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고 다닐수 있는 야외공간
“난 미음’ㅁ’자 모양으로 집을 만든 다음에 중정에서 빨게벗고 다닐꺼야!”
샤워 후 자연인의 모습으로 내가 선언했다.
“응~ 그래요~” 축구방송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남푠이 멜로디처럼 대답했다.
남푠은 어떤 집에서 사는 것보다 어떤 사람과 사는게 더 중요하단다. 난 다 중요하다.
가운데 마당을 두고 건물이나 건물 높이의 담을 삥 두르는 ㅁ자 모양 구조를 생각하게 된 건 사실 옛날에 <스노우캣> 권윤주 작가님이 올린 집 그림을 보고나서다. 그 그림은 찾을수 없어서 더이상 볼수 없지만, 그 집 구조의 요점은 사방이 집 & 차고 & 높은 담으로 둘러쌓여서 고양이가 잘못해서 바깥에 나갈 일 없이 안전하게 마당에서 놀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그 그림과 똑같은 집을 짓지는 못했지만, 서울 도심의 한 오래된 주택을 예쁘게 고쳐서 둘째 고양이 은동이와 살고있다. 한옥처럼 ㅁ자 구조라는게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런 집이 고양이가 실/내외를 오가며 안전하게 살기 좋은 구조라는건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렇게 둘러쌓인 중정 혹은 안마당은 고양이 뿐만 아니라 사람 한테도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적 야외 공간이 된다.
집(건축)은 공간을 나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가지 시선이 생긴다.
1. 내가 집 밖을 내다보는 시선 -> 창문 밖 풍경~
2. 남이 내 집을 들여다보는 시선 -> 프라이버시 침해!
1은 좋아야하고 2는 노출증 환자가 아닌 이상 막아야한다.
집에서 창문밖을 봤을 때, 뷰가 예쁜게 당연히 좋다. 호텔도 예약할때 보면 오우션뷰냐 시티뷰냐 주차장뷰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오억년전 디즈니랜드에 고딩친구들과 갔을때, 부우자 중국인 친구의 은혜를 입고 디즈니랜드 안의 호텔에 다같이 머무는 경험을 할수 있었는데, 디즈니랜드뷰의 룸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부자 중국인 친구도 거기는 무리라고 해서 다른 방을 골랐던게 기억난다. 당연히 뷰는 기억나지 않는다. 1년에 갈까말까한 호텔의 뷰는 열심히 신중을 다해서 고르는데, 집의 뷰는 더 신중하게 골라야할 것 같다. 그런데 금전적 여유가 없고 도시에 살아야하는 우리는 대부분 어쩔수 없는 뷰를 보고 산다. 나같은 경우 왕복 12차선 도로뷰와 옆 건물 옥상의 실외기뷰를 보며 살고 있다. 그 너머에 저어어멀리에 모기 바늘만하게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그나마 보이는데, 너무 작아서 그저 밤에 무슨색 조명을 켰는지 알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나게 양호한 뷰다. 적어도 남의 집 담벼락이나 창문을 가까이서 마주보고 있지 않은게 다행이다.
단독주택 하우스의 경우, 처음부터 예쁜 모습을 갖고 있는 동네나 자연풍경을 선택해 들어갈 수 도 있지만, 내가 소유한 내 집 터 말고는 사실 다 불확실하다. 보통 집 주변 뷰는 운에 맡겨지게 된다. 동네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예쁘게 관리 할지, 새로운 사람 이사와서 쓰레기집으로 만들지, 새로 높은 건물을 지어서 그늘지게 만들지, 눈꼴시려운 모양의 못생긴 주택을 지을지 모른다. 한국의 시골같은 경우 바로 옆에 비닐하우스를 지을지, 동물 축사를 지을지, 고물상을 열을지, 싹 다 아웃 오브 컨트롤이다. 자연 풍경은 어떨까. 바다라면 몰라도 산은 언제 싹 밀릴지 모른다. 부분탈모된 땜빵처럼 산을 밀어버리고 무덤이 들어올지 골프장이 들어올지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올지 모른다. 미국 서부 지역의 산들은 계속해서 불타없어지고 있다. 자연제해를 제외하고 내가 컨트롤 할수 있는건 오로지 내 토지의 내 마당 안이다!
나만의 뷰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창문에서 보이는 각도를 생각해서 나무와 풀때기와 조명으로 정원을 잘 꾸며놓으면 나만의 파크뷰가 된다. 그래서 난 집을 지을 때 건물만 덜렁 짓고 조경은 이사오고나서 대충 하는게 아니고, 건축 할 때 조경도 처음부터 설계에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집을 짓고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사적 야외공간이 절실해서였던 만큼, 집 안 & 집 밖이 똑같이 중요하다. 근데 대부분 보면 다들 집만 싹 짓는다. 집을 지을때 모자란 돈을 가지고 뭘 포기하냐 했을때 다들 제일 먼저 조경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예산에 안 넣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건축회사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흙바닥 위에 집만 덜렁 있는 사진이 많다. '어, 건축법상 반드시 나무를 심어야한다는데? 최대한 마당이 넓은게 좋으니까 제일 가생이에다가 심자! 이 흙바닥은 어쩌지? 걍 잔디나 싹 깔까? 비싸고 깎기 귀찮으니까 그냥 자갈을 싹 덮어버리자!' 이러는 경우가 많아보인다. 어쩌면 한국은 그냥 옛부터 워낙 주변을 삥둘러 산이 많아서 산 속에 집을 지으면 주변이 다 내 조경이다~ 해오던 거에서 이런 인식이 시작된걸지도 모른다. 한옥도 그냥 흙이나 돌판이 깔린 마당에 가끔 나무가 한두그루 있을 뿐이다. 잔디를 까는건 근래에 와서 해외문물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냥 별 생각없이 잔디가 예쁘지 하고 깔았다가 관리하길 포기하고 석판이나 자갈을 깔아버린다. 한국에선 대부분 자기 집 짓는건 중년 이후인데 평생 아파트에 살다가 갑자기 여름 내내 3일에 한번씩 잔디깎기 기계를 돌리고 관절도 안좋은데 쭈그려앉아 하루종일 잡초를 뽑는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캐나다의 주택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넓은 잔디밭 마당+나무들을 관리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애초부터 자기들도 살기위해 뿌리내리고 자라나는 식물들을 인간이 인간들의 입맛대로 여기 심고 저기 심어서 모양을 컨트롤 하려는것 자체가 자연을 역행하려는 우스운 짓거리다. 잔디밭의 잡초는 비만 한번 오면 게임 재부팅 한 것처럼 싹 다 리셋된다. 큰 나무들은 걍 냅둬도 되는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잔디 보다 훨씬 힘들고 위험하고 돈이 들어간다. 가지를 매년 쳐줘야하는데, 나이 먹은 큰 나무들이 즐비한 캐나다의 한 동네에 있는 승숙(my母)의 집은 차원이 다르다. 그냥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자를 수 있는 나무들은 신체 건강한 사위(윤이콘씨)가 있다면 무료로 다듬을 수 있지만, 몇 십 년 된 높은 나무들은 넘사벽이라 사다리차를 타고 오는 전문가를 불러야한다. 그런 나무들 가지치기를 맡기면 한 번에 몇 천 달러가 통장을 훅 빠져나간다. 가장 난감한건 거대한 나무가 아예 죽어버릴 때다. 저들끼리 땅 밑에서 뿌리로 경쟁하다가 졌는지 어쨌는지, 그냥 어느날 갑자기 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 말라죽어버릴 때가 있다. 그런 막 10미터 넘는 통나무가 죽은채 서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도로로 쓰러지거나, 지붕 위를 덮쳐오면 그야말로 자연 재해다. 캐나다에서는 매년 나무를 베는 일을 하다가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위험수당이 붙어서 작업비가 비싼 것이다. 1년에 그런 나무 두어 그루를 처리하면 만불이 우습게 넘어간다. (천만원 넘는 금액) 오래된 멋진 나무들이 감싸고 있다고 좋다고 이 집을 샀던 승숙도 전혀 몰랐다. 이 나무들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그런 집을 처음 사봤으니 몰랐겠지.
캐나다 주택지의 집들은 대부분 엉덩이를 등대고 앉아있는 것처럼 이웃과 뒷 마당이 붙어있는 구조라서 양 옆 집, 뒷 집과 마찰이 생기는 것도 흔하다. 승숙의 뒷 집에는 한 할머니가 홀로 살았는데, 우리집 뒷 마당의 멀쩡히 잘 살아있는 나무들이 "자기네 집으로 쓰러질것 같다"고, "자다가 깔려죽을까봐 무서워서 못 살겠다"고 시청에 계속해서 컴플레인을 넣는게 취미생활이셨다. 자꾸 공무원이 우리집으로 찾아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결국 우리의 쌩돈을 들여서 그 멀쩡한 나무들을 베어내야했다. 승숙은 뒷마당을 내다보며 항상 저 ‘미친 할망구 언제 죽나’하면서 이를 갈았다. 다행히(?) 요즘은 출몰하시지 않는다고 한다. 그 할머니가 승숙의 저주로 돌아가셨는지 어쨌는지는 알수 없다. 금전적 출혈이 심했던지라 그 후로 높은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못 했더니, 한 2년 사이에 나뭇가지들이 무시무시하게 자라서 하늘을 거의다 덮어버렸다. 구글맵 위성사진으로 보면 나무에 파뭍혀서 집이 안보인다. 덕분에 여름에 집이 시원해졌지만, 마당의 잔디는 절반이 이끼가 되었고, 꽃은 하나도 안 자라고, 심지어 비오면 버섯들이 쑥쑥 올라오는 음지식물 천지 집이 되었다. 나무가 많아서 프라이버시에 좋을 것 같지만, 그건 하늘에서 내려다 봤을 때 이야기고, 나무가 너무 크게 높이 자라면 오히려 아랫 기둥쪽엔 나뭇잎이 하나도 없어서 사이로 다 보이고 울타리 기능을 못한다. 가을에는 나뭇잎이 덤프트럭으로 치워야할 만큼 쌓여서 매일매일 열심히 모아서 버려야한다. 아직 안 치웠는데 비라도 오면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서 뭉게지기 때문에 치우기가 더 어렵게 된다. 안치우고 뻐팅기면 또 뒷 집 할머니가 컴플레인을 걸어온다! 낙엽이 쌓여서 썩어서 생겨난 벌레들이 자기네 집으로 쳐들어온다는둥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나는 내 집을 지으면, 돌바닥 마당 안에 정원을 만들되, 쪼크맣게 만들 것이다! 한 5 평방미터 정도? 크게 자랄 나무는 가운데 딱 한 그루. 내가 감당 가능한 사이즈가 제일 좋은 사이즈다. 집 밖에 내가 컨트롤 할수 없는 주변환경과 자연 뷰는 처음부터 내 우선순위 리스트에 없었다. 그냥 주변 집들이 좀 널찍 널찍 떨어져있으면 된다. ‘바다가 보이는 집’ 이런거 안해도 된다. (바닷가 땅은 대부분 비싸고 난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돈 모으기 싫다.) 내 집은 그냥 쇼폴리랜드뷰가 될 것이다. 야외키친 앞에는 쪼끄만 입식 텃밭이랑 흙이랑 섞는 음쓰통이 있고, 마당의 테두리에는 들꽃인지 뭔지 헷갈리는 여러 계절 꽃들이 대충 막 섞여있고, 북쪽 벽에는 계절별 덩쿨식물들을 심을 거다. 한쪽에는 야외 요가를 하려고 만들었지만 현실은 그냥 멍때리며 누워있게 될 데크가 있고, 그냥 휘적휘적 하면 끝나는 미니미니 수영장(2미터*3미터 짜리. 이것은 수영장인가 목욕탕인가)도 넣을 것이다. 그래서 내 예산은 이 모든 조경을 합한 비용으로, 건축비가 아니라 총 사업비로 계산해야된다. 이 모든게 처음부터 설계에 들어가야한다. 데크와 텃밭 플랜터도 집 외장재랑 색깔과 톤이 맞아야한다. 안쪽을 향한 창문은 햇빛이 듬뿍 들어오는 통유리창으로 하면서 1미터 정도 지붕 처마를 드리워서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막되 은은하게 마당에 반사된 빛이 들어오도록 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저녁에도 커텐을 치지 않고 조명이 은은하게 밝힌 중정을 감상하면서 살수 있을 것이다. 집 내부에서 데크와 마당까지 시선이 이어지니까 넓게 느껴질 것이다.
밀집된 도시에서는 큰 통창(베란다)이 있어도 밖에서 보일까봐 1년 내내 커튼으로 닫고 사는 집들이 많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심 주택들과 대부분의 콘도, 아파트들이 뷰와 햇빛을 포기하고 산다. 캐나다에 처음 이민갔을때 들어간 신축 주택단지의 집이 생각난다. 너무 신축이라 처음 몇 개월은 담장도 없고 잔디도 없었고 얇은 어린 나무만 간신히 심어놓은 상태였다. 키친/다이닝 룸에 큰 통유리 창문이 있었는데 옆집과 1미터밖에 띄어있지 않고 사이에 담장도 없어서, 커텐으로 가리지 않으면 바로 옆집의 인도인 가족이 저녁에 먹는 카레의 고기 덩어리 갯수까지 셀 지경이었다. 뉴욕에서 오래된 아파트 건물 구조 중에는 ㅁ자로 만들어놨지만 그게 층수가 높아서서 낮은 층 사람들은 우물 밑바닥에 사는 것 처럼 창문이 나있어도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커튼을 안 치면 밖에 다 보일까봐, 혹은 어차피 보이는 뷰가 별로여서 베란다를 창고로 만들거나, 옷방으로 만들어버려서 햇빛이 안 들어오는 집도 많다. 물건과 옷들은 햇빛을 받아 색이 변질되고, 인간은 햇빛을 못 보는 것이다. 겉에서 보면 베란다에 잡동사니를 쌓아놓은게 다 보여서 흉하다. 배산임수! 하면서 뒤로는 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강이 보이는걸 최고로 치는 나라에서 대부분이 뒷베란다 앞베란다 죄다 꽁꽁 가리고 살아서 안타깝다.
그런데, 그런 아파트가 싫어서 좀 널찍널찍 떨어져있는 대지의 전원주택을 선택한 한국 사람들이 요즘에 지은 집들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마당에 프라이버시가 별로 없다. 대지 자체가 높고 길이 아래쪽에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 잘 안보인다면 괜찮은데, 도로와 집터의 높이가 같아도 울타리를 높게 치지 않는 것이다. 펜스가 거의 없거나, 가슴 높이 정도로만 낮게 치거나, 구멍이 뻥뻥 뚫린 벽돌로 치거나, 아무튼 다양한 방법과 모양으로 담벼락의 방범+사생활보호 기능을 못하는 의미 없는 울타리를 친다. 왜 그럴까!?? 열심히 지은 집을 동네방네 보여주고 싶어서?? 집을 가리기 싫어서? 막 지리산 깊은 곳에 사람이 거의 오지도 않고 겁나 좋은 풍경이 똬!하고 펼쳐지는 언덕에 집을 지었다면 울타리가 쓸데없겠지만, 주택단지 안에 있다면 사생활이 중요할텐데??? 왜 어째서???
낮은 담장 때문에 밖에서 집안이 다 들여보인다면 통유리 창이든 뭐든 결국 커텐을 치고 살아야한다. 아파트나 밀집된 주택에서 커탠 치고 살던거랑 다를게 없다. 그리고 다들 전원주택에 가서 바베큐를 하고 싶다는데, 마당에 프라이버시가 없다면, 그렇게 가족이 모여서 밥먹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오지랖 펴서 신경쓰이게 된다면 점점 마당은 남들이 쳐다보니까 꾸며야하는 부담스러운 공간이 된다. 좀 더 심한 경우 남들이 침범해온다. 담장 없이 집을 예쁘게 꾸며놓으면 카페인가? 하고 문 앞까지 찾아들어오고, 몰지각한 건축사무소가 주소를 알려줘버리거나 티비에 방송되서 전파라도 타면 '우리집 짓는데 참고 좀 하게 집 좀 구경시켜달라'고 초인종을 누른다. 더 심각해지면 실제로 리얼 공격[!!]을 받는다. 최근 돌멩이, 비비탄 테러를 당하고 있는 연예인 장동민씨의 집이 그렇다. 그의 집 울타리는 있으나마나한 높이의 하얀 울타리다.
북미의 집들도 다 그런 있으나마나한 장식용 울타리를 치지 않나?? 이런 울타리는 다 미국꺼 따라한거 아냐?? 라고 반문할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가족이 처음 캐나다로 이민가서 단독주택에 입주해 잠을 자던 첫째날 밤, 승숙은 마치 길바닥 위에서 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앞마당에는 울타리가 전혀 쳐져있지 않으니까. <나홀로 집에>1편을 봐도 도둑들이 그냥 현관 문을 따고 들어가거나 유리창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가서 개고생하긴 하지만. 방범에 대한건 세콤같은 하우스 시큐리티 시스템과 감시카메라 같은게 잘 나와 있으니까 둘째치고, 내가 말하는건 사적 야외공간의 유무다.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근래에 지어진 한국의 주택들과 북미의 주택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뒷마당의 존재유무다. 백야드backyard. 한국에선 보통 뒷마당이 없다. <구해줘 홈즈>만 봐도 첫 장면에 앞마당이 작으면 “이 집은 마당이 너무 작네요~~" 하다가 "그러나 이 집은 무려 뒷마당이 있습니다 짜잔!!!! 세상에 이럴수가!!!!” 한다. 북미는 토지가 좁아서 앞마당이 거의 없다시피 할지언정 뒷마당은 반드시 있다. 도시 말고 외곽의 하우스들은 보통 앞의 잔디밭은 팬스 없이 공개해놓고, 뒷마당 주변엔 펜스를 밖에서 안 보이도록 높게 빈틈없이 치는게 일반적이다. 앞 마당은 동네에 프레젠테이션하는 얼굴이고, 뒷 마당은 사적인 공간으로 쓰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있는 승숙의 집도, 앞 마당에서는 사적인 건 거의 안 한다. 여름에 그 집에 놀러 가서 나시티에 반바지 차림으로 마당에 나가서 벌러덩 누워있고 싶다면 당연히 백야드로 간다. 바베큐도 당연히 백야드의 데크에 있다. 근데 한국은 백야드가 대부분 없어서, 제대로 된 펜스도 없는 앞마당에 바베큐하는 장소를 만들어놓은 경우가 99%다. 비싸고 인구밀도 높아서 서민들의 집이 다 거지 같아지는 뉴욕에 오면, 앞마당은 한뼘 크기의 시멘트발린 공간이 되어서 쓰레기통 보관장소로 전락한다. 그래도 아무리 허름하고 작은 집이어도 다들 백야드가 조금씩은 있다.
한국 집들이 대부분 백야드가 없는 이유는 아마도 한옥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리 오너라!'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나오고 그게 끝이다. 뒷마당, 후원 같은건 대궐이 이상 일반 집엔 잘 없다. 그리고 한옥들 대부분 굉장히 월담하기 쉬운 낮은 담이 둘러져있다. 그래서 낮은 담에 앞마당만 있는 지금의 집 형태가 된 건가? 왜 옛부터 담이 낮았을까. 이웃과 소통하기 위해서? 농경사회니까 서로 품앗이 하면서 살기 위해서? 근데 왜 2020년 IT시대가 되었는데도 낮은 담을 치고 비비탄공격을 받고 사는 거지? 한편, <기생충>에 나오는 한국의 부잣집 같은 동네를 보면 다들 담벼락이 높다. 옛날의 대궐이나 궁 같은 곳도 담벼락이 높다. 부자들, 높으신 분들이 사생활과 비밀 유지? 이런걸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근데 뭐 특정 기득권 부자들만 담벼락을 높게 할수 있고 서민들은 낮게 쳐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건축법이 있을리도 없는데 왜 대부분 담을 낮게 치는건지 잘 모르겠다. 까지 쓰고 검색해봤더니 맙소사 그런 법이 있다!
담장 없애랬더니 집 요새화…판교의 '중정형' 단독주택 - 중앙일보 (2019.09.08)
요즘 판교 같은 계획적으로 조성된 주택단지에는 내가 위에 말한 'ㅁ'자 중정형 주택들을 흔하게 볼수 있는데, 그 이유는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단독주택 담장 높이가 1.2미터로 제한되어 있고, 살아있는 키 작은 나무로만 울타리를 둘러야 하는 건축법 때문이란다! 담장을 없애 이웃과의 소통과 교류를 늘리자는 취지란다!! 아이고 두야. 이딴 법을 만든 새끼(잠시 승숙의 말투를 빌렸다)의 집 담장 높이는 몇 미터일지 궁금하다. <응답하라 1988>의 골목길 풍경을 2020년대에 행정적으로 만들어내고 싶었나보다. 회사에서는 사회생활 하느라 지치고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에 시달리다가 주택을 선택해 이사 온 사람들이 처음보는 이웃이랑 같이 떡도 나눠먹고 모여서 김장도 같이 하길 바란건가? 그리고 더욱더 안타까운건 처음 시작된 저 판교의 낮은 담장 건축법이 일종의 주택단지 바이블이 되면서 전국의 신규 주택단지들에 쫙 적용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 최근에 생긴 세종시 주택단지들은 심지어 담장 높이 규제가 0.8미터라고!! 이제 위에 있는 담벼락이 거의 없는 세종시의 집 사진들이 설명이 되었다. 또한 옛날에 지은 서울의 부잣집 동네들은 옛날에 만든 높은 담벼락을 갖고 있지만,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에 이사온 사람들(예: 장동민)이 순진하게 집을 짓고 규칙대로 낮은 담벼락을 둘렀다가 비비탄총 테러를 당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낮은 울타리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방범과 사생활 보호를 하려면 담장 대신 건물로 울타리를 두르는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요새형 주택들이 하나 둘 늘어난 것.
이건 사람들이 일종의 ‘뒷마당’을 만든 셈이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 마당. 이런 주택들이 겉으로 볼때 차갑고 삭막하고 답답해보이는건 사실이지만 아파트에서 시달리다 온 사람들에게 억지로 낮은 담장을 두르게 하면 이런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1층으로 지을거니까 이렇게까지 요새처럼 보이는 집이 되진 않을 것이다. 겉에서 보여지는 모습보다, 내가 안에서 편하게 쉬는게 더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가 내 사적공간을 들여다보면서 저 집은 이렇네 저렇네 하면서 가쉽gossip하거나 컴플레인을 거는건 엄청난 스트레스다. 위에서 캐나다집 ‘뒷집 할망구’ 케이스에서도 언급했지만, 주택단지에서 집을 지으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주변 집들과의 문제다. 아파트의 층간소음이 싫어서 주택으로 이사왔건만 측간소음이 생길수 있다. 익스트림한 예를 들어보자면, 캐나다의 시골에 30에이커(3만7천평... 너무 커서 말도 안 나온다)짜리 땅에 지은 집에 사는 친구도, 앞 집에서 밤중에 이 친구네의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컴플레인을 자꾸 해서 어쩔수 없이 저녁에는 짖으면 전기충격이 오는 목걸이를 개들에게 채워주고 말았다. 워낙 땅이 크고 뒤쪽에 숲이 우거져있어서 밤에 무슨 야생동물이 집근처에 올까봐 무서워서 개들을 키운건데 소용없게 된 것이다. 불쌍한 강아지들. 시야는 중정형 집으로 컨트롤할 수 있지만 소음은 어떻게 해야할까. 소음을 가장 잘 막아주는건 숲이다. 미래의 내 집도 가능하면 집터 주변이 숲 까진 아니어도 나무들로 살짝 둘러쌓여있으면 한다. 가장 좋은 방범은 그냥 도로에서 집이 아예 안보이는 것이다. 내 친구집도 그 넓은 땅이 죄다 숲이고 한가운데에 집이 있었다면 그 집에서 개소리가 나든 말든 컴플레인을 들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근데 숲은 땅의 뒤쪽에만 있었고, 도로에서 집까지 너무 깊게 들어가면 번거로우니까 도로 가까이에 집을 지었고, 결국 도로를 마주보고 있는 앞 집과 마찰이 생겨버렸다. 내가 큰 개 키우는 것에 로망같은게 없어서 다행이다. 이 자리를 빌어 큰 개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지 속속들이 알려준 <극한견주>와 <노곤하개>작가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나는 루카스 한 녀석만으로 지금 행복하다. 근데 사실 루카스 이 녀석은 야생 본능이 있다...
내가 브루클린 지하던전에 살던 시절은 어떻게 보면 루카스의 전성기였다. 그 집에 쬐끄만 뒷마당이 있길래 풀어줬더니, 날쌘 야생 벵갈의 피가 한숫갈 흐르는 이노무 고양이는 곧장 눈 앞의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 나뭇가지 위에서 당당하게 나를 내려다보는게 마치 한 마리의 표범이었다. 그리고 이 야생수컷브루클린고양이는 내가 어라? 하는 순간에 옆집 담으로 넘어갔고, 또 그집의 건너편 담을 넘어가서, 결국 브루클린의 위험한 동네 길바닥에 진출을 하셨다. 그 동네에는 길거리에 쓰레기도 많고 차도 많고 쥐도 많고 위험천만한 일이었는데, 그때 나는 상식이 없는 멍청이어서 그냥 냅뒀다. 캐나다의 우리집 동네 친구도 그냥 집 고양이를 방생해서 키웠기 때문에 자연스러운거라고 생각했다. 루카스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나가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하듯이 돌아왔다. 내가 없을때 루카스를 내보내줄수 있도록 룸메이트들에게 부탁을 하고, 루카스가 나갔는지 안나갔는지 모두가 알수 있게 뒷마당 문짝에 ‘영업중/영업종료’ 푯말처럼 ‘루카스 나갔음/들어왔음’ 푯말을 꼽아놨었다.
하루는 늦은 교양과목수업이 끝나고 쌔카만 밤중에 돌아왔는데 (북미의 겨울은 해가 빨리진다) 왠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뭔가 느낌이 쎄해서 가까이가서 보니 역시나 루카스였다!
“야! 루카스! 너 거기서 뭐해!!!”
하고 외치자, 루카스는 담배 피우다가 걸린 중학생 아들 같은 표정을 하고 후다닥 우리집 옆옆집 공터 펜스 (루카스가 집에 돌아오는 루트)로 도망갔다. 안좋은거라도 줏어먹을까봐 걱정되서 다음날 저녁에는 밖에 못 나가게 했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쉬지도 않고 내 청각을 고문했다.
“왱알왱알엥엥엥에에엥! 내보내죠라!죠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내보내줬다. 루카스는 중성화수술을 해서 고자였기 때문에 멀리 멀리 영역표시하는 거에 집착하거나, 어디서 아기고양이를 퍼트리고 다니진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이 놈이 너무 귀엽게도 꼬붕을 하나 사귄 것이다. 동네 고양이인지, 옆집에 말이 안 통하는 스패니쉬 아주머니의 집고양이인지는 모르겠는데, 루카스보다 딱 몸집이 반밖에 안되는 고양이었다. 그런데 뿡알은 루카스보다 2배로 컸다. 요놈은 아직 빈땅콩 수술을 받기 전이었던 것이다. 우리 맘대로 이 녀석을 제임스라고 불렀다. 우리집 뒷마당에서 옆옆집으로 월담 전진을 하다보면 마지막은 코너자리의 공터가 있었는데 각종 나무 더미며 건축자제가 널부러져있고 철조망으로 막혀있었다. 인간이 들어가지 못하는 그 공터에서 루카스와 제임스가 지들 아지트인냥 돌아다니는게 자주 목격되었다. 보통 루카스가 앞장 서서 긴 나무떼기 위를 당당하게 걸으면 제임스가 졸졸 따라다녔다. 루카스가 높은 나무떼기 위에서 햇빛을 받으며 그루밍하고 있으면, 그 옆에 제임스가 똑같이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한 번은 루카스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데 제임스를 데리고 돌아왔다. 제임스는 너무나 붙임성 좋게 내 앞에서 강아지마냥 배를 까고 누워서 재롱을 부리더니, 루카스의 밥그릇에 남은 사료를 와득와득 먹었다. 그걸 보고 루카스는 고개를 훽 돌리며 ‘우르릉뀻!’ 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자기 밥을 먹어서 화났다는 건지, 임마 내가 한턱 쐈다! 라는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루카스가 나가고 나서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무슨 동남아 기후의 스콜처럼 세차게 내리는 비는 그칠줄을 몰랐다. 그날 밤 루카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스토리가 끝났다면 나는 정말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았을거고 루카스를 바깥에 내보낸 내 자신을 너무 자책해서 영혼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장마같은 비는 계속 되었고 그 다음날 밤도 루카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셋째 날 새벽, 나는 쭈그려 앉아서 루카스가 먹다 남긴 사료가 담긴 밥그릇을 처량하게 쳐다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으허엉! 하고 큰소리로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적이 일어났다. 루카스가 시멘트뷰인 내 지하실 성큰 창문에 쏙 내려와서 더러운 유리창을 통해 나를 ‘웽아!’ 하고 부른 것이다. 후다닥 주방으로 올라가 뒷 마당문을 열고 루카스를 부르자 비에 쫄딱 젖은 루카스가 돌아왔다. 녀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허겁지겁 사료를 먹었다. 바깥에서 다행히도 먹을게 아무것도 없었나보다. 왠지 바깥에 먹을게 풍부(?)했다면 돌아오지 않았을것 같았다. 그날 부터 나는 맘을 독하게 먹고 루카스를 내보내지 않았다. 가끔 내보내도 바깥에서 담장을 넘어가지 않고 마당 안에만 있도록 내가 곁에서 지켜봤다.
그런데 루카스의 수난은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이전 글 중에서 그 100년된 브루클린의 썩은 집에 쥐가 얼마나 많이 살았는지 언급한 적이 있었다. 루카스는 그 쥐들 중 한 마리를 잡아와서 내방 바닥 한가운데에 보기 좋게 널브러놓고 의자에 앉아서 나를 기다린적도 있었다. 선물로 잡아온 쥐 앞에서 ‘악 뭐야 징그러!’ 하고 화를 내며 버리면 고양이가 상처받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서 ‘아이구 우리 루카스 잘했어 우쭈쭈!’하고 폭풍 칭찬을 해준 다음에, 루카스가 안 볼때 검은 봉지를 손에 씌우고 꼬리를 잡아 올려서 처리했던 기억이다. 그게 이사 후 초반의 일이다. 그 많은 쥐들을 루카스가 죄다 잡을수는 없고 쥐는 점점 불어났다. 결국 뉴욕시 보건당국에서 조사가 들어왔다. 가장 심각한 1등급인가 뭔가를 메기고, 곳곳에 쥐약을 쳤다. 우리집 뿐만 아니라 뭔가 동네 전체가 쥐약을 뿌리는 조치가 취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몇일 지나지 않아서, 루카스가 갑자기 토를 하기 시작했는데, 멈추질 않았다. 하루종일 10번 이상 토를 하고 나중에는 더이상 토할게 없어서 노란 위액을 토했다. 밖에 내보내지 않게 했으니 내 예상으로는 집안 어딘가에서 쥐약을 먹거나 쥐약이 뭍은 쥐를 건드렸던 것이다. 더이상 이 집에서 살수가 없었다. 나도 그 집에서 정체불명의 몸살감기를 여러번 겪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전까지 ‘몸살’이라는 것을 걸려본적이 없어서 드라마나 소설에 묘사되는걸 보고 힘든가보다, 했는데 몸소 겪고나니 내가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 그동안 내가 봤던 몸살 걸린 분들에게 죄송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집을 도망나와서 이사온 곳이 지금 살고있는 퀸즈의 아파트다. 이사 하자마자 루카스를 씻기고,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싹 다 스캔했다. 다행히 별 탈이 없었다. 건강해서 너무나 고마웠다. 하지만 그때부터 루카스는 아파트에 갇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 브루클린의 큰 뿡알 고양이 제임스는 그렇게 좋아라 쫒아다니던 오야붕을 잃었다. 밖을 그리워할것 같아서 루카스를 안전하게 하네스를 해서 데려나가봤지만 헛수고였다. 이 놈은 저 혼자서 여기저기 은닉하며 돌아다니는걸 좋아하지, 나 따위한테 굴욕적이게 줄에 묶여 끌려다니는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아파트 출입구 밖에 나가 길바닥에 내려놓자 1센티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내가 안고 조금 걸었더니, 길 반대편에서 조깅하며 둥둥둥 다가오는 여자를 보고 놀라서 나한테 안긴채 오줌을 줄줄줄 쌌다. 나의 당혹감과 루카스의 쪽팔림이 내 스웨터와 바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후로 동물병원 방문 말고는 다시는 루카스를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루카스는 내가 집에 돌아오면 우엉! 하면서 반가운듯 달려오지만 그대로 나를 쒱 하고 지나서 문 밖의 발매트에 사랑의 몸부림을 한다. 현관문 밖에 나가봤자 사방이 닫힌 복도가 있을 뿐이고, 어디 갈데가 없다는걸 알고있어서, 냅둬도 그냥 문 앞 매트까지만 나간다. 매트가 캣잎을 말린 지푸라기로 엮은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파트 복도의 조그만 발매트가 좋다고 누워있는 이 녀석을 보고 있자면 가끔 예전에 높은 나무 위에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신나하던 루카스의 모습이 아련하게 생각난다.
그래서 우리집은 루카스가 안전하게 바깥에서 콧바람을 쐴 수 있는, 사방이 막히고 가운데에 마당과 나무가 있는 ‘ㅁ’자 집으로 지을거다. 남편은 아무리 사방이 막혀서 안전해도 우리 감시 없이 루카스를 마당에 내놓지 않을거라고 한다. 하늘에서 매가 날아와서 루카스(7kg)를 낚아채가면 어쪄나고...
Dear My Archiect:
조그만 중정이 있는 ㅁ자 모양의 집! (반드시 건물로 모든 면을 두르는건 아니고 적당히 야외공간과 실내공간이 섞이고 프라이버시가 100% 보호되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