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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Aug 12. 2020

알려주지 않을 어른의 비밀

감정 들여다 보기

"아빠,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 종종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녀석들 눈에  아빠는 사고 싶 카드로 뚝딱 사고, 가고 싶 운전해서 , 무엇보다 녀석들이 제일 부러워할 핸드폰 게임 유튜브 영화 보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슈퍼맨 같은 자유를 러워할 것 같다.


하지만, 녀석들이 알지 못하는 어른 세계도 있다.




혈액검사와 CT로 엄마가 병원 오는 날이었다. 어제 오후, 열차 앱에서 기차표를 끊고 시골에 전화를 넣었다.
"엄마요. 10시 51분 출발하고요. 17호차 4B입니더."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몇 번을 말다. '17호차, 4B'라고 대여섯 번을 반복했던 것 같다. 엄마는 17호를 7호라 말하기도 고, 4B와 4D를 헷갈리기도 다. 그래도 몇 번 불러주다 보면 제대로 전달되는 걸 알기에, 엄마 입으로 두 번을 확하게 말하는 것을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머리 혈관 막혀 생긴다는 뇌졸중, 이 몹쓸 병이 엄마에게 찾아온 지 3년 되었다. 집안의 모든 제사 줄줄 꿰차던 슈퍼 억은 그 뒤로 을 멈췄다. 울 큰 병원 외래 일정 있을 때는 어제처럼 화와 씨름 한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라며 음을 달래 변화된 관계도 서서히 일상이 되어가는 중이다.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전 업무 시간 동안 초인이 되었다. 몇 시간짜리 작업 분량의 보고서를 뚝딱 해치고, 팀장에게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는 회사를 나섰다.

밖이 후덥지근했다. 지루한 장마가 잠시 그친 틈에 구름은 엷어졌지만, 구름 뒤의 태양 열기 도시를 끓이는 중이었다. 눅눅하고 끈적거리는 기에다 오늘은 기온마저 제법 올라 등과 이마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 덜거릴 여유가 없었다. 혹시 늦을까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했고 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마스크 안 콧잔등 땀으로 가득 , 코로는 가뿐 숨을 헐떡다.

'이 몹쓸 놈의 코로나'

손등으로 연신 이마 훔.
 기차 도착 안내가 들렸고, 나는 9번 플랫폼, 17호차 출입문 앞에 멈 다.


맨 앞사람을 봤다. 걱정 많아진 엄마는 언젠가부터 기차에 내릴 때는 매번 맨 앞에 내리기에, 오늘도 맨 앞사람을 쳐다보았다. 아니었다. 더 급했던 사람이 있나 보지 하며, 바로 뒤 봐도, 그 뒤를 봐도 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뭘 하시느라 늦었나 보다.' 

한 사람 내리고 또 다른 사람이 내렸다. 줄줄이 내리는데도 보이지 않다. 이윽고 마지막 사람까지 내렸다. 이내 주변 다른 칸둘러본다. 16호칸으로 내렸나? 아니, 18 호칸으로 간 것은 아닐까? 이리저리 봐도 보이지 않았다.  열차 위로 올라가 보았다.

17호 4B좌석에는 아무도 없었고 객실도 텅 비었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돌렸다. 신호만 울릴 뿐 받지 않는다. 평소 쓸데없는 전화가 많아 싫다며 핸드폰 늘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두는 시골 할머니.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제때에 받아야지. 혹시 집에 놔두고 온건 아니겠지? 아니면 가방 어디에 처박아 두었으려나? 아휴 정말, 이 할머니... 핸드폰 좀 받지'

생각이 많아지며, 마음도 동동거다. 발이 뜀박질을 시작했다. 플랫폼 출구 쪽 에스컬레이터로 바삐 뛰어가서 이 사람 저 사람 앞뒤 모습을 살폈다. 발 뒤꿈치를 들고 에스컬레이터의 위에서 아래로 쭈욱 살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하고, 저 멀리에 아까 내린 기차 출입구를 확인도 했다. 핸드폰 신호 계속 울리기만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등짝도 흠뻑 젖었다.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파묻혔다 이내 그 틈으로 보였다 하는 자그맣고 파란 옷의 실루엣 하나가 들어왔다. 여름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있고, 왼다리를 살짝 절뚝거리며 걷는 익숙한 걸음 틀림없었다. 빛바 파란색 블라우스 질감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못 보던 여름 밀짚모자를 눌러썼고, 키가 작아서 더 길어 보이는 장우산을 지팡이처럼 쥐고 있고, 어깨에는 내가 쓰다가 고향 집에 내버려 둔 회색의 가방도 매고 있었.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에 비해 거북이 마냥 느릿느릿 걸어가는 할머니를 드디어 찾아냈다.


플랫폼을 나와 서부역 택시 정류장까지 손을 꼭 잡고 갔다.

"우리 아들 손, 따뜻하네."

그랬겠지. 엄마는 에어컨 빠방한 기차에 두 시간을 앉아 왔으니, 엄마 손은 시원할 수밖에. 반면 아들은 손에 땀날 일이 있었는데, 알기나 할까. 이건 뭐 엄마 찾아 삼만리도 아니고.
"엄마요. 근데 오늘 어디 앉아 왔능교?
"몰라. 아버지가 써준 대로 앉았지."
파란 블라우스 가슴 주머니에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10시 50분, 7호차 4D'

어제 그렇게 알려준 자리 번호를 글자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다시 옮면서, 저렇게 적어놓은 것이다.
헛웃음 함께, 이 두 사람을 어찌할꼬 싶었다.

좌석번호를 더 꼼꼼히 확인해야 하나? 기차표를 우편으로 보낼까? 내려가서 직접 모셔 수도 없을 텐데...
현실 답을 찾지 못한 채, 택시 타는 내내   잡고 있었다.



어른 할 수 없는  널리고 널렸. 

아무리 해 몸이 안 되는 어른이 되기도 하고, 이 성해도 못하는 어른일 때도 있다.

장 마음 아픈 사실이지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사실도 있다.


럼에도 점점 잘하 일이 있다면, 잘 체념하는  그 체념에서 좋게 바라보는  늘어간다는 것이다.


녀석들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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