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한증 일기 2
다한증은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제약이 많았다. 일단 악수가 그러했고, 하이파이브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는 악수가 필수였다. 상을 받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또는 친밀감을 형성할 때도 악수를 활용했다. 처음엔 나도 별생각 없었다. 하지만 내 손을 맞잡고 오묘한 표정을 짓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감이 깎였다. 이미 투박하게 만들어진 조각상에 대못으로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았다. 생채기는 모여서 금이 됐고, 이내 파멸을 불러왔다. 그 시기에는 부서진 내 정체성을 양손으로 매일 붙들고 있기에도 벅찼다. 온 정신이 쏠렸다. 한 번 방심했다간 와르르 쏟아졌다. 그런 날은 집에서 펑펑 울었다.
'이럴 거면 왜 살지?'
그날은 학원에서 대표로 상을 받는 영광스러운 하루였다. 상장 수여식에는 시상자와의 악수가 빠지지 않는다. 그때 시상자는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행복하고 즐거워야 했던 날. 하지만 그날은 반대의 이유로 내게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축축한 내 손을 맞잡은 선생님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부러 티를 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표정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찝찝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은 표정. 황급히 손을 빼냈다.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도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었겠지. 심지어 그때 선생님은 20대에 불과했다. 한창 생각이 짧을 시기. 하지만 나는 너무도 커 보였던 그 선생님의 눈초리가 날카로운 못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맺혔다. 그래도 한 번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새로운 못이 날아왔다.
또 다른 선생님이 걸어온 장난이 부여잡고 있던 내 정신을 와르르 무너트렸다. 그분은 친밀감의 표시로 손을 잡았다. 그런데 축축하게 젖어 있던 내 손을 발견했다.
"이거 뭐야? 손에 침 뱉었어?"
선생님은 계속 내 손의 축축함을 체크하며 하하 웃었다. 자신은 정말 재미있는 농담을 건넸다는 것처럼. 주물러지는 내 손을 홱 빼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 웃었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무너지는 정신을 꽉 잡은 채 밝은 웃음 지어 보이기. 물론 내 표정이 정말 의도한 바대로 나타났을지는 미지수다. 차라리 이렇게 반박이라도 해볼 걸 그랬나 싶다.
"이거 침 아니고 땀인데요?"
그때의 나는 내 땀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마치 다 큰 청년이 매일 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 차고 다니는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마음속에만 꼭꼭 묻어뒀다. 이후 금지된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손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방식으로 치욕스러울 일은 없지 않았을까? 물론 상당히 어린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어린 중학생이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는가.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실천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 자신을 숨기는 일에 더 열중했다.
당시에 의견이 일치하면 하이파이브를 하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졌다. 나도 시시때때로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손을 내밀 수 없었던 나는 이렇게 대처했다. 친구의 뽀얀 손바닥 앞에 가위 모양을 한 손가락을 꺼내 드는 것. 그리고 머쓱함을 숨긴 채 대답했다.
"어, 가위바위보 내가 이겼다."
그러면 그 상황은 싱겁게 마무리된다.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혼자 좋아하는 실없는 사람이 됐다. 그래도 불쾌한 표정, 불쾌한 언사를 듣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니.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었다. 성인이 되면 더 많은 곤욕을 치르게 될 텐데. 정말 나는 계속 살아남아도 되는 걸까? 고민의 반복이었다. 불행했던 나의 학창 시절. 만약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숨기지 마. 네 잘못이 아니잖아. 당당하게 드러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