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5. 무늬일기, 둘.
오늘 무늬를 안았다. 자그마한 자신의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 강아지에게 '네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이 집은 안전한 곳이란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었다. 무늬를 안고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어떤 곳에도 무서운 건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강아지를 안아본 건 처음이었다. ‘강아지 안는 법’을 유투브에서 검색했다. 강형욱 훈련사의 친절한 설명이 나왔다. 앞발 바로 아래쪽으로 왼손을 넣어 가슴을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아랫배를 받쳐서 수욱 들어올리면 된다… 긴장되는 마음에 몇 년 전 이케아서 산 골든 리트리버 강아지 인형으로 몇 번 연습을 했다.
쉽지 않았다. 처음엔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코방석 놀이를 시작했는데, 코를 파묻고 킁킁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러다 들어올리려 시도하면, 무늬는 겁에 잔뜩 질려 내 손을 피하며 한 평짜리 침대 안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기껏 가라앉은 무늬의 마음은 다시 긴장 상태로 돌아섰다. 야위어서서 자그마한 몸이 아플까 세게 잡을 수도 없었다. 몇 번을 빙글빙글 돌던 무늬는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딸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번 실패를 하고 조금 뒤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딸국질은 멈춘 후였다. 조금 전의 기억이 남았는지 나를 보자마자 구석에 몸을 밀착시켰다. 간식을 내밀어봐도 냄새도 맡지 않았다. 피할 수 있다는 기억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붙잡았다. 배운대로 왼손은 앞발 아래, 오른손은 아랫배를 받쳤다. 무늬는 딱딱하게 굳었다. 왼쪽 손바닥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몇 발작 떼기도 전에 무늬는 참아왔던 배변을 방 한 가운데에 떨어뜨렸다.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때부터는 내가 더 긴장하고 당황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이 작은 녀석을 놓쳐버릴까봐 힘을 주다가도, 오히려 아이가 아파서 놀랄까봐 걱정이 됐다. 그러다 첫번째 목적지인 거실 소파가 가까워지고 무늬가 앞발을 허우적거리자 나도 모르게 그만 무늬를 놓아버렸다.
소파에 안착한 녀석은 피웅, 하고 발사하듯 소파를 박차고 나아가 미끄러운 마룻바닥을 뒤뚱거리며 뛰어서 제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그래도 며칠 간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었던 자신의 침대 안으로 쏘옥 들어가 다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최대한 작아져서 보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거실을 익숙하게 만들어주려던 목표는 그렇게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몇분 뒤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소파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지만, 그건 내가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시도에서 이미 배변을 해버렸기 때문에 몸 밖으로 나올게 없었다는 사소한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무늬는 언제쯤 저 작은 침대를 벗어나게 될까. 사람이 맨발로 딛고, 몸을 누이는 이 곳이 자신에게도 안전한 집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태어난지 2년이 가깝도록 바깥생활을 한 개에게,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미끄러운 마룻바닥이 있는 지상 6층의 아파트는 어떤 곳일까. 따뜻함과 깨끗함을 모르는 아이에게 그것은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면적 일제곱미터가 채 되지 않는 강아지 침대 안에서도 구석 사분의 일만을 차지하고 엎드린 이 아이는, 그 밖의 세상에 자신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고 아껴줄 준비가 된 두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될까.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무늬에게 행복한 일일까.
아니면 평생 흙더미와 컨테이너 박스 아래의 작은 틈, 시끄러운 찻소리와 벌레들을 그리워하며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