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와 닮은 아로, 무늬를 만나다.
TO. 입양 담당자께
안녕하세요
이런 식으로 제 소개를 써 본 적이 너무 오래여서 어색하지만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의 수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써보겠습니다. :D
저는 서울 00구에 거주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나이는 30대 중반이고 결혼한 지 햇수로 6년차입니다. 동거인인 동갑내기 남편은 서울 소재 기업에 재직 중이고 저희는 이미 결혼하기 전부터 자녀 출산 계획을 갖지 않는 것에 동의한, 흔히 말하는 DINK입니다.
현재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강아지에게 부족한 주거환경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동 같은 라인에 강아지와 함께 거주하시는 이웃이 계시고, 이분들의 매너가 좋으셔서 동네 분들 대부분 강아지에게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걸 봐왔습니다. 집 바로 앞에는 00천을 따라 길게 조성된 천변 산책로가 있어서 산책을 좋아하는 저희는 아침 저녁으로 걸을 때 마다 강아지와 함께인 주민분들을 자주 봤습니다. 아파트 단지의 앞 뒤로는 길을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작은 공원이 2개가 있습니다.
저는 결혼하지 전까지 본가에서 막내 동생 솔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솔이는 올해 14살이 된 15kg의 묵직한 털복숭이 여동생입니다. 어머니가 이모의 소개를 통해 솔이를 데려오셨지요.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어서 부모님께 조른 적이 많았지만, 막상 솔이가 집에 왔을 때 저는 극구 반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계획도 없이 급작스럽게 강아지를 데려온 어머니를 힐난하기도 했고, 이모에게 다시 돌려주어 더 좋은 입양처를 알아보라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솔이는 당시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라 힘들었던 저의 마음에 큰 사랑을 나눠주었고, 저 뿐 아니라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애교쟁이로 자랐습니다. 저희 집 모든 일의 중심이 솔이로 변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가족 모두 강아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채 솔이를 맞이했기에 입양 초기에는 실수도 많았습니다. 솔이에게 켄넬 훈련을 해야 하는지 몰랐고 식탁 아래에서 기다리는 솔이에게 저희가 먹는 음식을 조금씩 떼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꼭 지킨 일이 있었습니다. 가족 모두 솔이를 혼자 집에 두고 외출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었어요. 하늘이 두쪽나도 집에 솔이 혼자 두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술자리에서 부랴부랴 들어오셨고, 저와 언니는 친구와의 약속을 미루기도 했어요. 언제나 늘 누군가가 솔이를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희 가족은 솔이를 맞이하고 난 이후부터 반려견 동반 숙소 부터 찾았습니다. 일단 숙소를 결정한 후 여행지를 결정하곤 했어요. 아기 솔이는 실내 배변을 했지만, 1살이 지난 후부터는 자연스럽게 실외 배변을 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저녁으로 하루 2회 이상 산책을 해야 했습니다. 장모견이라 반나절만 지나면 집 구석구석에 하얀 털이 눈처럼 소복이 쌓이지만 틈나는대로 정전기 마대나 로봇청소기를 돌렸습니다. 솔이와의 삶을 통해 강아지와 함께 사는것의 번거로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니, 아빠의 코골이 때문에 잠에서 깨거나 아침 저녁 귓전에 울리는 엄마의 잔소리와 비슷한 정도의 번거로움이라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고 싫지 않은 번거로움이요.
남편의 부모님은 자녀 분가 후 귀향하셨습니다. 그 곳에 마당이 있는 집을 지으시고 반려견 덕이와 함께 지내고 계십니다. 올해 4살인 삽살견 덕이는 작년 중성화를 마친 후 제법 어른스러워졌지만 여전히 밭을 가로질러 뛰고 온 동네 대소사를 참견하는 아이입니다. 남편은 비록 결혼 후 덕이를 만나게 되어 저와 솔이처럼 함께 산 경험은 없지만, 수더분한 성격의 덕이가 일년에 너댓번 보는 저와 남편을 기억하고 가족으로 대해주고 있어 부쩍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한 집에서 강아지와 삶을 나눈 적은 없지만, 저와의 연애 시절부터 종종 솔이를 데리고 셋이 함께 산책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제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보낼 때마다저희 집에 머물다 가는 솔이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때의 경험 덕에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고 삶을 공유하는 것의 기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혼 전 부터, 그리고 결혼 후에도 저희 부부는 오랫동안 개를 가족으로 맞이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강아지 가족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강아지가 외롭지는 않을까? 우리보다 더 좋은 가족을 맞이할 기회를 우리가 뺏는 건 아닐까?
사실 대화의 주된 주제는 '우리가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할 자격이 있는걸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남편은 평균 9시~6시, 저는 7시~4시 동안 회사에 있습니다. 오래 집을 비우는 2인 가족의 현실이 혼자 집에 오도카니 앉아 가족만 기다리는 쓸쓸한 강아지를 만들고, 우리의 욕심만 채우는 건 아닐까 하는 슬픈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인스타그램에서 유기동물 입양을 돕는 단체들의 피드를 보며 마음이 닳고 아파하는 많은 분들 중 하나입니다. 유기견을 입양하는 분들이나 임시보호를 하는 분들의 숭고한 실천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라도 돕기 위해 동물보호 단체 서너곳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지만, 직접 발로 뛰시는 분들의 노고에는 비할 바가 없습니다. 유기동물을 알리는 피드를 보다 유독 마음이 쓰이는 아이가 아로였습니다. 솔이와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얼굴도, 모색도, 표정도, 설명되어 있는 소심한 성격마저 닮은 아이였습니다.
우리 둘이라면 할 수 있을거야. 나는 준비가 된 것 같아. 넌?
아로를 본 이후, 며칠의 진지한 대화 중 남편의 묵직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닿아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비로소 용기를 내어 6년 전부터 보내고 싶었던 메일을 보냅니다. 저희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사람에게 받은 듯한 상처가 깊은 작은 아로가 마음을 열고 편히 잘 수 있는 곳을 마련해주고 싶네요. 연락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