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내 집 마련을 소망합니다
나는 내가 기억도 못하는 모태 시절부터 꽤 오랜 시간을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좁은 셋방에서도 자식들을 여럿 낳아 기르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집 평수를 넓혀가는 재미로 사는 게 보통 신혼부부의 성공 스토리였다. 우리 엄마도 아빠와 결혼하며 그런 전개를 예상했을 것이다. 부푼 마음으로 입성한 단칸방에서 동네만 다른 단칸방으로, 그다음엔 같은 동네 또 다른 단칸방으로. 1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늦은 밤이었다. 불 꺼진 방, 텔레비전에서는 애국가가 나오고 있었고 머지않아 지지직거리는 화면만 보이게 됐다. 분명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던 아빠가 그냥 잠이 들어버린 거다. 엄마와 나는 그보다 먼저 잠들어 버렸을 테고. 중간에 잠이 깬 나만 애국가를 듣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화면만 멍하니 보게 된 것이다. 기억나는 장면은 여기까지. 그날 밤, 리모컨도 없이 다이얼을 돌려야 끌 수 있었던 옛날 텔레비전을 누가 껐는지는 모르겠다.
좁은 방 한 칸에서 가족끼리 오손도손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따뜻한 사례도 물론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쑥쑥 크는 유년시절에도 밤늦게까지 켜 있는 텔레비전 소리에 잠을 설쳤고, 화장실과 욕실도 꼭 바깥에 있어 추운 겨울에는 미루고 미루다 미룰 수 없을 때 마지못해 방을 나섰다. 옥상에 올라가 놀 때도 우리 방 위의 땅만 밟고 놀아야 하는 건지,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이런 불편함은 기꺼이 참을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화목한 가족이었다면.
가화만사성. 엄마와 아빠는 이 다섯 글자의 한자성어를 몸소 증명했다. 우리 집은 화목하지 않아 되는 일이 없었다. 아니, 되는 일이 없어 화목하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도 늘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나와 동생이 잠든 후에 싸우는 매너는 있으셨지만, 진짜 자고 있는 건지 확인하는 치밀함까지는 없으셨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미웠고, 엄마는... 불쌍했다.
단칸방에서 보낸 유년시절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소심한 성격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매사 생각이 많다. 성인이 되고 자취할 집을 구할 때마다 절대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은 청결한 욕실이었다. 여행 갈 때도 숙소 선택의 최우선 순위는 욕조의 유무다. 그리고 아빠는 내게 여전히 미운 존재, 엄마는 아빠 몫까지 평생을 고생한 우리 집 기둥이다.
엄마는 정년퇴직을 하고 난 후에야 주택을 소유하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무주택자다. 내가 집이 없는 걸 아빠 탓을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고, 그저 부동산에 무지했던 나에게 부끄러운 고백이다. 어떤 측면에서 결핍은 동기가 되기도 하던데... 평생을 무주택자로 살아왔음에도 왜 내집마련을 간절히 원하지 않았을까.
이제 나는 스스로 이 무주택자 신분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부끄럽지만 더 솔직하게, 꾸밈없이 나와 마주하기 위해. 앞으로의 이야기는 이제야 내 집 마련을 간절히 꿈꾸게 된 30대 중반의 글쓴이가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의 나를 반성하는 고백의 글이다. 그러니 이 글이 끝을 향해 갈 때쯤엔 부디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도 깨닫게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