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7)_[어른들은 왜 그래?]
37.8도
체온계를 열심히 흔들어 다시 재도 마찬가지다. 얼른 휴대전화를 열어 ‘코로나19 증상’을 검색했다. 발열, 인후통. 그러고 보니 목도 아픈 것 같다.
지난 며칠간 일들이 영화처럼 스쳐갔다. 문구점, 도서관, 전자기기 대리점, 식당, 편의점... 만났던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아는 사람들에 이어 나를 스치고 지났던 모르는 사람들.
‘그래, 그 대리점 아저씨.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있었던가?’
‘문구점 아줌마, 물건 계산할 때 장갑을 끼고 있었던가?’
1339. 늦은 밤이라 그런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고양시 보건소로 전화를 걸었다. 당직자가 전화를 받아 일단 해열제를 먹으란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검사를 받으러 오란다. 약을 먹고 누웠다. 여전히 온몸이 뜨겁다.
‘정말 코로나19면 어떻게 하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러면서 계속 지난 며칠 만나던 낯선 사람들을 떠올렸다. 누군가 나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아침. 열이 떨어졌다. 36.8도. 다행이다. 하룻밤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공포가 큰 시간이었다. 아픈 것보다 내가 감염원이 될까 더 무서웠다. 그동안 조심하면서 살았는데, 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걸 확인한 며칠간 의심과 불안은 더욱 커져있었다. 8월 15일, 수많은 사람이 모여 집회를 하고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제 불특정 다수가 감염원이 되어버렸다. 자기 신분을 밝히기도, 심지어 검사받기도 거부한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일정들이 취소되고, 간간히 버티던 자영업자, 프리랜서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코로나 상황 초기에는 모두가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버텼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모두가 조심하자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이 ‘나만 조심하고 있다’는 상실감으로, 분노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어른들은 왜 그래?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 비룡소)’에는 아이들이 본 어른들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어른들은 있잖아. 우리가 행복하길 원한대. 어른들은 자기들도 어릴 적이 있었대. 하지만 우리를 혼내는 걸 좋아해.’ ‘어른들은 깨끗한 손을 좋아해. 그러면서 아무 때나 뽀뽀해 달래.’ 여기까지는 웃으며 볼 수 있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얼굴이 굳어진다. ‘어른들은 늘 토론만 해. 게다가 전화기를 꿰차고 있어’‘어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 해. 하지만 뭘 물어보면 대답해주길 싫어해.’‘어른들은 머리가 아프대’
2003년도에 나온 책이지만, ‘어른’들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나에게 주변 어른들은 같은 말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뒤따르는 거야.’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책임지는 어른보다 그렇지 않은 어른이 훨씬 많다. 문득 이 책을 지금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면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세상을 만든 어른들에게,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지키자고 한 것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에게.
1925년 간디가 열거한 '일곱 가지 사회악'이 있다. 원칙 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양심 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 없는 교육(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 없는 경제 (Commerce without morality),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희생 없는 신앙(Worship whitout sacrifice)이다. 가만히 보니 모두 어른들 이야기다. 결국 내 이야기이다.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잘 못 사는 어른들이다.
이후 그의 손자 아룬 간디는 이 리스트에 '책임 없는 권리'(Rights without Responsibilities)를 추가한다. 그동안 어른들은 많은 권리를 위해 싸웠고 그 덕에 조금 나아진 세상이 되었다. 이제 그 권리에 따르는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책임지면 될 거 아니야!’ 큰소리쳤던 어른들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어른들은 왜 그래?’
어렸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계속 물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