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10)_[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그래서 더 이상 외출하지 않아요.’
마르게리트 할머니 얘기다. 그림책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인디아 데자르댕 글 파스칼 블랑셰 그림 이정주 옮김 시공주니어) 주인공 마르게리트 할머니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강도를 만날지도 모른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남편과 친구, 오빠처럼 할머니 차례가 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식구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는 것도 오래되었다. 괜찮다. 올해 크리스마스도 혼자 저녁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볼 거다. 그런데, 갑자기 큰 굉음이 들리더니 초인종이 울린다. 할머니 집 앞에서 작은 사고가 난 가족들이 전화를 빌리고, 화장실이 급해 번갈아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누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들은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를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밖은 위험하다. 그래서 집 안에만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과 스치는 일이 두렵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무서운 일이 되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냉동식품을 배달하는 배달부는 마주한다. 하지만, 우리는 배달부와 마주하지도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됨에 따라 비대면으로 배송합니다’라는 문자가 오고 문 앞에 상자가 놓인다. 곧 크리스마스고, 연말연시가 다가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선물을 주고받고, 올해를 마무리하며 모여 앉아 술 한 잔 나누는 일도 이젠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만나지 않아야 할까? 물론 재난 상황이니 참아야 한다. 다들 겪는 이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 나를 살리고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해 2,400여 명. 하루 평균 6명.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은 만나야 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 문제. 희생자와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차가운 광장에 서 있는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검이 된 어머니 곁을 지키다 홀로 나와 노숙을 하는 발달장애인, 하루 14시간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아파트 한 구석에서 죽어간 택배노동자도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마르게리트 할머니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받으려고 초인종을 누른 아빠를 받아들이고, 아이와 엄마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서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문을 연다. 할머니의 도움을 받은 그들이 떠나고 할머니는 눈 속을 걷고, 하늘을 본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달라진다. 삶이 달라진다.
여전히 밖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누르고 있는 초인종에 귀를 기울이고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려 해야 같이 살 수 있다. ‘할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했건만, 정작 할머니가 두려워한 것은 삶이었다.’ 책 속 마지막 글귀처럼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결국 인간답게 살아내는 것으로 진짜 살아지는 것.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곧. 크리스마스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기서 메리(Merry)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즐거움’을 뜻한다고 한다. 어쩌면 모두가 ‘메리 크리스마스’한 세상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올해는 밖에서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빼꼼 문을 열고 그들 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렇게 만나는 것으로 나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 좋겠다. 문을 열고 나가 한 마디 하면 더 좋을 테고.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