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어느 칵테일바에서 홀딱 반한 아가씨를 앞에다 두고 하염없이 떠들어댔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사격장에서 무릎 기어가며 누구보다 멋진 사격 솜씨를 뽐냈다는 이야기, 곤히 잠든 새벽 갑자기 출동 명령이 떨어졌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오대산까지 와서 참호 파고 경계를 섰다는 이야기, 한 달치 담배의 절반과 그달 월급의 절반을 걸고 치열하게 축구 시합을 했다던 이야기, 첫 외박을 나왔다가 느슨하게 풀린 군화끈 때문에 부모님 보는 앞에서 헌병에게 딱 걸렸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연애를 막 시작하려던 긴가민가 하던 시기였음에도 군대 이야기와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를 시원하게 털어놓았었다.
기억 중에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부끄러운 장면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연애 시절의 이야기다. 그나마 변명을 하자면 그때에 나는 복학하고 2년 가까이를 솔로로 지내던 시기였고, (부끄럽지만) 사실 그때까지 제대로 연애 한번 못했던 숙맥이기도 했다.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때는 이성에게 자신이 없었고 반면에 마초 친구들과 노는 일이 익숙하고 재미있었다. 여자 친구는 다 때가 되면 생긴다는 어느 선배의 충고를 품고 살았다. 친구들은 운동에 빠진 나를 '체육 특기자생'이라고 놀려댔다. 시험기간이 아닐 때는 축구, 농구, 족구, 테니스, 탁구, 볼링, 수영 등 온갖 운동을 하느라 바빴고, 저녁에는 피시방과 당구장에서 또 다른 승부로 바빴다. 그러니 이 아리따운 아가씨를 두고 군대 이야기를 할 만큼 연애에 대한 소양과 교양 부재의 무지한 인간이었다.
퇴근하고 오니 아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에게 조금 서운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가자고 했다.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행히 기분은 조금 풀린 듯했고, 재미 삼아 해묵은 이야기 하나를 꺼내 보았다. 은퇴 후 우리가 살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해묵은 대립은 사람은 마당 있는 주택에서 살아야 한다는 나의 소망과 날파리 한 마리에도 비명 지르는 모태 도시녀, 아내와의 대립이다. 나에게 집이란 이렇다. 마당과 텃밭이 있고 주변에는 개울과 산이 있어야 비로소 조건이 된다. 지금처럼 따닥따닥 층층집은 집 같지가 않다. 뼛속까지 시골 향이 박혔는지 그래서 여태껏 사는 아파트가 지금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아내가 딱 걸린다. 작은 벌레 한 마리에 크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 나의 주택 소망은 요원한 것이다. 그냥 요즘은 아파트의 좋은 점을 크게, 아주 확대해서 보려고 노력하며 산다.
요즘 티브이에 이사 갈 집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내가 살 집이 아닌데도, 아기자기 꾸며진 인테리어와 집안 구조를 보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그중에도 내게 적당해 보이는 시골 위치에, 시원한 잔디마당, 잘 꾸며진 전원주택이 간혹 나오기도 한다. 한 번은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의 전원주택이 나왔는데, 아내가 관심을 보였다. 나도 저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 집이 저 정도 된다면 오케이라는 말이지. 아마 벌레도 어떻게 될 거야. 또 살다 보면 이 사람도 벌레에 적응할지도 모르고...' 그런 의미로 오늘 전원주택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아내는 단서를 달았지만, 제법 생각이 바뀌었다. 2년 정도 전세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했더니, 그러면 자기 공간이 있으면 좋겠고, 적당히 도시와 가까워야 하고, 벌레가 들어오지 않는 구조면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같이 걷는 동안 나도 힐링했다. 여름밤 공기와 아기자기한 아파트 산책길도 좋았지만, 군대 축구 이야기 같이 일방통행이 아니라, 같이 맞이할 미래를 기분 좋게 나누는 대화의 시간들이 마음에 들었다.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았다. 시간이 물 같다더니, 20년도 정말 물같이 흘렀다. 스물 다섯 혈기 왕성한 이십 대부터, 이제 인생 맛을 조금 알아가는 사십 대 중반까지, 그 오랜 기간 동안 곁에 있어 준 사람이 조금 전까지 나와 걷던 아내이다. 칵테일바를 생각하면 참 많이 변했다 싶다. 꽃 같은 한 사람이 있었고 연애 초보 순진남도 있었고, 둘 다 모두 꽃 같은 청춘이었는데, 쌍둥이 키우느라 인생 고를 견디느라 그 청춘은 휘리릭 지나간 듯하다. 아쉽고 애통해도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오늘 기분이라면 그리 부럽지도 않다.
산책길에 이 질문도 했다. "근데, 자기는 대체 뭘 믿고 군대서 축구하는 이야기나 해대는 남자와 결혼한 거야?" 아내가 응수한다. "그니까 말이야. 얘들한테는 꼭 연애 많이 해보고 결혼하라고 할 거야." 살가운 대답이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사는 일에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했던가? 아닌 것 같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