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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Mar 28. 2021

겁쟁이 강아지가 거실 소파 차지한 사연

2020.03.16. 무늬일기, 셋

처음 무늬를 위해 준비한 자리는 운동방 소파 옆, 가장 구석자리였다. 현관에서는 가장 멀고 인적이 드문 공원쪽으로 창이 나 있어 조용했다. 첫 날 밤을 켄넬에서 보낸 무늬는 다음 날부턴 1제곱미터짜리 침대에 머물렀다. 코방석이 깔린 침대에서 간식도 받아먹으며 조금씩 적응해가는 것 같았다.

다만 집 안에서는 변을 보지 않으려 하는게 걱정이었다. 눈이 닿을 만한 곳에 배변패드를 깔아두었지만 무늬는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 한 번 침대에다 소변을 보고선 그 자리를 피해 구석에 쪼그리고 있었는데, 그 날 이후로는 다시 모든 걸 꾹 참기 시작했다.


그래서 쉽지 않더라도, 산책을 시켜보기로 했다.

무늬는 아침부터 하네스를 차고 있었다. 입양시점에 맞춰 미리 사두었던 얇은 하늘색 하네스였다. 오후에 첫 산책을 계획 중이었다. 집 밖에서 태어나 1년이 넘게 살아온 아이였기에 산책은 아주 중요한 루틴일 것임이 분명했다. 임시 보호로 머물렀던 집에서도 집 안에서는 며칠이고 대소변을 참았다고 했다. 저녁에 계획 중이었던 산책을 위해 미리 하네스를 채워두고 그것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하려 하면, 무늬는 우리의 손을 피해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 공간을 벗어나 도망갈 용기도 없어서 고작 가로세로 20~30센치 정도의 공간에서 제 몸을 동그랗게 말고선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마저도 몸 어딘가를 잡고 약간만 힘을 주면 무서워서 굳어버렸다. 그래서 하네스를 채우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내는 그 마저도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힘을 써서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팔뚝만한 너비의 공간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그만, 하네스의 한쪽 클립을 채우지 못했다. 그냥 두었다가 나중에 채워야지, 하는 생각에 포기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첫 산책을 계획했던 저녁이 되었다. 하네스를 마저 채우려는데 플라스틱으로 된 한 쪽 클립이 부서져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하네스를 벋기고 강아지 침대를 샅샅이 뒤졌다. 플라스틱 조각이 절반만 발견되었다. 아무리 주변을 뒤져보아도 나머지 절반의 조각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몇 시간 전에 무늬의 방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던 것이 생각났다. 풀려있던 한 쪽 하네스의 클립이 무늬의 발 밑에서 덜렁거리고, 그것을 아그작 아그작 깨물어 먹는 하얀 강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아지 두 살이면 한창 이빨이 간질간질할 나이라니까, 이 아이를 탓할 수는 없었다. 찾을 수 없는 나머지 플라스틱 조각은 무늬의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 위를 거쳐 대장 어딘가를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캔넬을 챙기고 무늬를 들어서 넣었다. 작은 상자안에서 무늬는, 바들바들 떨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났다. 혹시나 해서 깔아놓은 배변패드는 오줌과 똥으로 이미 더러워져 있었다.


동물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무늬를 알아봤다. ‘쫄보아로’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로'는 무늬의 입양 전 이름이다. 간호사분들의 도움으로 캔넬은 잘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대소변으로 잔뜩 더러워진 무늬에게선 고소한 냄새가 끝도 없이 났다.


우리는 잔뜩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하루 이틀이면 대변과 함께 밖으로 나올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강아지를 캔넬 안에 모셔 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산책을 했다. 산책이라기 보다는 동네 조용한 풀밭 위에 무늬를 던져놓은 것에 가까웠다. 무늬는 꼬리를 말아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온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동그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안절부절 못했다. 노즈워크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집에 와서 목욕을 시키고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무늬는 자신의 방을 잊은 모양이었다. 잠시 당황하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 여기가 아니네, 하는 몸짓으로 얼른 방을 나와서는 거실로 향했다. 내가 안아주었을 때, 거실소파에 앉았던 기억이 난걸까. 거실소파에 통, 하고 오르더니 뭉친 담요와 인형 사이에 폭 들어갔다. 그리고 슬그머니 엉덩이를 소파에 붙였다. 푹신푹신한 게 마음에 들었던가 보다.


그렇게 우리의 거실 소파는 무늬의 새로운 침대가 되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금방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작은 방에 있을 때보다 편해 보였다.

집의 정중앙, 모든 시선이 모이는 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강아지를 보며 스르륵, 정신없던 하루의 긴장이 풀렸다. 배가 고픈지도 피곤한지도 모른 채 그저 이 갑작스런 위기를 세 식구가 함께 뚫어냈다는게 대견했다.


이 하루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본능적 욕구, 지적 호기심. 어떤 것도 충족되지 않은 이 하루에서 행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보살펴야 할 누군가가 있고, 그것을 함께할 동지가 있다는 것이 행복일까. 나로 수렴하는 것만이 행복인 것이 아니라면,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그래서인지 새벽에 깬 뒤엔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도 우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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