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한빈 Feb 10. 2021

선생님, 제리 아직도 안 죽었어요.

동물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강아지도 ~에 걸려요?”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사람에게 흔한 병이 강아지에게도 있는 게 뭐가 그리 놀랄 일일까 생각하면서 늘 “네, 걸립니다” 하고 대답한다. 

당뇨, 치매, 백내장, 뇌종양, 디스크 탈출증, 간질...


그 중 최고는 치매다. 정확한 병명은 강아지 인지기능장애 증후군. 사람 치매의 정식 병명이 '알츠하이머'인 것에 비하면 꽤 직관적인 이름이다. '인지기능' 에 '장애' 가 생기는 '증후군'. 어쨌든 이건 강아지의 치매다. 강아지도 치매에 걸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놀란다. 


강아지 치매 환자는 사람 치매 환자처럼,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밥 달라고 화를 낸다. 하루 종일 빙글빙글 돌고, 벽에 머리를 박고, 밤에 잠을 안 자고 낮에 잔다. 잘 가리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변을 먹기도 한다. 당연히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다. 내 가족이었지만, 어느 순간 내 방에 들어온 한 마리의 야생동물처럼 변해버린 어떤 강아지.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제리는 2017년 말부터 치매를 앓았다. 증상은 끊임없이 짖는 것이었다. 낮밤이 바뀌었다. 낮에는 조금 자는듯 하다가 밤이 되면 짖었다. 목적과 의사가 있어 짖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로 짖었다. 하루 15시간은 그렇게 계속 짖는다고 했다. 한 번은 검사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개 짖는 소리라면 백색 소음으로 들릴 정도로 단련이 된 우리 의료진도 반나절 만에 모두 신경증에 걸릴 뻔 했다. 나이도 많은데 목소리는 얼마나 우렁찬지, 2층 입원실에 있어도 1층 진료실에서 바로 옆에서 짖는 듯이 크게 들렸다. 정말로 걱정되어서 물었다. 이렇게 밤새 짖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주무시냐고. 어머님은 빙긋이 웃으며 짧게 대답하셨다. 못 자죠. 


제리 보호자님은, 밤에 잠이라도 좀 자게 해 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일주일치, 이주일치, 한달치 신경안정제를 처방했다. 신경안정제를 먹이면 그나마 서너시간은 자 준다고 했다. '자 준다' 라는 표현에서 보호자님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제리는 보호자와 교감도 하지 못하고, 산책도 즐기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허공을 보며 짖기만 하다가 밥이 있으면 밥을 먹고 앉은 자리에서 대소변을 누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약을 먹고 잠에 들었다. 보호자님은 한 달에 한 번 한달치 약을 타러 오셨다. '요즘도 똑같아요' 라고만 말하고 똑같은 약을 처방받아 가셨다. 오실 때마다 얼굴이 수척해졌다. 어머님, 아버님, 아드님, 세 분이 번갈아서 약을 처방받으러 오셨는데, 모든 가족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짙어지는 게 눈에 띄었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병원에 오신 어머니가,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리 아직도 안 죽었어요." 


제리의 근황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똑같은 약을 처방해 드리기로 했다. 식욕이나 행동에 변화가 없는지, 약을 먹고 과하게 진정되지는 않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평소와 똑같이 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어머니는 이 말을 덧붙였다. 


"주변에서 제리 안락사 시키라고 하던데요."


놀라지 않았다. 우리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리 보호자님이 안락사를 요구하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의사는 동물의 치명적인 건강상의 문제, 일반적인 치료로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동물의 극심한 고통이 예상되는 경우에만 안락사를 논의한다. 제리의 경우 이 조건들에 부합할까? 내가 배운 안락사 기준에 '보호자의 삶의 질, 보호자의 고통' 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제리의 의사를 물어볼 수 없다. 하루종일 목이 쉬도록 의미 없이 짖어대도, 앉은 자리에서 대소변을 보고 그대로 깔고 앉아 있어도, 그럼에도 살고 싶은지 물어볼 수가 없다. 제리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제리를 안락사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갈수록 앙상해지는 세 가족의 모습을 통해,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제리 아직도 살아있어요", "잠만 자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통해, 이 가족의 삶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머님 입에서 안락사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순간, 잠깐 고민했다. 


"가족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내가 물었다. 

"어떻게 죽여요, 눈도 초롱하고 멀쩡히 밥을 잘 먹는데. 그건 못하겠어요." 

"알겠습니다." 라고 짧게 대답하고 나는 똑같은 약을 한 달 더 처방해 드렸다. 정말로 위로해 드리고 싶었지만,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제리 때문에 일년 가까이 잠도 자지 못하고, 제리와 정상적인 교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제리가 치매에 걸리기 전 15년동안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는지, 얼마나 가족들에게 기쁨을 줬는지. 




수의사로 일하는 것은 좌절의 연속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해결은커녕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고통받는 아이들 앞에서, 내가 무능력해서 살릴 수 없는 것인지,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기에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 늘 고민하게 된다. 동물의 고통만큼이나 사람의 고통도 멋지게 해결해주고 싶다면 욕심일까. 진료가 좀 수월해지나 싶을 때마다 번번이 어려운 케이스를 내 앞에 던져준다. 그깟 자격증 하나 가지고 있다고 만물의 고통을 보듬어줄 순 없어, 오만하지 마, 하고 비웃어주듯이.  


책임지기로 약속하고 데려온 작은 가족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은 동물 학대, 동물 유기 뉴스를 보고 쉽게 화낸다. '끝까지 책임 질 자신이 없으면 데려오질 말았어야지' 하고 비난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3년 넘게 온 가족이 매일 두 시간을 겨우 자는 것도 그들의 상상의 범위에 포함될까. 피부병에 걸린 강아지 때문에 온 집안에 악취가 진동하고, 옷에서 냄새가 빠지지 않아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받으며, 바닥에 떨어진 강아지 각질 때문에 하루에 청소기를 다섯 번 돌리는 일을 10년 동안 하는 것도 포함될까. 나였다면 할 수 있었을까. 층간소음으로 살인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수십 년을 간병하다가 친어머니를, 친아들을, 살해하고 감옥에 가는 세상에서, 내 가족과도 같은 강아지를 포기하지 않고 간병하는 사람은 그냥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조용히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을 수의사로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이게 다인걸까. 


이 모든 영화같은 사연들을 다 나열하고 이해시킬 도리가 없어서,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강아지 키우지 마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 배변훈련이 뭣이 중헌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