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 잔잔해지기 마련이다. 시간의 흐름은 기억의 망각 작용과 합하여 희열은 희미하게, 상처는 또 아물게 하는 것이다. 어느 만큼 흐르고 나면 그 폭풍이 언제 불었는지 잊혀져 가고, 그저 지금의 평온한 바람으로 항해하고 있음을 감사하기도 한다.
사고가 있었던 작년 이맘때와 그 이후 몇 개월간의 나를 비교해보면, 요즘의 일상과 오늘 아침의 평온함은 시간이 변화시킨 나를 얄밉게도 미안하게도 만들기도 한다.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어떤 옷을 입을지 옷장 앞에서 몇 벌이나 꺼내서 고민하기도 하고, 유가족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고민스러웠다.
선배 J가 사고로 떠난 지 1년이 되어 추모 모임을 하는 날이었다. 보름 전 선배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고, 어느 날짜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추모를 하고 점심도 같이 하려 하니, 시간이 되면 나도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이라고 했다. J와 지내는 수천일 동안, 셀 수 없는 진심을 받으며 나 또한 친누나라 여기며 지냈다. 그러니, 오늘 나를 초대한 이들도 그저 스치는 타인이 아닌 셈인 것이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후배 L을 지하철 역에서 태웠다. L도 J 특유의 배려를 잊지 못하는 친구였고, 추모하는 일에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L은 차에 오르면서 회사보다 훨씬 과하게 아침 인사를 했고, 아무 일 없듯 우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리창에는 그제 폭우가 쏟아진 이후여서인지, 지난 사이판 여행에서 보았던 그 하늘과 그 구름처럼 맑고 깨끗하게 비추고 있었다. 혼자 갔더라면 벌써 눈물을 참기 어려웠을 거라고 되려 L의 밝은 인사와 가벼운 대화가 고맙게 느껴졌다.
초대한 아들이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피케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선배의 남편(아저씨)도 작년에 있던 장례식 내내 입고 있던 그 옷을 입고 있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허리 인사를 하며 악수를 했다. 너무 반가워서 크게 웃어버렸음을 알았다. 이내 다시 얼굴 근육을 멈추려고 신경 썼고,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아저씨와 안부를 물으며 천천히 2층으로 향했다. 209호로 들어섰다. 좌우로 빼곡하게 나누어져 있는 사각의 선반들, 그 위에는 항아리들이 놓여있었다. 우측 중간에 있는 선배의 공간, 맨 아래쪽에 꽃다발 하나가 놓여있었고, 선배의 유리창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몇 장의 메모지들이 보였다. 걸음을 옮겨 다가섰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거친 컬러 프린트기로 인쇄되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보기에도 4남매는 젊고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선배의 모습은 내 기억 어느 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누군가가 가장 기억 남는 소중한 모습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 안을 들여다본다. 오른쪽 귀퉁이에 세장의 사진이 있었다. 그중 가운데 있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가장 익숙한 얼굴의 사진이 있었다. 저 옷을 입고 나와 모닝커피를 마시고, 답답한 L팀장이랑 힘을 모아 싸우기도 했었다. 뜨겁게 훅하고 달아올랐다. 재빨리 마스크를 위로 올리고 숨을 죽였다. 그리고, 다행히 붙어있는 메모지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이 쓴 글이었다. 지난 6월에 새 회사에 합격하게 되었는데, 그 회사가 바로 본인이 꼭 가고 싶었다는 회사였다. 그리고, 이렇게 해냈으니 자랑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을 적어 놓았다. 그랬겠지. 우린 누군가에게 칭찬받으려고 사는 거니까. 타자에게 인정받으려고 사는 것이 삶의 이유 중 하나이니까, 엄마에게 얼마나 인정받고 싶었을까 그 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보니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배가 떠났지만, 내게 남은 회사 일은 그대로였고, 올해는 되려 더 많고 더 새로운 일들이 주어졌었다. 다행히도 같이 일하게 된 후배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중인데, 정작 선배의 칭찬을 못 듣고 있으니, 이 허전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도 이럴진대, 칭찬받고 싶다는 아들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다.
아저씨는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었다며 힘겨운 고백을 건넸다. 추모공원을 나와 같이 점심을 먹은 후에, 담배를 피우면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그때 사고는 오로지 본인의 과오 때문이고, 그래서 아들과 회사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말았다고 했다. 담배 연기로 뿜어내는 한숨에 그때의 생각을 또 하고 있음을 알았다. 매 순간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서 후벼 파고 있을지, 그의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팔을 감싸고만 있었다.
대부분에게 시간은 기억을 무뎌지게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람에게 시간은 계속 상처를 내고 계속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확실히 상대적으로 흘러간다. 지난 일 년 동안,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았고,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되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진행 중인 아픔의 시간이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했던 오늘에, 이 감정들 또한 내년 7월이 되면 희미해질 것이다. 또, 확실한 것은 J가 없이 살아가는 방법도 점점 더 익숙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게 나의 시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