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프릴 Jul 07. 2020

울면서 출근하는 마음

아들이 요즘 들어 아침마다 운다. 나는 우리 아이 15개월에, 그러니까 이제 막 혼자서 한 걸음씩 뗄 수 있었을 때 회사에 복직했다. 그때부터 4살이 될 때까지 아이는 거의 모든 아침에 울었다. 우리 아이는 말이 무척 빨랐다. 아주 아주 아기 때부터 매우 또렷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가지 마. 나랑 같이 놀아."어느 날은 울먹이며, 어느 날은 대성통곡을 하며 현관 앞에 서있는 아이를 두고 집을 나서야 하는 나도 거의 매일 울었다. 어느 날부터는 아이가 울어도 내가 울지 않게 되었는데, 그건 그 상황에 무뎌져서 그런 게 아니라 이미 속이 곯을 대로 곯아서, 이제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겠다고 곧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아이가 5살이 되고 나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유치원이 아주 즐거워서 그랬는지 이 생활이 익숙해져서 그랬는지 이제 저녁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해심이 많아진 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점점 울지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현관 앞에 서서 출근하는 나에게 늘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웃으며 회사에 갔다. 내가 오랜 기간 미국 출장을 갔을 때도, 보고 싶었지만 곧 만날 걸 알았기 때문에 눈물을 참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씩씩하게 자랐다. 아침마다 울지 않게 되자 이제 사무실 책상의 껍데기가 넋 나간채 자판만 두드리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장담컨대 그전까지 회사의 나는 말라비틀어져 버려진 화분의 화초에 지나지 않았지만 웃는 게 전혀 웃는 게 아니었지만 이제는 적당히 물을 머금은 풀잎처럼 생생해졌다. 한창 힘들었을 때 그만두지 않고 버티길 잘했다고 우리가 많이 자란 것 같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6살 형아가 되어 신정, 구정에 떡국 한 그릇씩 총 두 그릇이나 먹어 치운 지금, 다시 아침마다 운다.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아이가 유치원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뒤, 유치원, 방과 후 활동, 아이의 스케줄과 아이를 돌보아주시는 부모님과의 스케줄이 잘 정비되었을 즈음부터. 아이가 모든 과정에 두각을 나타내고 여기저기서 칭찬을 받고 전부 내 공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몸이 정말 피곤해서 죽을 것 같지 않은 이상, 퇴근 후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소홀한 적이 없었다. 회사에 와서도 짬날 때마다 퇴근 후 놀거리들을 생각하고 집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근처 문구점에 들러 준비물을 사서 집으로 가는 등, 몸은 회사에 있어도 늘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사라지자 점차 내게 주어진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쏟아부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회사에서 벌어진 일에 신경 쓰고 분노하고 열정을 붓느라, 가을 즈음부터 집에 돌아오는 길의 나는 알맹이가 떨어져 나간 채 타달타달 펄럭이는 땅콩 껍질일 뿐이었다. 그 사이 아가는 유치원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웃는 아이의 모든 덕목을 충분히 발휘했다. 그래서 아마 나는 더, 이젠 회사에 집중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나 그러면 안되었다. 오늘 아침에 우는 아이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는 내 사랑이 분산되고 있었음을 느꼈나 보다. 사랑이 점점 부족해졌나 보다. 내가 정말 쓸모없는 일에 마음을 바치고 있었구나. 내 보물이 들썽이는 것도 모른 채.
 
 
우리 아이가 우는 것은 아주 일시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은 나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바이러스 때문에 하원 후 친구들도 못 만나고 좋아하는 방문 선생님들도 오시지 않아서, 함께 종일반을 했던 단짝 친구들이 어머님들의 신변의 변화로 종일반을 하지 않아서, 아니면 가장 친한 친구가 다른 원으로 옮기게 되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아침마다 우니까, 이제 엄마와 회사를 같이 가겠노라고 우니까, 엄마는 왜 나를 데리러 오지 않냐고 우니까, 종일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우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시간은 어떻게든 지나가겠지만, 지금은 버티는 과정 중 하나인 걸까 아니면 더 이상 버티지 말아야 할 순간인 걸까. 그 신호를 내가 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 우리 아이가 20개월 즈음 퇴근 후 탄천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아이는 나의 손을 잡고 해사한 웃음을 짓고 있다. 허나 그 사진을 찍은 날은, 매일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면서 출근하던 그 시절 중 하루였다. 그래서 그 사진을 보면, 즐겁다기보다는 목에 물컹한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며 동시에 목구멍이 무척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픈 건 목인데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지금껏 버텨온 선배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어, 걔가 일하는 엄마의 아이로 태어난걸. 그 아이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지”라고. 허나 나는 이마저도 못한다.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 그렇게 합리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이마저도 하지 못하는, 아이 앞에서 너무 약하고 무른 나는 아마 평생 워킹맘으로는, 아니 최소한 아이가 내 손이 필요하지 않을 시기까지는 제대로 된 정신으로는 남들처럼 워킹맘을 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얼마 전 어떤 에세이를 읽었는데 그 제목은 이렇다 <답이 있다면 알 수 있는가>. 사실 출근할 때마다 힘들었어서 그렇지 거의 모든 시간이, 모든 날이 좋았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아이도 그만큼 잘 자랐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해내는 내 자신이 기특했다. 그런데 흔들리는 날이 갑자기 찾아오니, 바로 저 문구가 생각난다. 내가 지금까지 내린 선택들은 정답이었을까.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답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닐까. 그 답을 내가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고기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