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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Jun 28. 2020

가끔은 아내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감정 들여다보기

아내를 알고 함께 지낸 시간이 이제 곧 20년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 시절을 제외하면 내 인생 거의 절반을 아내와 함께 보낸 셈이다. 앞으로도 그만큼, 그 이상을 함께 일 테니 아내는 내게 누구보다 큰 사람이 맞다.

이러한 일을 생각하면 가끔 세상일이 얼마나 우연하게 일어나는지 모른다. 지금 곁에 있는 아내는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만났고 또 살고 있으니, 인연이란 말로 포장된 우연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에 여름 옷가지를 사러 쇼핑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평일에 하지 못한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년에 교통사고로 작고한 회사 지인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유족이 납골당에 있는 유골함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말이었다. 납골당까지 거리가 멀기도 하거니와 갑작스레 잃은 가족에 대한 슬픔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어 그럴 거라고 내 생각을 말했다. 조용히 듣던 아내가 말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죽으면 모두 끝인데..."

이어 정작 자기가 먼저 죽으면 그냥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다. 실제 일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부탁을 무덤덤하게 말하는 게 놀라웠고, 바다에 뿌려달라는 말도 의외였다. 잠깐 머뭇거리다 나도 힘을 빼고 대답했다.

"그래 그럴게. 나도 그렇게 해줘."


사고는 너무 급작스러웠다. 오랜만에 떠난 여름휴가, 새로운 곳에서 맞이한 아침에 가족 모두를 태우고 이동하는 길이었다. 일상의 루틴을 떠나 한없이 기대했을 것이고 그날 오후를 즐기려고 했을 것이다. 잠깐 찰나에 마주 오는 차량과 부딪혔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했지만, 한 사람만 크게 다쳤고 며칠 만에 급하게 떠나버렸다. 모든 상황이 우연이었다. 그 시간에 이동한 것도 그 도로를 지나는 것도 마주 오는 차량도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만 그렇게 된 것도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유족들의 눈빛과 울분을 그리고 가늠할 수 없던 미안함을 내내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운전을 했던 배우자가 그랬다. 남아있을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말로 표현 못 하는 감정의 크기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일 것이라 생각했다. 감히 함부로 짐작해서는 안 되는 크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망자가 남긴 물건은 사실 죽은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이 원래 기능을 하기가 어려울 테고, 그 물건에 담긴 사연 때문에 웬만한 다른 사람이 쓰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 물건들은 대개 망자의 기억을 품고 남게 되는 것이다. 어떤 남은 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된다. 특히, 남은 이들 중에 가장 미련 많은 사람에게는 숙제가 된다. 같이 찍은 사진, 함께 있는 동영상, 입었던 옷과 가방, 이불과 베개, 카톡에 남아있는 대화들, 심지어는 작은 항아리에 담긴 유골 가루마저도 남은 자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중략) 삶은 그런 식으로 소진되며,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


우연은 좋은 결과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서있기도 한다.

내가 아내를 만난 일이 전자라면, 작년 휴가 중에 벌어진 지인의 비극 또한 우연이다. 죽음은 필연이지만 언제 찾아올지는 우연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비극적 우연히 낳는 아픔이 남은 이들에게 작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아쉬움이나 안타까운 것들을 평소에 털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했어야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두 미련의 말들이며, 평소에 쌓아두지 말아야 한다.




내 기억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다. 영원이라는 시간의 틀에서 아내와 함께 있던, 20년은 그저 찰나의 시간도 안될 것 같다.  

그러니, 바다든 집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든 어디에 유골을 놓아둔들 세상 일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남은 이의 욕심일 뿐이다.


바다를 말하는 아내의 뜻을 모를 리 없다.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하는 평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때가 되면 또 다른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 지인의 배우자처럼, 그때 내게도 아직 미련이 남아있다면, 쉽게 바다로 떠나보내는 용기를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내의 유언이라도 말이다.


가끔 아내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미련이 남지 않도록, 삶을 본질 쪽으로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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