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채로 이스라엘 북쪽의 하이파(Haifa)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문화, 낯선 땅, 낯선 언어와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는 동양인이 되어 거리를 걷는 것. 히브리어, 아랍어, 러시아어의 혼재 속에서 어떤 언어도 알아들을 수 없고 어떤 문자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주변의 시선을 받으며 일상을 지속하는 것.
나는 이곳에서 어떤 것도 가늠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곳이 내가 지구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가장자리,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세계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면 나는 어떤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이곳에 와 있지만, 관계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돌아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낯선 이국땅, 아니 은하계의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해서 외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마흔이 되는 나이에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고 받아들여야 하는 세계에 정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이고 인생에서 어떤 것을 배우기 위해서 이곳에 와 있는 것일까?
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지구라는 행성의 어디쯤에 내가 와 있는 것일까? 근데 대체 왜 내 발로 이곳에 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되새김질한다.
아주 기초적인 히브리어 단어 하나를 발음하기 위해서 수십 번을 되풀이하고 그러고도 뒤돌아 잊어버리기 일쑤인 상황에서 나의 자존감과 그동안 쌓아온 인생의 경험은 한 줌도 안 되는 모래처럼 주먹에서 흩어져버린다.
새로운 세계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 아니 이미 성인이되,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어 가나다라부터 옹알이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극소수의 동양인, 동아시아계 동양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내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국에서처럼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이 생활에 적응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삶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지중해의 청량하고 따뜻한 바닷바람과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소리에 다시 집중한다. 그리고 나의 질문은 파도의 일렁임처럼 되풀이된다.
나는 왜 여기에,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언제까지 반복될 것일까. 나는 이곳에서 행복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