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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폴리 Dec 09. 2020

난방텐트와 캐노피 베드 사이

동서고금의 난방과 단열에 대한 중구난방

    '에너지절약형 '이란 주제는  가지로 연결된다. 지속가능성(환경문제) 난방. 지속가능성은 저번에 다뤘고 이번엔 난방이다. 내가 스웨터 디자이너가   추위를  타는 인간이라서 본능적으로 무의식중에 선택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추위를  타서,  공간이 따듯하냐 마냐가 정말 중요한 문제다. 사실 하와이에서 취직을 할수 있다면 하와이에서 살고 싶다. 근데 하와이에서 스웨터 디자이너는  일이 없다... 비키니 디자이너가 될걸 그랬나. 글쓰는 지금, 호놀룰루는 27, 서울은 영하7, 뉴욕은 2도란다.  서울이 뉴욕보다 춥네? 아무튼. 지난 10, 코로나로 망가진 2020년이  그렇듯 ? 했더니 어이없게 여름이 끝났고, 이제 가을인가?했더니 금세 싸늘한 겨울이 되어버렸다. 북반구의 미친 태양이 어이없게 4시반에 져버리기 시작했고,   온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우리는 침대 위에 한국에서 사온 난방텐트를 세웠다. 그동안  미래의 집의 난방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후죽순 중구난방으로 써놨던 글들을 모아서 정리할 시간이  것이다.  


    이 주제에 관련해 최근 든 생각은, 만약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되지 않고 주택이 부동산 가치가 있는 구조로 흘러갔다면, 패시브 하우스 같은 효율적인 단열성 높은 건축 방식은 독일이 아니라 한국에서 먼저 개발되고 표준화 되었을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한국은 옛날부터 내가 살아본 국가-캐나다 일본 미국-중에 가장 난방기술이 뛰어났다. 그냥 추운걸 못 견디는 체질인건지 머리가 좋은 건지 둘 다 인지 모르겠지만 찾아본 결과 방바닥을 데우는 시스템은 전세계에 한국만 오천년전부터 지금까지 쭉 존재해왔다. 옛날 고대 그리스인가 로마에서 ‘하이포코스 hypocaust’라고 해서 지하에 공간을 만들어서 하인들이 불을 떼워 위에 있는 주인 방을 데우는 온돌 비슷한 시스템이 있었지만 고대로마는 멸망했고 그것도 없어졌다. 이태리를 포함한 유럽은 대부분 현재 라지에이터를 쓴다.


고대로마에서 부잣집과 목욕탕의 바닥을 데울때 썼던 온돌 시스템 하이포코스트 Hypocaust


    따뜻한 방바닥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겨울에 외국으로 이민이나 유학을 가서 집에 처음 들어가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방바닥을 밟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로 옆에 있는 나라 일본도 역사적으로 겨울에 바닥을 데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백제로부터 이것저것 다 배워갔는데 온돌은 너무 어려운 기술이었을까. 그냥 지푸라기로 엮은 다다미를 깔고 (근데 다다미방은 높은 확율로 이가 있어서 잘 때 가렵다고 한다! 앍 배드버그!! 극혐!!) 고타츠라는 이불을 두른 따뜻한 좌식 테이블이 있지만, 말그대로 앉아있을때 하반신만 따뜻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테이블을 떠나면 춥다. 북미, 유럽의 벽난로는 그 벽난로 주위만 따뜻하고 나머진 다 춥다. 요즘 집에서 벽난로는 그냥 비싼 주택의 장식품 정도가 되었다. 현대식 주택들은 바닥 여기저기 설치된 구멍에서 뜨거운 공기를 뿜어내는 퍼네스를 쓰는데, 가뜩이나 건조한 북미의 집안 공기가 더 건조해진다. 샤워 후 로션을 듬뿍듬뿍 쳐바르지 않으면 건조한 피부가 갈라져서 미친듯이 가렵게 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누옭의 100년 넘은 고대 선사시대 빌딩들은 주로 라지에이터를 쓰는데, 잘못해서 손으로 짚으면 화상을 입기 때문에 근처에 가구나 물건을 못 둔다. 그리고 오래된 라지에이터는 거의 증기기관차 뺨치는 쇠깡통 쨍그렁 거리는 소리가 난다. 전에 살았던 브루클린 지하던전 집이 그랬는데, 난 정말 어떤 미친 요정이 술먹고 그 안에 들어가서 쇠망치로 북춤을 추고있는 줄 알았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라지에이터는 창문마다 있어야지 넓은 방에 하나만 있으면 딱 거기만 따뜻하고 나머지 집은 얼음장이다. (실제 경험함) 북미인들에게 온돌-플로어히팅-이란 부잣집이 새로 집 지을때 넣는 옵션 같은 것이다. 사실 이 인간들은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녀서 바닥이 따뜻해도 직접 느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대부분 실내 방바닥 보다는 겨울에 눈이 자동으로 녹도록 차고 앞 드라이브웨이에 매립한다. 그래서 그런지 온수선 보다 전기선을 매립하는 업체가 많다. 근데 찾아보니 이 외진 대륙에도 한국의 경동 나비엔 같은 보일러 회사들이 들어와있다고 한다! 설치비가 얼마인지는 자세히 안 알아봤지만 내 미래에 짓는 집은 꼭 온수 바닥 난방으로 하고 싶다. 보일러를 태양열이나 태양광으로 돌리면 더더욱 좋고.


왼쪽: 누옭의 오래된 아파트의 창문 밑 마다 붙어있는 라지에이터. 오른쪽: 신식(?)아파트의 벽에 끼워져있는 냉난방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다들 생각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미드에 나오는 그런 노출벽돌에 로맨틱(?)한 야외 비상계단과 라지에이터가 있는 100년 넘은 아파트가 아니고, 그냥 90년대에 특색없이 지어진 적당히 살기 편한 아파트다. 겉으로 보면 썩어가는 옛 건물들에 비해 번지르르 좋아보이나, 자세히 보면 최대한 돈을 아껴서 월세를 쪽쪽 뽑아먹으려는 거대자본의 스쿠루지 심보를 읽을수 있다. 일단 단열이 별로다. 우리 방창문은 서남향 서북향 두개여서 햇빛이 잘 들고 방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환풍하기도 좋지만, 그 창문들로 여름에는 열기가 쳐들어오고, 겨울에는 열이 호롤롤롤 다 빠져나간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 사계절을 느낄수 있는 집이다. 얏호. 창문을 자세히 보면 아주 얇은 유리 두겹만 있다. 요즘은 3겹이 기본 아닌가? 어디 보면 4겹도 있던데! 뭐 90년대에 임대용으로 짓는 건물에 2겹 창호는 적당한 선택이었겠지...


    더 큰 문제는 벽과 창문틀 사이의 허접한 마감이다. 겨울에 창틀에 손을 대보면 바람이 슁슁 느껴진다. 창문 설치 과정을 보면 벽에 구멍을 내고 외벽과 내벽 사이에 실리콘인지 우레탄인지를 꼼꼼이 바르고나서 창문틀을 끼우던데 (패시브 하우스는 무슨 특수 테이프까지 싹 다 바른다) 그런 작업은 겉에서는 티가 안나니까 분명 대충한 것이다. 그렇게 허술하게 생긴 공기 틈이 벽과 벽사이를 지나 어디까지 연결된 건지, 방 한가운데 있는 문틀에 나있는 잠금쇄 구멍에서도 찬바람이 에어컨을 튼 것 처럼 휭휭 나온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무심코 문틀을 잡았다가 바람이 쌩쌩 불어서 이게 뭐야!! 했다. 이건 뭐 문이 잠기기 위한 구멍이니 테이프로 막을수도 없고. 이런식으로 모든 창틀, 문틀, 콘센트 구멍에서 바람이 세고 있다. 홈디포(미국의 대형 철물점)에서 웃풍을 막는 점토니 실리콘이니 스폰지니 다 사와서 창틀에 두르고 붙이고 해봤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정말 두꺼운 벨벳 같은걸 커튼으로 달아야하나 했는데, 맘에 드는건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알고보니 나는 무겁게 겹쳐진 커튼 자체가 싫은 것이었다! 가뜩이나 작은 방이 더 작아지니까. 창문틀의 폭 20센티 공간도 다 소중하다. 결국 셀cell식 블라인드를 최대한 유리와 가깝게 붙여서 달았다. 커탠보단 삭막해보이긴 하는데 이게 사실 여름에 열을 차단하는데 꽤 효과가 있다.


셀룰러 블라인드. (HOPPVALS from Ikea)


    하지만 뭘 매달든 겨울에 이 허접한 창호로 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는건 어렵다. 완전히 창문을 스티로폼으로 막지 않는 이상. 어쩔땐 우리 집안보다 밖이 더 따뜻할 때가 있다! 열역학은 나쁜 놈이다. 하지만 사적야외공간이 절실한 마당에 그나마 마스크 안하고 야외와 통할수 있는 창문을 막아버릴순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나는 온혈동물인 나를 감싸기로 했다. 지금 키보드를 치는 나는 수면양말 보더 훨씬 더 쫀쫀한 털 양말에, 바야바 같은 실내용 털부츠를 신고, 면 레깅스에 회사에서 피팅하면서 잘라놓은 케시미어 바지를 주워다가 기운것을 겹쳐 입고, 목끝까지 올라오는 긴팔 터틀넥에 또 회사에서 디벨롭 하고 버린걸 줏어온 두꺼운 알파카 털 스웨터를 겹쳐입고 있는데도 손가락 발가락이 차갑다. 좀 더 추울때는 눈코입만 내놓는 발라클라바 (마미손이 뒤집어 쓰는 것보다 좀 더 예쁘게 생긴 것)도 쓴다. 이럴땐 내가 스웨터 디자이너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히터를 켜면 되잖아! 하겠지만,  집의 가장  문제는 바로  히터다. 냉난방 겸용이라 창문  벽에 구멍을 뚫어서 야외와 연결된 놈인데, 정신이 사나울정도로 시끄럽게 돌아가며 냄새도 나고, 건조해져서 눈알이 따가워지고, 전기와 가스를   먹어치우는 관리비 괴물이라 왠만해서는 켜지 않는다. 내가   가장 효율도 떨어지고 디자인도 누렇고 큰게 못생겨서  치워버리고 싶은 쇳덩어리. 물론 렌트한 집이어서 내맘대로 치워버릴수는 없다. (진짜로 치우면 벽에 거대한 구멍이 생긴다!!) 라지에이터도 사보고 미니 히터도 사보고 다이슨 히터도 사봤지만 웃풍이 심한  방에서 다들 힘앓이 없이 열역학에 패배했다. 그냥 미래의 집으로 이사갈  까지 이렇게 사는 것이다. 겨울에는 껴입고 여름에는 벗고.


    추운데서 살면 사람이 적응을 해야하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로갔다. 분명 어릴적 한국에서 살 때는 찬물로만 세수하고 양치를 했고, 따뜻한 물을 쓰는 어른들을 보며 '느끼하게 어떻게 저럴수 있지!?'라고 생각하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캐나다로 간 순간 나는 겨울에 베란다에 방치한 화초처럼 시들거리기 시작했다. 뭘 먹었길래 열이 많은 신체에서 열이 모자란 신체로 바뀐건지 모르겠다. 분명 돌도 씹어먹을 십대 청소년 나이였는데. 캐나다는 체감상 겨울이 9개월동안 지겹도록 이어지는데 (봄 여름 가을이 각각 1개월이다), 겨울에는 해가 늦게 떠서 아침에 일어나도 시퍼렇게 추운 새벽이다. 학교 가려고 꽁꽁 얼어있는 차고의 꽝꽝 얼어있는 카시트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피부를 째는 것 같은 얼음 바람 속에 걸어서 등교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나는 승숙이 매일 아침 차로 데려다줬으니 감사해서 절을 해야할 판인데, 사람은 자기 앞만 보이는지라 그저 이를 딱딱 부딪히며 뒷좌석에 앉아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승숙도 앞좌석에 앉아 꽝꽝 얼어있는 핸들을 붙잡고 자식노무새끼들의 등교 드라이버가 된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그녀는 한국에서 시월드에 시달리고 애들은 수능에 시달리느니 이게 오억배 낫다며 셀프 위로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카드캡터 체리>에서 무슨 해가 쨍쨍 뜬 화창한 아침에 길거리에 벚꽃이 휘날리는 햇살속에 분홍색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학교에 가는 장면이 정말 외계문명 만큼 머나먼 것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호달달 추위속에 떨며 혹독한 시베리아 틴에이지를 보내고나니, 추위에 적응되기는 커녕 추위에 더 약해져버렸다. 그 후 뉴욕에 와서 브루클린 지하던전과 여타 험한 일을 겪고 직장인이 되고나자, 이제는 '무릎에서 찬 바람이 나온다'는 말도 안되는 초자연 현상을 몸소 체험하기 시작했다. 수면바지를 입고 수면양말을 신어도 앉으면 바지와 양말 사이에서 드러난 발목에서 찬 바람이 방사형으로 나온다. 손가락은 가끔 아이폰이 터치가 안 될 정도로 딱딱하게 식어버린다. 수족냉증의 표본이다. 어쩔때는 발가락의 느낌이 사라져서 두겹으로 신은 양말을 벗어보면 발가락 몇개가 핏기가 하나도 없어서 인간의 살 대신에 상아색 고무가 붙어있는것 같다. 만져도 감각이 없다. 그냥 모세혈관이 손끝 발끝까지 가서 일하기를 포기한다. 왠만한 수면양말은 너무 흐물흐물하고 니트조직이 설기고 보온 효과가 없어서 두개를 겹쳐 신던가 제대로 쫀쫀하게 나온 털양말을 신고 실내화도 신어야 겨울동안 인간의 발로 기능을 한다. 코로나 전 회사에 출퇴근 할 때는 겨울에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컴터를 하니 너무 춥고, 건조한 공기에 피부가 다 갈라져서 20년은 늙어버릴것 같아서 샘플로 얻은 스웨터와 가디건과 비니를 쓰고 USB로 꼽는 가습기와 전기 무릎담요를 덮고 뜨거운 물을 넣은 온수팩을 껴안고 키보드를 치고 있자니, 동료가 와서 보고는 곧 죽을것 같은 환자 병실에 온줄 알았다고 했다.


나처럼 사무실에서 추위 잘타는 인간이 많구만.jpg


    집에서도 히터 때문에 공기가 건조해서 가습기를 켜야했고, 잘 때는 이불이 따뜻하다 해도 공기가 추워서 코가 얼어서 사라져버리기 일수였다. (모세혈관이 코 끝까지 가길 거부한다.) 그러다가 수 년 전 한국에서 난방텐트라는 것이 등장한 걸 봤다! 하지만 곧바로 사지는 못했다. 디자인이 너무 구려서!! 난방텐트가 초기에 나왔을때는 뭔가, 구들방의 황토벽을 연상시키려고 한건지 황토색으로된 것만 잔뜩 나왔는데, 정말 폴리에스테르 텐트천이 황토색으로 그렇게 큰 부피를 방안에 차지하고 앉아있는건 너무 흉물스러워서 도저히 용납할수 없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좀 방안에 있어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뉴트럴 색상의 난방텐트들이 출시되었고, 나는 아이보리색을 주문할수 있었다! 한국에서 사서 이고지고 오는건 일도 아니었다.


    신나게 설치한 난방텐트에 인간 둘이 들어가서 지퍼를 꼭꼭 닫자, 금세 두 명의 온혈동물이 뿜는 온기로 인해 공기가 따뜻해지고, 더 신기한건 건조함이 사라졌다! 우리가 내뱉은 숨 때문에 텐트안의 습도가 적절해진 것이다. 북미의 겨울은 넘나 건조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목구멍이 갈라진다. 그래서 매번 가습기를 켜야했고 디자인만 보고 주문해버린 가습기는 청소하기 너무 복잡하게 생겨서 관리하기 세상 귀찮았는데, 난방텐트 덕분에 가습기 물떼 청소에서 벗어났다! 소설 <마션>에서 마크 위트니가 그랬는데, 인간은 하루동안 자신이 싸는 오줌 만큼 많은 양의 물을 숨으로 공기중에 내뱉어놓는단다. 인간은 살아있는 가습기였던 것이다. 한시간에 40ml씩. 두명이 8시간동안 뿜어놓으면 40x2x8=640ml이나 된다! 그래서 밤 새 우리는 텐트 안의 적절한 온도와 습도 속에서 쾌적하게 잘 수 있었다. 난방텐트 덕분에 구닥다리 히터와 가습기를 둘 다 안 켜게 된거다! 이게 얼마나 큰 에너지 & 돈 절약인가! 난방텐트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을 만나서 꼭 껴안아주고 싶다. 이제는 이게 없으면 우리는 북미의 겨울을 날 수 없다.



    난방텐트는 일종의 미니어처 패시브하우스다. 가만히 있지만 난방이 된다! 전기를 먹지도 않고 소음도 없다! '이런걸 생각해내다니 역시 한국인은 머리가 좋아!' 하고 생각했는데... 뭔가, 내가 경험한 다른 나라들(캐나다, 일본, 미국)에 비해 한국에는 난방을 위한 아이템이 유난히 많다. 난방텐트, 창문에 붙이는 뽁뽁이, 옷에 붙이는 핫팩, 전자렌지에 돌리는 핫팩, 온수 핫팩, 전기 장판, 온수 매트, USB 꼽아서 쓰는 온갖 용품 등등 따뜻해지기 위한 아이템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좀 더 멀리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이 추우니까 이런 부수적인게 많아진게 아닌가? 난방을 위한 가스비가 많이 들어서 돈을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끄고 이런저런 아이템으로 무장하는게 아닐까? 오죽하면 단독주택 라이프는 겨울내내 실내에서 수면양말에 잠바를 입고 있는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시가스가 안 들어온 한 구옥을 2층집으로 증축한 집에서 신혼부부가 겨울에 보일러를 팡팡 틀었더니 3일만에 가스한 통이 동이나버렸고, 그대로 계산해보니 한달에 가스비만 80만원이 되어서 기겁했다는 글도 읽었다. 그건 확실히 무섭다. 한 달에 가정집에서 가스비가 800불이 나온다니 있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주택들은 추운가?? 아파트들는 따뜻했었던거 같은데?? 옛날에 평촌의 아파트에 살던 이모네집은 사촌오빠들과 이모부까지 남자 셋이 겨울내내 빤쓰만 입고 살았는데, 위 아래집이 보일러를 팡팡 틀어줘서 보일러를 거의 안 켜고 살아서 한달 가스비가 300원이 나와서 뭔가 잘못된거 아니냐고 검침원이 방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건축가들은 "옛날 집들은 단열이 안되있죠~" 라고 당연한듯 말한다. 그렇다면, 왜 집을 짓는데 단열을 안 했을까? 온돌이라는 전세계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는 획기적인 난방시스템을 5천년전부터 써온 민족이 왜 단열은 안했을까? 아파트는 했는데 왜 주택은 안했을까? 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호구로 봤나? 건축법이 무슨 아파트만 신경써주고 주택은 개무시했나? 이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구옥의 예쁜 벽돌 외부와 나무 내부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아서 단열을 포기한 신혼부부. 출처: <건축탐구 집>


    집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보게된 한국의 방송이 <구해줘 홈즈>와 <건축탐구 집>이다. 요즘엔 다 그 집이 그 집으로 보여서 시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본다. 한국 지리를 전혀 모르는 나는 이렇게 한국의 도시명과 부동산 시세와 여러 가족/살림형태를 구경한다. 근데 이상한게 있었다. <건축탐구 집>은 '아파트 말고 주택!!!'이라는 방송취지가 짙게 깔려있는데, 정작 거기에 고정 출연하는 건축가(문훈, 노은주, 임형남)들은 죄다 아파트에 살고 있다. <구해줘 홈즈>에서는 소개하는 매물 중에 아주 가끔가다 아파트가 있으면 의뢰인들은 무조건 아파트를 고른다. 난 어렸을적 부터 승숙(my母)의 "닭장 같은 서울 아파트 지겨워!!"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서울의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싫은 곳으로 프로그래밍 되어있었다. 후에 알고보니 승숙의 저 입버릇이 생기게 된 계기는 이렇다. 90년대에 서울에 살던 당시 승숙은 내 동생을 임신하고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는 입덧 때문에 하루종일 어지럽고 미슥거리는데, 누운 상태에서 앞을 봐도 아파트, 뒤를 봐도 아파트라서 숨이 막혀 죽을것 같았단다. 거기에 추가로 시월드(in서울)의 괴롭힘까지 최고조여서, 이노무 닭장, 이노무 시월드 내가 탈출한다, 하고 촉수를 뻗쳤고, 그 촉수를 지구 반대편까지 뻗다가 멀리 캐나다까지 가서 온 가족이 이민하게 된 것이다. 근데 그건 승숙의 개인적인 스토리고, 사실 한국에서 아파트란 부를 늘리는 가장 큰 중요 자산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한국 거주 토종 한국인 친구들에게 "왜 아파트가 좋아!?" 라고 물어보면 다들 첫 대답은 이렇다.


"아파트가 편하지"

"왜? 편해 보이는 예쁜 주택들도 (TV에 보니) 많던데!??"

"그냥- 아파트가 편해."


    여기서 진짜 마음 속 대답은 "아파트를 갖고 있어야 재산이 불어나지. 주택은 가치가 없어."다. 이게 공공연하게 다들 아는 사실인데 한번 톡 쳐서는 얘기해주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은근하게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만 따지자면 아파트가 별로라는걸 알고 있어서 그런가?? 그래서 나같이 겉으로 보면 한국어를 잘하지만 어릴때 이민가서 사실 한국사회의 뼛속 깊은건 잘 모르는 교포 무지랭이는 <구해줘 홈즈>에서 좋은 주택들을 다 제쳐두고 아파트를 선택하는 가족들과 "우왓 아파트라니! 아파트를 구해오다니!!!"하는 연예인 패널들의 리액션을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주택이든 아파트든 부동산 가치가 비슷하다. 그리고 뭔가 북미/유럽 부자들은 부자라면 혼자서 성(=큰~ 주택)에 살아야야지, '닭장'처럼 위아래로 모르는 사람들이랑 포게어져있는 아파트 건물에서 사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아파트에 사는 억만장자가 있다해도 뉴욕의 무슨 존 레논이 살았던 유서 깊은 아파트나 자하 하디드가 지은 수백억대 아파트라거나 한다. 근데 그런 사람들은 아파트 뿐만 아니라 별장이나 저택이 다 따로 있고 뉴욕의 아파트는 뉴욕에서 지낼때 머무는 서브 하우스 개념이다. 반면 내가 가끔 갈 때 마다 무슨 외계문명도시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아파트가 떼거지로 솟아올라있는 아파트 공화국 코리아에서는 아파트로만 너무 심각하게 전 인구가 몰리는 나머지 다른 주택형태들은 값어치가 떨어지고, 특히 제일 심하게 인기가 없는건 단독주택이라는 것.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집 값은 없어지고 땅 값 만 남는다고. 특히 수도권을 벗어나면 거의 '땅을 샀더니 집이 딸려왔다'는 개념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단독주택이 갖고있는 고착된 이미지를 배우게 되었다. 부동산가치 없고, 불편하고, 춥고, 덥고, 전기세, 가스세 많이 나오고, 방범에 취약하고, 쓰레기 버리기 불편하고, 등등등. 최악이다!


    그쯤이 되서 잠시 내 뇌속을 구글링해보니, 나도 사실은 그런 불편하고 이상하게 지은 한국의 단독주택을 경험한 적이 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집이다.


    불편하고 이상하게 지은 주택으로 이사하기 전, 정순태(외할머니)와 백광현(외할아버지)는 진짜 리얼 시골 집에 살고 계셨다. 그때의 나는 꼬꼬맹이어서, 그때 그 집의 지붕이 진짜 구워서 만든 기와인지 현대식 재료인지는 기억 안나지만 아무튼 정말 전형적인 시골 집이었다. 더럽고 무서운 푸세식 화장실이 집 바깥에 있었고, 대략 ㄷ자 아니면 ㅁ자 구조로 되어있어서 안 마당에 수돗가가 있었고, ‘광’이라는게 있어서 온갖 잡다구리 농기계 도구들이 들어가있었고, 부엌이 집보다 바닥이 낮아서 아궁이와 구들이 있었고, 방안으로 밥상을 넣는 쪼그만 문이 있었고, 그 위로 다락 같은 것도 있었고, 아궁이 근처의 장판이 까맣게 타있었다. 이불이 늘 한켠에 높이 쌓아져 있어서 사촌오빠들과 내복바람으로 이불더미를 쓰러트려서 미끄럼틀을 만들어서 놀았었다. 사실 이 기억들은 다 내 기억인지 내가 미디어에서 본 한국의 온갖 시골 집 영상과 내 뇌가 합성한건지 솔직히 알수 없지만, 사촌오빠들과 겨울에 내복바람으로 그 집에서 신나게 논 기억만은 진짜다. 안으로 바깥으로 놀 거리가 넘쳐났다. 바깥은 논과 밭이었고, 옆에는 논으로 물을 대기 위한 도랑이 있었다. 어째서인지 다들 ‘또랑’이라고 발음했다. 거기엔 주로 진흙이 가득했는데, 한번은 사촌오빠들이 나를 집에 냅두고 둘이서만 그 또랑에 들어가서 놀다가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전신 머드팩을 하고 리어카를 끌고 요란하게 나타나난 적이 있었다. 모든 어른들이 오빠들을 혼내키는 동안, 나는 나만 빼놓고 그렇게 다이나믹하고 익사이팅하게 놀고 올 수 가 있냐며 단단히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승숙에 의하면 당시 사촌오빠들은 또랑 뿐만 아니라 아궁이 밑 잿더미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태우려고 모아놓은 왕겨더미속에 들어가기도 했단다. 뒷간의 똥통에 들어가지 않은게 다행이다. (그들은 지금 어엿한 아빠들이 되었다.) 때로는 어른들까지 합세해서 놀기도 했다. 정순태는 7명의 베이비부머들를 낳았고, 그들 대부분 슬하에 자식을 두 명 낳았으니 모이면 인원이 꽤 되었다. 어른들까지 모두 함께 하는 놀이는 주로 저녁타임에 이뤄졌다. 지금은 멸종했을 것 같은 쥐불놀이도 했었는데 나는 팔에 힘도 없고 운동신경도 없고 무서워서 못하고 구경만 했던 것 같다. 두 팀으로 나눠서 술래잡기 비슷한 것도 했는데, 찾는 팀이 뭔가 한 단어를 주술처럼 낮은 목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어~정’이었나. 검색해도 안 나온다. (요즘 글을 쓰면서 맞춤법 검사를 할 때 한국 국어원에 검색해도 안나오는 이상한 말이 종종 튀어나와서 신기하다. 경기도 사투리인지 뭔지 모르겠다. 대부분 출처는 승숙이다.)


    그러다가 정순태와 백광현 커플은 같은 시골 동네의 다른 부지에 새로 2층 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다. 2층짜리 미미의 집을 보며 난 내가 들어가서 놀수있는 실제 2층 집이 생긴다니 신이 났다! 하지만 꼬맹이인 나는 그 집을 짓는 과정이나 누가 어떻게 해서 짓는지에 관여할리가 없었고, 그냥 어느날 가보니 뉴 하우스에서 정순태 여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와! 할머니 새 집 짱이다!!'라고 외치려 했는데.. 초등학생인 내가 봐도 그 집은 뭔가 이상했다. 일단 1, 2층이 따로 입구가 있어서 내부에 내가 상상하던 계단은 없었다. 1층은 나중에 언젠가 세를 줄건지 뭔지 공사를 완료하지 않아서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있고 철근이 튀어나와있고 공사 쓰레기가 널부러져있어서 지금 떠올려보면 좀비영화를 찍으면 딱 좋을것 같았다. 집은 겉에서 볼 때 큰 것 같은데 2층만 할머니네 집이어서 실내는 작았다. ㄷ자로 쑥 들어박힌 부엌은 정순태와 그 외 어른들이 같이 일하기에 너무나 좁았고, 거기에 쑤셔넣어놓은 식탁 때문에 왔다갔다하기 힘들었다. 식탁과 싱크대 사이 폭이 80센티 정도 밖에 안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부엌을 쓸데없이 유리 슬라이딩 중문으로 나눠놓았는데 슬라이딩도어 자체도 뻑뻑해서 열고 닫을때 유리가 덜컹덜컹거려서 시끄러웠다. 답답해서 그 중문을 항상 열어놨는데, 바닥에 높이 튀어나온 문틀 레일이 있어서 걸려넘어지거나 발톱빠지게 부딛히기 딱 좋았다. 부엌과 거실이 일직선도 아니고 반쯤 엇나가게 배치되어 있어서, 거실에 상을 펴놓고 부엌에서 음식을 나르기가 번거로웠다. 부엌 케비넷과 슬라이딩 도어 색깔도 촌스러운 에메랄드색에 골드 테두리였다. (와 나 왜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지!?? 그 당시 우리 가족이 살고있던 집 구조는 한 개도 기억 안나는데?? 그만큼 그 할머니네 새 집이 어린 나이에 쇼킹했나보다.) 비슷한 허접한 창호가 거실에도 있어서 단열이 잘 안되었다. 문틈으로 공기가 슝슝 들어왔다. 화장실은 어두운 와인색 도기와 타일을 깔고 누런 조명 하나만 켜놔서 어두운 핏빛이었다. 집 밖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과는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결정적으로 화장실에는 난방을 설치하지 않아서 겨울에는 바깥보다도 더 추웠다. 변기가 너무너무 차가워서 엉덩이가 얼어버릴 것 같았다. 안방과 사람들이 몰려있는 거실을 빼면 다른 모든 공간들이 추웠다. 집 주변에 조경은 하나도 없었고, 휑하니 논 밭으로 둘려져 있었다. 옛날 집은 오래되었어도 1층에 마당을 감싸는 구조라 아늑함이 있었는데 새 2층집은 황량한 땅에 멀뚱히 서있는 못생긴 외딴섬 같았다. 자기 돈으로 자기 땅에 자기가 살 집을 짓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어설프고 이상하게 지었던 걸까? 분명히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에 본인들이 아는 한도 안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한 구조와 시공사를 선택하셨었겠지. 겨울에 냉동된 변기시트에 엉덩이가 얼어붙을 것 같아도, 야외에 흙구덩이를 파서 만들어놓은 푸세식 화장실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생각하셨겠지.


    정순태여사는 그 집에서 오래오래 살지 못하고 내가 11학년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백광현도 거처를 옮겨서, 그 집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 없다. 오리지널 시골집은 옛날에 헐렸다고 들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서 2주간 격리를 안해도 된다면 다음에 한국에 갔을때 승숙과 함께 그 동네를 한 번 돌아보고 싶다. 논 밭은 온데 간데 없고 도로와 빌딩이 들어서서 옛 모습을 1도 못 알아봤다는 흔히 듣는 클리셰가 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한국의 많은 단독주택들이 그런식으로 어설프고 이상하게 지어졌을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왜 그런 저 퀄리티 집이 지어지는 일이 벌어진 걸까. 콘크리트로 15층짜리 아파트를 쌓아올리는 시대였는데, 아파트를 짓는데 사용된 단열 기술과 건축 방법이 일반 주택을 짓는데도 똑같이 적용되었으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그러지 않은 것이다. 아파트는 대기업에서 체계적으로 짓고, 주택은 개인 업자들이 얼렁뚱땅 지어서 그랬을까. 내 맘대로 예상해본건데, 법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도 미국도 지역마다 최저온도에 따라 단열시공과 벽 두께가 얼마여야하는 규칙이 있고, 허가도 받아야하고, 지어진 후에는 인스팩터가 나와서 검사도 한다. 근데 그때- 90년대의 한국에는 아직 그런 디테일한 건축법과 허가, 검사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을 수 도 있다. 다들 오래된 한옥들을 헐고,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현대식 단독주택, 혹은 임대용 상가건물을 짓는데, 자세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이 없어서, 전에 비하면 이 정도면 양반이지! 하고 적당히 지은게 아닐까. 구조가 답답하고, 웃풍이 심해서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고, 쓰레기는 분리수거할 곳이 마땅히 없어서 골목에 막 쌓여있고, 화장실에서 일 보다가 엉덩이에 동상이 걸릴것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표준을 정해놓고 딱 딱 지어진 아파트가 당연히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들 미련없이 주택을 떠나서 아파트로 이사갔을지도 모른다.

 

판교 아파트로 이사간 덕선이네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


나의 추론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60~70년대: 아파트 공화국이 되기 전, 양옥과 기와집/퓨전 주택들이 지어졌다. 나무+흙에서 벽돌+시멘트로 업그레이드 했을 뿐, 단열재 같은건 없었다.


2. 70~80년대, 아파트 공화국의 시작! 강남 개발 및 아파트가 막 지어지고, 다들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3. 80~90~년대, 아파트들은 값이 계속 올라서 건축 퀄리티도 올라갔지만, 주택은 부동산 가치가 없어서 돈을 들여 고치거나 새로 짓는 일이 많지 않았다.


4. 남아 있는 주택들도 소유자들이 뿌시고 렌트비를 뽑아먹기 위한 다세대 빌라를 올렸다. 임대용이고 대기업이 지은 것도 아니라 단열이 막 잘 된 것도 아님.


5. 부동산 가치가 없는 구도심지/지방의 주택들은 계속해서 방치되었고, '단독주택은 춥다'는 기본 인식이 생겼다.

   

    그렇게 한국에서 단열이 잘 안되는 오래된 빌라, 주택같은 추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웃풍을 막으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쓰다가 창문용 뽁뽁이나 난방텐트의 발명으로 이어진게 아닐까. 처음에는 와 정말 머리 좋다! 아이디어다! 했지만, 이렇게 보니 이런 난방 용품들이 다 수도권/아파트에만 몰려버린 한국 주택난의 부산물인가 해서 조금 안타까워졌다. 이런건 전부 장기적인 단열이 아니고, 세입자가 적은 돈으로 사서 간단히 쓰는 근시적인 단열이다. 인테리어적으로 보자면 당연히 창문 유리에는 뽁뽁이 비닐을 안 붙인게 깔끔하고, 침대에도 텐트 같은게 올라가있지 않은게 낫다. 난방텐트를 모르는 뉴욕 사람들이 우리집 안방을 본다면 이게 무엇인지 한참 설명해야 할 것이다. 워밍 텐트??? 아 아니다, 사실 난방텐트 비슷한게 북미/유럽에 역사적으로 있었다! 바로 침대의 사방+윗쪽까지 커텐으로 쳐져있는 4 포스터 베드, 혹은 캐노피 베드 four poster bed / canopy bed가 그것이다. 베르사이유나 버킹검궁이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나 해리포터가 지내는 호그와트의 침실을 보면 침대들이 대부분 이렇게 생겼다. 유럽의 궁전과 성에 호화스럽게 살던 사람들도 사실 밤에는 추웠던 것이다!!


왼쪽: 영국 버킹검궁 침실. 오른쪽: 해리가 쓰는 호그와트의 그리핀도르 기숙사 (해리포터 덕밍 아웃...)


하긴 그 옛날에 우레탄 폼 단열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겨울에는 추웠겠지. 프라이버시를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내가 장담컨대 저 커탠들은 잘 때 추워서 웃풍을 막으려고 달아놓은 거다. 특히 성들은 천장이 높아서 더 추웠을 것이다! 한국의 난방텐트는 결국 캐노피베드의 한국식 모던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싸고 가볍고 간편하고. 하지만 누가 봐도 캠핑장에 있어야 할 것 같은 텐트가 침실에 떡하니 있는 것 보다는 제대로 된 가구다운 캐노피 베드 프레임이 훨씬 예쁜건 어쩔수 없다. 그리고 그걸 일부 난방텐트 업체들도 인식한건지, 캐노피베드와 비슷한 사각형 난방텐트도 나와있긴 하다. 철제 프레임이 싸구려틱하긴 하지만 일부 디자인들은 언뜻보면 캐노피베드와 별 차이를 못느낄 정도다. 근데 사람들 대부분은 둥근 일반 텐트형을 구매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한국의 집들이 대부분 층고가 낮아서겠지. 저런 큐브형 캐노피 베드는 차지하는 볼륨이 너무 커서, 층고가 훨씬 높든가 방이 겁나 넓든가 둘 중 하나는 갖춰져야 갑갑하지 않다.



북미/유럽의 four poster 캐노피 베드 (모던한 디자인으로 골라왔다. 육중한 클래식 디자인은 취향이 아니어서)


왼쪽: 한국의 '사각난방텐트'. 차가운 철제프레임이 디자인적으로 좀 안타깝다. 살짝 포장마차 느낌이 나기도. 오른쪽: 일반적인 난방텐트. 조명빨로 예쁨. 근데 역시 텐트는 텐트.


    사실 집을 새로 패시브하우스급으로 지어서 따뜻하게 한다해도, 우리는 여전히 캐노피베드나 난방텐트를 놓을 것 같다. 왜냐하면 들어갔을 때 아늑하니까! 난 뭔가 잘 때 방문이 열린게 보인다던가, 거울이 보인다던가, 발이 이불밖에 나와있다거나 하면 불안한 습성이 있다. 전생에 설치류였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어릴적 부터 굴을 파고 들어가있는걸 좋아했다. 이 글의 커버 일러스트도 영국 동화작가 질 바클렘이 그린 숲속 동물친구들이 굴을 파고 만든 집 속의 장면이다. 숲 속에 굴을 팔수 없었던 한국 어린이는 식탁 의자 4개를 끌어와서 등판이 벽체가 되도록 2열로 붙여놓고 이불을 뒤집어씌운 다음 인형과 스탠드조명과 책들을 갖고 들어가서 놀다가, 저녁 밥 먹을 시간인데 식탁에 의자가 하나도 없어서 화가 난 엄마몬(승숙)에 의해 아지트가 강제 철거되곤 했었다.


    그래서 미래의 내 집에는 난방텐트 효과와 아늑한 디자인 둘 다 잡기 위해서 적당한 두께의 목제로 된 아늑한 느낌의 캐노피 베드를 들이고 싶다. 다소 중압적인 사각 육면체가 아니라 좀 더 부드러운 모양으로. 커탠은 가볍지만 난방은 잘 되는. 아직 북미 제품들은 너무 커튼이 펄럭거려서 난방이 덜 될 것 같고, 한국 제품들 철제 폴대가 너무 텐트스럽다. 난방텐트와 캐노피 베드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난방과 디자인 둘 다 갖춘 그런 것. 내가 돈을 다 모아서 새로 집짓고 이사갈 때 쯤이면 그런게 나와있지 않을까. 아니면 뭐 만들어야지.




Dear My Architect:

(저번에 쓴 패시브하우스급 단열에 이어서)

겨울에는 바닥이 온수로 난방 되는 집!

침실은 난방 효과가 있는 캐노피 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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