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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Oct 22. 2020

우리의 시절이 새겨진 풍경


웬만하면 1주일에 최소 1번은 아이를 직접 하원 시키려고 한다. 대부분 셔틀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그 한 번은 주로 방과 후 활동을 하고 개별 하원 하는 날이 된다. 그 날은 모든 아이들의 엄마든 조부모님이든 이모님이든 누군가가 원으로 직접 데리러 오기 때문에, 보호자의 통제하에 유치원 마당에서 한껏 뛰어놀 수 있는 날이다. 다른 어머님들에게 듣기로, 내가 데리러 오는 날엔 아이가 평소보다도 배로 신나 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이 데리러 갈 때도 한참을 뛰어논다고 하던데 내가 데리러 간다고 해도 놀이 시간이나 놀이의 질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텐데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어쨌든 데리러 가는 날에는 아이의 요청에 따라 방과 후 활동이 끝나는 시간보다 먼저 원에 도착한다. 특별활동 건물에서 친구들과 줄지어 나오며 두리번거리는 아이에게 두 팔을 180도로 교차하여 휘저으며 인사해주기 위해서다. 내 휘젓는 팔을 발견한 아이도 온몸을 방방 뛰며 화답한다.  왠지 짠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다.

  살면서 후회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삶을 살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일이 꼬여도 언젠가는 일이 잘 돌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기도 하고  설령  내 잘못으로 발생한 일도 큰 실수를 막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겠거니  또는 아 이건 좀 당해도 싸다 라고 하는 등 어떻게든 합리화시켜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한  특정 순간 몇 개는 한참이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다. 아이 vs 회사의 순간에 아이를 선택한 경우는 설령 회사에서 어떤 불합리를 받았더라도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보정의 기회가 있었으니 후회가 없는데 회사를 선택했을 경우는 그렇지 않다.  선택의 나비 효과로 지불한 기회비용이 예상보다 컸던 2~3개의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떠오르고 그럴 때면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고 너무 당연하게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자각한 순간 나의 마음은 후회로는 설명이 어려운, 회한이나 오한 정도의 말로 표현될만한 심정이 된다. 아이가 아주 어리던 시절 일어난  몇 개의 작은 사건들 덕분에 아이의 시간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알았다. 일하는 엄마의 아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이가 여러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거나 적응해야 한다는 말은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일하는 건 일하는 거고 아이의 때에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과 관심, 보살핌, 가족과의 충분한 시간, 엄마와 함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은 또 그와 별개로 당연히 누려야 할 일들인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는, 그래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때가 되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얼마 전, 여자들이 일 보다 가정을 택하는 건 좀 더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글을 보았다.  무려 여자들이 소박한 행복에 잠식당해 희생당하고 있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의 고민과 하루를 조금이라도 경험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  보정 가능한 삶 말고 오로지 지금뿐인 하루에 집중할 생각이다. 누가 뭐라 하든 아이에게 맞춘 삶을 마음껏 살 수 있는 날도 생각보다 길지 않으니까 아직 갈길이 먼 6년 차 육아 초보지만  성실하게 지금 뿐인 아이의 하루를 함께 해본다.

 주 1~2회 일찍 퇴근하는 것은 이미 지난 8월  나의 새로운 팀장님께 미리 말씀드렸고 동의하셨다.  이를 위해 세상잠보가 찬바람을 뚫고 주 2회 6시~7시 사이 출근한다. 그런데 이번 주엔 까먹으셨는지 당일 2시쯤, 갑자기 어디다가 메일을 보내 놓자고 하셨다. 급한 내용이 아닌 데다 추가로 조사하고 있던 것도 있어서, 제가 내일 오전 일찍 보내도 될까요? 오늘 조금 이따가 나가야 해서요.라고 하니, 아 그렇죠! 하는데 표정은 왠지 오늘 안에 메일을 보냈으면 하는 듯했다. 애써 무시하고 내일 아침에 보내겠다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그런데 이 날은 나오려니 괜히 눈치가 좀 보이더라. 그래서 가방을 자리에 두고 커피 사러 가는 양  맨몸으로 나왔다. 이게 뭔 신입 사원 시절 회식 도망갈 때 써먹던 방식이람!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로비 회전문을 지나 나오는 가을바람이 무척 가볍고 상쾌하다. 액셀을 밟아 늦지 않게 유치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반가운 얼굴들에 인사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 존재만으로 방방 뛰는 아이가 나를 반겼다. 저 웃음 하나에, 아 역시 나오길 잘했어 바빴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실컷 뛰어논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 나무들은 어느새 색색깔 옷을 갈아입고 있다. 지난 5년 우리의 일상들이 촘촘히 쓰인 낯익은 풍경에 마음도 물들었다. 작년이던가, 하마가 나와 서점에 가고 싶다고 해서 퇴근 후 7시쯤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가 책을 읽었더랬다. 어느새 9시 반,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아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는데 우리 하마가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입동이 다가오는 깊은 가을밤, 지금 지나가는 이 길 이 나무 아래를 아이를 업고 지났다. 무서워할까 봐 함께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흐려진다는데 어쩐지 나의 작은 하루들은 색을 더해가는 단풍처럼 선명해질 것 같다.  선택의 순간마다 같은 결정을 내릴 참이다. 동시에 내 생활과 커리어와의 조화도 치열하게 해 볼 생각이다.  이 방법이 내게는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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