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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숙 Jan 25. 2022

누워서

그림책으로 본 세상 (17)_[천천히 천천히]

“정말 누워 있어요? 도서관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일산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생활문화 프로젝트 ‘누워서’. 뭔지 모르는데 정말 궁금해서 왔다는 이용자들은 뭔가 계속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전, 잠잘 때 빼고는 누워있는 적이 없어요.”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강사가 있고, 이용자는 수강생이 되는 교육프로그램과 달리 일산도서관 생활문화 프로젝트는 시민 스스로 하고 싶은 걸 기획하고 준비해서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첫 번째 ‘누워서’를 준비하기로 한 ‘베이스 기타(별명)’님은 ‘베이스 기타가 돋보이는 음악’을 듣자 했다. 


혹시 몰라 놓아둔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연배가 있어 뵈는 ‘가을’님이 제일 먼저 신발을 벗고, 누웠다. 그러자 한 명 두 명 눕기 시작한다. 

막상 누우니 뭔가 어색하다. 뒤척이는 사이 노래는 벌써 세 번째 곡을 향하고 있었다. 


‘Come Together’. 비틀즈 곡이다. 존 레논 목소리가 흐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베이스 기타. 좋다. 누가 치는 거지? 혹시 폴일까?’ 순간 난 한 번도 폴 매카트니를 베이스 연주자로 생각한 일이 없다는 걸 알았다. 늘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으로만 여겼지 그가 든 악기 소리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비틀즈 영상을 보면 그는 늘 기타를 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구름이 보인다. 뭐가 급한지 서둘러 흐른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낸 자리는 놀랍게 파랗다. ‘아, 예쁘다.’ 늘 있었을 하늘을 이렇게 쳐다본 게 얼마만인가 싶다. 고개를 돌려 저만치 누워있는 사람을 쳐다본다. 발을 까딱까딱한다. 정말 도서관에서 누워만 있어도 되냐 묻던 그분이다. 

준비한 곡이 끝나는 게 아쉬워 몇 곡 더 듣자 했다. 나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싶다 했다. 클래식은 잘 듣지 않았는데, 갑자기 듣고 싶어졌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평소 보고 듣지 않았던 것들이 궁금해졌다. 


『천천히 천천히』(케이트 도피락 글, 크리스토퍼 실라스 닐 그림, 김세실 옮김, 나는별) 

‘너는 오늘도 빨리빨리. 빨리 달리고 달려. 더, 더, 더 빨리빨리.’ 아이는 뛴다. 먼저 가려고, 일등이 되려고 빨리 더 빨리. ‘그만 멈춰!’ 갑자기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아이는 잠깐 멈춘다. 그리고 본다. 하늘을 보고 꽃을 본다. 흐-으-흡. 숨을 들이마시고, 후-우-우, 천천히 내쉰다. 새들 이야기가 들리고, 무지개 끝이 궁금해지고, 밤을 밝히는 벌레를 들여다본다. 달빛 가득한 창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 눕는다. 

멈춰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멈춰야 들리는 소리가 있다. 늘 세상이 나를 다그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세상은 나 스스로였는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너무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어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와 있는 것 같았어요. 이 나이 먹고 그런 델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이제껏 우스웠는데,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들리지 않던 악기 소리가 들렸어요. 늘 보컬 목소리만 들렸는데, 사실은 여러 악기들이 소리를 내고 있었더라구요.”


가만히 앉아 감상을 나누고,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적어두기로 했다. 나는 뭘 적을까 하다가 몇 개 단어을 끄적였다. 한 시간 남짓,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아서 오히려 집중되었던 것.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누워서 새로 발견한 찰나를 기억해두고 싶었다. 


이제 일어나 펼쳤던 텐트를 접고, 스피커를 치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 전화벨이 울리고, 메일을 들여다보고, 음악이 듣던 발이 아니라 마우스를 잡은 손가락을 까딱까딱해야겠지. 그래도 괜찮다. 

다음다음 주, 우리는 또 도서관에 모여 눕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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