산했고 간간이 가족단위 등반객들이 눈이 띄는 정도였다. 칠갑산 입구에 들어서자 콩밭 매는 아낙네상과 칠갑산 노래비가 우리를 반겼다. 

칠갑산 입구에 세워진 콩밭 매는 아낙네상과 노래비

주병선 씨의 최고 히트곡인 칠갑산, 내 생전에 칠갑산을 와보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인생은 예기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더 살만한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왔고 지난 5월 성당에서 전 신자 성지순례로 청양군에 있는 다락골 성지를 다녀오는 길에 칠갑산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야 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었다. 그래서 사람 사는 곳은 서울밖에 없는 줄 알았었다. 아니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 서울로 알고 지냈었다. 예전에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를 한라산에서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서울이 아니 세종에 살고 있다. 세종으로 이사 와 보니 충청도에서 자리 잡고 사는 여고동창들이 꽤나 있다. 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제주 서귀포에서 이곳 충청도까지 와서 살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정말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나의 시야가 좁았는지도 모른다. 회사 다닐 때 남편은 서울, 나는 제주에서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래서 90년대 초반서울본사에서 근무하려고 피디직종 모집에 지원해 전직 시험을 치렀었다. 당시 면접장에서 ‘서울 아닌 곳에라도 갈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서울 아니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것 같다. 서울 오려고 전직시험을 치르는데 다른 지역으로 갈 바에야 뭐 하러 시험을 치르러 왔겠냐고 따지는 기색으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고나할까. 그때 어느 지역이든지 가겠다고 했었으면 서울 본사에 더 일찍 올라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였는데....... 그런 덕에 제주에서 강원도를 거쳐 미국생활까지 해보고 돌고 돌아서 서울 본사에 뒤늦게 왔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서울에서 근무하고 지금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곳에서 살아갈지 아직도 미정이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마르세유를 떠난 지 육개월 뒤에 타이티 섬에 도착했다. 그는 말한다. “섬이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처음 오는 것이 아닌 것 같소. 지금도 어떨 때 이곳을 걷고 있으면 죄다 눈에 익은 것 같아요. 틀림없이 내가 전에 여기 살았던 것만 같아.” 그러면서 작가는 이어 말한다. “격세유전으로 내려온 어떤 뿌리 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네의 조상이 역사의 저 희미한 여명기에 떠났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일까.”라고 말이다.


처음 보는 곳인데 낮이 익은 곳, 주인공은 결국 그곳에서 영혼을 다한 그림을 그리고 생을 마감한다. 나는 아직 그런 고향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곳을 찾을지 있을지도 알 수도 없다.


그렇게 서울 본사로 온 후 2012년 가을 난 처음으로 라디오 피디로서 해외 다큐멘리 취재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칠갑산에 얽힌 감동스러운 장면을 만났다.


콩밭 매는 안녕히네와(아낙네야)

베적삼이 꼬박(흠뻑) 젖는다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주병선의 <칠갑산>을 흥얼거린다. 가사는 정확하지 않다. 멜로디만큼은 정확하다. 한국에서였으면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던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뭔 이국땅에서 고령인 할아버지가 불러주는 이 노래에 나는 빨려 들어갔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7시간 정도 갈려 가는 나라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고려인이었다.


‘이런 노래를 내가 안단 말입니다.’라고 하며 불러주었던 ‘칠갑산’. 노래 제목이나 이 노래를 부른 가수를 혹시 아는지 여쭤봤다. 제목도 가수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모국의 노래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마침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에 한민족 큰잔치 공연 팀으로 갔었고초대가수로 주병선 씨가 동행하고 있었다. 함께 있던 리포터가 재빠르게 주병선 씨를 현장으로 모시고 왔다. 할아버지께 ‘칠갑산’ 이 노래를 부른 가수라면서 주병선 씨를 소개시켜드렸다. 주병선 씨는 ‘이렇게 대한민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고 눈물나려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이런 칠갑산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고도’ 했다. 할아버지는 ‘내 마음이 그득하기 반갑습니다.’라고 응답했다. 우리는 즉석에서 주병선 씨한테 ‘칠갑산’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주병선 씨가 전반부를 열과 성을 다해 부른 후 후반부는 할아버지도 같이 부르도록 했다.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할아버지는 후반부 들어가는 첫 음은 잡지 못했다. 그러나 천천히 시집가던 날부터는 음을 따라잡더니 그 후로는 주병선 씨보다 더 큰 목소리로 이중창을 훌륭하게 마무리하는 모습, 지금 생각해도 나에게는 너무 감동스러운 취재 현장이었다. 눈물까지 훔치게 하는.


노래제목이 무엇이인지도 모르지만 가사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국의 노래이기에 늘 입에 달고 살아온 고려인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격세유전으로 그곳까지 갔을까?


키르키스스탄 고려인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칠갑산, 우리가 택한 산장로는 옛길로 예전에 이 길을 통해 산을 넘나들었다. 지금은 어머니길로 불리우고 있었다. 어머니의 기쁨과 화남, 슬픔, 즐거움 그리고 그리움 등 5가지의 스토리로 정상까지 가는 여정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칠갑산 옛길 어머니길 안내석

어머니품처럼 넓은 등반길이 막 끝나갈 지점 그리움 앞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내 곁에 있음에도 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늙어가기 때문이다.

사랑합니다.'

어머니길 그리움 안내석


칠갑산 등반길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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