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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Jul 05. 2020

가끔은 멀리서 들여다볼 줄 알아야

감정 들여다보기


'찌르르륵~  찌르르륵~ '

귀뚜라미가 소리가 맞나 싶다. 가을에나 어울리는 소리지만, 귀에 쩌렁쩌렁 들린다.

'뿍뿍뿍뿍...뿍뿍뿍뿍...'

숨을 참아가며 꽤 오래 울어대는 이 소리는 크기를 감안한다면 곤충이 아니고 새의 소리이다. 구성지게도 뱉어내는 중이다.

'삐르르르, 씨르르릭'

온 힘을 짜내며 긁어내는 익숙한 이 리듬은 매미가 확실하다. 아직은 철이 일러서인지 소리가 수줍게 들리기도 한다.


자연의 소리를 글로 옮기는 일은 참 어렵다.
섞여있는 소리들을 발라내서 하나씩 따라 적어보니, 내 소리글은 자연의 소리에 모자라도 한참이 모자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억나는 글 중에서 자연의 소리를 그럴듯하게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나의 부족함은 나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소리 기호가 자연을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고 초라하지 않을까 싶다.



캠핑장의 밤은 도시의 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만큼 낯설고 풍부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지만, 자연의 소리와 냄새 그리고 빛이 주는 향연은 마음을 가라앉힐수록 깊어지며, 그럴수록 글로 담아내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집중하면 할수록 내 몸을 더욱 작아지게 만든다.

밤이 주는 풍요로움을 모두 담아내지 못해 못내 아쉽다

가장 먼저 귀가 반응한다.

산을 끼고 굽이굽이 흘러가야 하는 계곡, 그 속에는 온몸을 부딪혀 깨지는 물의 소리가 있다. 리듬을 타듯 물의 가락 사이로, 이름 모르는 새의 스산한 울음이 섞이고, 풀벌레는 또 그 새소리에 뒤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울어댄다. 조금만 더 세밀하게 귀 기울이면 그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여기 살아있노라고 알리는 또 른 무엇들의 아우성도 있다. 바람이 소곤대거나 나무의 속삭임마저 들리지 않을까 싶을 만큼, 풍요로운 소리들이 춤을 춘다.


코로 전해지는 것도 새롭다.

풀의 냄새, 나무의 냄새가 있고, 돌과 흙의 향기도 있다. 확실하게 내가 이런 것들의 냄새라고 단정하는 것은 콧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들에는 분명히 이곳을 이루는 풍경들이 자신의 몸뚱이 중 일부를 쪼개서 가볍게 하여 온 사방에 띄워 보내고 있을 것 같아서다.
밤비가 내리던 날, 라디오 디제이가 알려준 비 이야기가 기억났다. 비 냄새의 정체는 빗방울들에 의해 바닥에 있던 흙 알갱이들과 땅속의 미생물들을 위로 밀어 올려서 나는 냄새라고 말이다. 지금도 비 냄새처럼 이곳을 이루는 것들의 향이 아닐까 싶다.  


어둠 속에서 눈은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새까만 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빛을 보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오늘은 구름이 절반 이상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머리 꼭대기서부터 아래로 훑어내려 오면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온우주의 색이 바탕색을 이루고, 그 위로 약간 옅은 구름 색으로 덧칠한다. 계속 쳐다보면 움직이는 덧칠이다. 유유히 흐르거나 역동적으로 몸을 바꾸며 떠다니는 풍경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밤하늘과 밤 구름이 윗머리의 풍경이라면, 조금 아래는 검은 산들과 그 그림자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더 가까이는 하늘과 산보다 더 큰 나무들이 흑백사진이 되어 하늘과 산을 덮는다.

온 세상이 흑백이다. 큰 우주 속에 구름이 떠다니고, 그 아래 산들이 받쳐 들고, 나무들은 기둥으로 우뚝 솟아 있는 셈이다.


거의 1년 만에 캠핑장을 찾았다.
지난해 6월, 양평의 어느 캠핑장을 다녀오고는 처음이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서 마음에는 계속 캠핑을 가야지하고 노래를 불러왔었다. 무척이나 가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여러 가지 개인적 고민이 생기고, 회사일이 겹쳐갔다. 심지어 코로나까지 발목을 잡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다 보니, 벌써 반년이나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방콕만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아이들 수발에 답답해하는 아내에게 바람이라도 쐬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용기 내서 캠핑장을 찾아온 것이다.

아이들은 쉽게 친구들을 사귄다
아내의 혼자있는 시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캠핑은 그런 시간을 주는 적절한 활동이다.

낮 동안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저녁에는 바비큐 식사를 한 후 몇 시간이 지나니, 드디어 혼자 있는 밤이 되었다. 가족들과 부대끼며 추억을 만드는 시간도 캠핑의 묘미지만, 무엇보다 혼자 감상하는 밤이야 말로 캠핑의 절정이 아닐까 싶다.

눈과 귀와 코로 전해오는 감각들이 충만해지니, 일상의 고민들마저 미미해진다.

'그 보고서에 왜 그렇게 얽매였는지...'

'그냥 넘어가지 왜 얼굴을 붉히고 그랬는지...'

왜 그리 아웅다웅하며 지내고 살아가는지, 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홀로 있는 풍요의 밤이 알려준다.

비워 채워진다고들 하지만, 채워지면 밀어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한 인간으로, 찰리 채플린이 알려준 지혜이다.

사람을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그의 말이라, 인생에 대한 해석이 더욱 깊고 날카롭게 들린다.


힘이 들면 여행을 다녀오라고 한다.
삶에서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새 공간에 서면 자신의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일상은 세상이 만든 틀 안에서, 규칙을 지키고 욕심도 부려가며 치열하고 완벽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니 비극의 장르이다. 반면, 한 발짝 떨어져서 쳐다보는 일은 당장은 고달파도 나중되면 어떻게든 좋게 마무리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이기에 희극이다.


지금 캠핑장의 밤처럼, 가끔은 멀리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새와 곤충과 자연이 불러주는 응원의 노래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공짜의 노래를 그저 즐기면서 일상을 다시 쳐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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