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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May 04. 2021

강아지와 산책을 하며 알게 된 것들

무늬의 산책, 산책의 무늬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있다. <나를 보내지마>를 썼던 노벨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최근작이다. 소설의 배경은 근미래. AF(Artificial Friend)-지극히 개인화된 아이들의 사회성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인 클라라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클라라의 시점에서 전개되며, 따라서 클라라가 보고 느끼는 바에 따라 세상을 묘사한다.

클라라는 특히, ‘해의 무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인간과는 조금 다른 인식 체계를 갖춘 AF에게만 보이는, 일종의 빛의 파장 또는 빛이 사물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되는 스펙트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AF의 에너지원이 태양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소설에서 상징하는 바 -더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한다- 로 인해 ‘해의 무늬’라는 클라라의 인식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현상을 지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그것으로 이루어진 삶의 경험이 완전히 차별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볼 수 없는 ‘해의 무늬’를 아는 클라라에게 태양이 갖는 의미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 세상을 바라 볼 때, 빛을 생각할 때 사람과 AF는 세계 안에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클라라와 사람에게 햇살의 의미가 다른 것처럼, 개의 산책과 사람의 산책은 전혀 다른 행위다. 산책을 할 때 존재하는, 두 발 아래로 지나거나 혹은 네 발 아래로 지나는 이 공간은 개와 사람에게 완전히 차별적인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벽과 지붕이 있는 집에서 나고 자랐다. 가공된 나무, 또는 장판이 깔린 바닥을 맨발로 딛었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침대에서 잠을 잤으며 콘크리트로 채워진 단열 공간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흙을 밟고 꽃과 풀냄새를 맡는 일은 비일상의 영역이다. '소풍, 나들이, 여행...' 일상의 대척점에 있는 이벤트와 연결된 어떤 특별함. 산책을 한다, 라고 생각할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다.


어디서부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무늬가 성장기를 보낸 공간에는 벽과 지붕이 없었다. 컨테이너 아래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절반 정도의 지붕'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닥이 흙이고, 언제나 풀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자란 강아지에게 산책은 어떤 의미일까. 나의 그것과는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을까.


내게는 들리지 않는, 꽃과 잡초들 사이의 풀벌레 날개짓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어제 그 자리를 거쳐 간 다른 개의 냄새와 땅과 나무 밑둥의 경계에 있는 흙냄새를 맡을 것이다. 마치 클라라가 '해의 무늬'를 보는 것처럼 무늬는 '냄새의 파장과 스펙트럼'을 인식할지도 모른다.


그런 무늬에게 우리집 뒷 길의 산책로는, 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공간일 것이다.




입양 초기의 무늬는 산책을 나가면 구석을 찾아 한참을 웅크려 있곤 했다

첫 산책 때 무늬는 현관문 앞에다 소변을 했다. 못 믿을 놈들 -며칠 전에 자기를 납치해서 낯선 집 안에 가둬둔 이상한 두 남녀- 이 자기를 묶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데려나가니 그 상황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엘리베이터에서도 다리를 부르르 떨었는데, 용케도 잘 참아냈다. 하지만 하필 1층에 사람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무늬를 보고 귀여워했지만 녀석은 1층 남의 집 현관 앞에 주저앉아서는 옴짤달싹을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나서야 가까스로 움직였는데, 떠난 자리엔 묽은 똥과 오줌이 뒤섞여 있었다.


두 번째엔 복도까지 잘 참았다. 그랬더니 엘리베이터에 똥을 싸버렸다. 아내는 코로나19 방지용으로 설치해 놓은 손 세정제를 이용해 엘리베이터 바닥을 박박 닦아내야 했다. 그 날 소변은 아파트 로비 바깥에다 했다. 잘 참았다. 그리고 산책하는 흙바닥에 처음으로 대변을 보았다. 일책삼변의 순간이었다.


세 번째 산책 땐 아파트 밖에까지 참아냈다. 두 번째 산책때 소변을 했던 자리에 약간의 대변을 곁들인 소변을 깔아놓았다. 조금씩 변을 보는 거리가 집에서 멀어져갔다.


우리도 서서히, 겁쟁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법을 배워갔다. 하네스를 채우고 조금 기다리면 떨림이 잦아들었다. 소파에서 카페트까지 움직이는데 오 분. 다시 현관을 나서기까지 삼 분. 우리가 기다려주면 무늬도 참아주었다. 그렇게 차츰 제 발로 전진하는 거리를 늘려갔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릴만큼 낯선 이 세상을 향해서.



산책을 할 때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강아지의 뒷모습


이제 무늬는 산책왕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소파에서 거실 끝까지 와다다다 뛰어다닌다. 그러다 산책용 옷과 하네스를 들고 가면 소파 위로 올라가 얌전히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아침이다! 산책가자!"라는 신호다.


가끔 새로운 산책로를 가면, 무늬는 걷지 않는다.

뛴다. 겁이 났을 때의 뜀박질과는 다르다.

네 발이 지면에서 떠 있는 시간이 더 길고, 머리와 허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신이 나서 뛰는 강아지의 모습은, 난생 처음 개를 마주한 사람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몸짓 언어다.

신이 나서 달리는 무늬


“그냥 땅냄새, 풀냄새 맡는게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매일 하는 건데 지겹지도 않니, 무늬야?”


산책을 하며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는 일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강아지를 보며 많이 웃는다.


흙바닥에 코를 쳐박고 왼쪽 오른쪽 바쁘게 움직이는 작고 하얀 뒤통수, 거기에 달려서 팔락이는 갈색 귀.

머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면봉같은 네 발과 작은 엉덩이, 부드럽게 늘어뜨린 채 좌우로 흔들리는 기다란 꼬리.


나와 다른 세상을 사는 존재와 교감을 나눈다는 것은,

그 세계를 얻는 것과도 같다.


무늬로 인해 매일 산책을 한다.

꽃이 피고 지고 풀이 무성해지는 것을 안다.

전엔 미처 몰랐던 산책의 무늬를 발견한다.

그것을 매일, 꼬박꼬박 알아보고 즐거워하는

내 강아지의 행복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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