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6)_[이파라파 냐무냐무]
“우리 마시멜롱들을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말이야!”
“이대로 냠냠 먹힐 수 없어요! 우리도 싸울 수 있어요!”
마시멜롱들은 공격을 시작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커다란 털숭숭이는 마시멜롱의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활활 불을 던지는 거. 마시멜롱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마지막 공격을 준비한다.
그때, 작은 마시멜롱 하나가 손을 든다.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가 봐야겠어. 작은 마시멜롱은 털숭숭이를 찾아간다.
활활 불 공격도 실패로 돌아간 마시멜롱들이 절망에 빠져있는 그때, 작은 마시멜롱은 털숭숭이에게 말한다. “소리 지르지 말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그때서야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 말을 알아차린다. ‘이파라파 냐무냐무’의 비밀을.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이지은 글그림 /사계절)는 오해를 푼 털숭숭이와 마시멜롱들이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한 자리에 함께 누워 하늘을 본다.
탈무드에는 ‘입보다 귀를 상석에 앉혀라. 입으로 망한 적은 있어도 귀로 망한 적은 없다.’라는 오래된 말이 있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것은 듣기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라 전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인 ‘경청’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敬聽’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傾聽’ 기울일 ‘傾’ 자를 쓰기도 한다.
탈무드의 말과 한자어 해석을 빌면 결국 ‘듣는다’는 것은 몸을 기울인다는 것. 그것은 곧 내 생각을 멈추는 행위인 동시에 마음을 내는 일이다.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 ‘듣기’의 시작이다.
마시멜롱들은 저렇게 커다란 털숭숭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아파 우는 소리라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커다란 털숭숭이는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럴 리 없다’는 자기 판단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작은 마시멜롱 하나만 털숭숭이에게 다가간다. 몸을 기대고 듣는다.
며칠 동안 우리를 뜨겁게 달구고, 여전히 열이 펄펄 나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보지 않았다.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없으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말로 바꿔 부른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알던 것, 나의 판단만 믿겠다는 것은 ‘합리’가 아니다. ‘신념’이라 여기고 싶겠지만 때에 따라 ‘오만’이 되기도 한다.
명확한 상대가 있는 데도 몸을 기울여 들어보지 않는다. 팔짱 끼고 저만치 서서 일단 말해 보라 한다. 대신 말하는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 말도 의심스럽다. 우리를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말이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털숭숭이 말을 들어보겠다는 마시멜로가 한심하다. 그러다 잡아먹힐 거다. 커다란 털숭숭이는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를 계속 공격한다. 활활 불도 실패했으니 또 다른 공격무기를 찾아야 한다. 더 강력한 무기를 찾아야 우리를 지킬 수 있다. 털숭숭이는 어떨까? 자기를 공격하는 마시멜롱들과 맞서 싸우기로 할까? 도망갈까? 여기를 떠나 다른 곳에 가서 마음 놓고 아프다고 소리 지르면 누군가 도와줄까? 아픔을 꾹 참고 소리지르기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할까? 아무도 나에게 몸을 기울여 듣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파라파 냐무냐무.
해석부터 하지 말고 들어봐야 한다. 입도 닫고 눈도 감고 가만히 몸부터 기울여야 한다. 혹시 들리지 않을까 지금 필요한 건 활활 불이 아니라, 보글보글 치약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