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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리 Oct 03. 2022

저는 가을이 좋습니다

한의사와 함께하는 스트레스 인터뷰 2

가을이 왔다. 숨 막힐 정도로 덥고 습하던 여름날의 공기가 상쾌해지는 가을. 별것 없이 올해도 다 지나갔다는 생각에 허무할 때도 있지만, 나는 가을이 좋다. 맑고 파란 하늘도 좋고, 울긋불긋 물 드는 산과 들판도 좋다. 무엇보다 따사로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의 콜라보가 마음에 든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1년 중 가장 딱 좋은 시기. 얼마 가지 않아 손발이 꽁꽁 어는 겨울이 올 테니 하루하루 이 가을을 만끽해야 한다.


좋아하는 계절에도 자신의 성향이 반영된다는 것을 아는가? 나는 그냥 너무 덥거나 추운 건 싫고, 점점 더워지는 봄보다 점점 선선해지는 가을이 좋았을 뿐인데 그 속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힌트가 담겨있다고 한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1년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축제의 시기.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모든 걸 날려버리는 해도 있다. 울분에 차 있거나,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덤덤한 농부의 인터뷰는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먹먹하게 한다. 수확 시기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는 상실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걸까.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야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이 진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말을 듣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이거였구나. 내가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


작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거라 예상되는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 중 하나. 나 또한 내가 창작의 고통을 겪어가며 하루하루 성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그동안 나는 창작의 주도권을 온전히 쥐고 있지 못했다. 


선배 작가에게, 방송국 CP에게, 클라이언트에게 컨펌을 받아야 마무리가 되는 절반짜리 창작.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쓴 글을, 남들은 아니라며 다르게 쓰라고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내가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납득할 수 없는 지시도 많았다. 창작은 정답이 없다지만 나는 항상 정답을 찾아야 했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아니, 이럴 거면 자기들이 직접 쓰시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내 안의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여갔고, 결국 내 몸은 실신으로 내가 더 버틸 수 없음을 알려줬다.


10년 가까이 해왔던 일이지만 결국 내게 맞지 않는 길이었음을,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닫게 된 순간.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걸까’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렸다. 사실 스트레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부터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지만, 한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가을을 좋아하는 내게 어울리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과정 속에서 답을 찾고 성장할 수 있는 일.


나는 베이킹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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