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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숙 Nov 19. 2020

택배 상자는 원래 ‘나무’였다.

그림책으로 본 세상(9)_[상자 세상]


“우체국 택배인데요.” 
 “네, 제가 없으니 문 앞에 놔주세요.”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전화나 문자가 온다. 반갑다. 기다리던 물건이 온 거다. 생각한다. 뭐가 온 걸까? 엊그제 주문한 까만색 블라우스? 아니면 아이패드 파우치? 아니면 책? 뭐든 상관없다. 신난다. 

그렇게 받아 든 택배 상자. ‘받아 든 택배 상자’라 표현했지만, 그 안에 물건만 꺼내 들면, 택배 상자는 바로 애물단지가 된다. 스티커를 떼어내고, 포장 테이프도 북북 떼어낸다. 그리고 한쪽 구석 재활용 종이를 모아두는 곳에 쌓는다. 다행이다. 택배 상자는 재활용되는 거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쌓인 택배 상자들이 소리친다. “배고파!” 그리고 세상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그림책 『상자 세상』 (윤여림 글 이명하 그림, 천개의바람)에 나오는 택배 상자들은 배가 부르고 심심해지자 자신들이 뭘 담았던 상자였나 ‘기억 놀이’를 한다. 서로 자기가 담았던 요상한 물건들 이야기를 하던 상자들은 점점 더 깊은 기억으로 빠져든다. 깜박 잠들었던 상자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나 꿈에서 나무였다.” 상자들은 다 같이 외친다. “나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이라 그 뒷이야기는 생략한다)


책을 덮고 다시 재활용품 모아두는 곳으로 가서 요 며칠 온 택배 상자들을 본다. 상자 안에 뭔가가 담겼을 때만 쓸모가 있던 그것들이 원래 나무였다니. 알고 있는 일인데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포장재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재활용이 된다니 괜찮지 않은가? 코로나 19 상황으로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할 수 없이 택배로 물건을 구입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소비가 훨씬 복잡한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사야만 했을까? 나는 ‘사야 하는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어떻게 구별하고 있나? 나는 왜 사고 있나?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책 『소비의 사회』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에서 ‘인간은 본능 지향적이면서 사회문화적 욕구를 가지는데 이러한 욕구는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를 소비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 상품을 소유해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사회적 차이를 만드는 과정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상품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한다는 것. 인간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욕구 소비’를 한다. 이건 싸서, 이건 지금 아니면 못 사니까, 중고니까. 이건 친환경적이어서 사야 한다는 끝없는 이유를 대면서 사고, 사고, 또 산다. 


택배 상자는 나무였다. 자연 그 자체였다. 그랬던 나무는 인간의 손에 의해 잘리고, 종이로 가공된 뒤, 욕구 소비를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나무와 택배 상자. 이 세상에 과연 어떤 것이 더 필요한 존재일까? 

SNS을 켜면 나의 욕구에 딱 맞는 것들을 사라고 손짓하는 광고들. 나도 모르게 누르고 들어가 살까 말까 생각하는 중이라면, 택배 상자 이전의 나무. 내가 산 물건을 담은 나무 이후의 택배 상자. 그 어떤 것이 더 필요한 가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자칫 택배 상자가 될 뻔했던 나무 한 그루를 덜 소비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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