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반려견과 닮아도 너무 닮은, 운명의 강아지 무늬
이 아이, 우리 집에 데려 오면 어떨까?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혼을 하며 분가를 하기 전까지 반려견 솔이와 함께 살았다. 10여 년간 솔이가 내게 가르쳐준 새로운 감각은 늘 가슴 한켠에서 몽글거리고 있었다. 남편과 산책하며 강아지를 마주칠 때마다 '이거 봐. 나만 강아지 없어. 나만!'을 장난스레 외치곤 했지만, 이제야 고백하건대 순도 100%의 진심이었다. 어느 날부터 동물보호단체와 유기견 보호소의 sns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좋은 가족을 찾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기뻐하고, 안락사를 앞둔 아이들을 보며 한껏 침울해지기도 했다. 마음에 남는 사연을 가졌거나 말 그대로 화면 속 눈망울과 눈이 마주쳐버린 아이들을 하나둘씩 저장하기를 3-4년쯤. 어느 날엔가는 남편이 내 핸드폰 사진첩을 보고 '아니, 왜 이렇게 낯선 강아지 사진이 많아?'라고 물었다. 허허허 그러게 말이야 라고 대꾸하고 말았지만, 사실 잠들기 전마다 아이들의 얼굴을 하도 들여다봐서 그런가 왠지 오래 알고 지낸 아이들 같았다.
가슴 높이에서 내 발 사이즈 정도의 너비로 양손을 마주 보게 하고 동그란 걸 잡은 듯 손가락을 동글게 말아본다. '한 요만하지 않을까? 이렇게 작은 친구가 우리 집에 있다고 크게 달라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단호히 마음을 접었다. 우리 집 가족이래 봤자 단출도 하다. 나와 남편 둘뿐. 주중에는 세탁기가 해주는 빨래도, 청소기가 해주는 집 청소도 못할 만큼 회사일에 치여 사는 맞벌이 부부에게 강아지라니. 쓸쓸히 혼자 우리만 기다리고 있을 작은 친구의 슬픈 눈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 선명한 미래에 우리 가족(가상의 강아지 일원 포함)을 밀어 넣을 순 없지.
무늬는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줬던 138번째쯤 되는 강아지였다.
하지만 137번째와는 다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후였다. 이 아이 솔이와 닮아도 너무 닮은 거다. 그동안 그렇게 고심(이라 쓰고 핑계)하며 좌고우면 하는 동안 가여운 친구들을 놓치더니, 드디어 올 게 온 것인가. 남편도 '얘 완전 솔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무늬의 다른 사진들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무늬와 솔이의 외모 상 닮은 점이 너무 많아 다른 점 하나만 적어본다. 솔이는 풍채 좋은 풍산개 어머니를 둔 개답게 성견이 되자마자 15kg를 거뜬히 찍은 빅 개이고, 무늬는 5kg 정도로 추정되고 마른 상태라 정상 체중을 되찾으면 6-7kg 정도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무늬는 당시 첫 임보처에서 사정이 생겨 두 번째 임보처로 옮겨 머물고 있었데, 소개글을 읽어보니 길에서 시간을 꽤 보낸 듯 구조 당시 매우 꼬질한 모습이었고, 구조될 때 사람들의 외침과 완력에 놀란 탓인지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붙임성이 별로 없는 아이라고 했다. 입양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먼저 구조된 자매견이 입양 가서 잘 지내고 있어서 단체에서 용기를 내 무늬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글도 함께 찾아 읽었다.
임보자님이 올리신 영상을 보니 방석보다 조금 큰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오고 까만 눈을 돌리고 눈치만 보는 모습이 마음에 박혔다. 이런, 겁 많고 소심한 성격마저 대왕 새가슴 우리 솔이를 닮았네. 마치 침대 밖에 용암이라도 흐르는 듯 맨 방바닥에 발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이. 무늬는 이미 다 자란 성견 아이였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캐발랄 품종견도, 아기 강아지도 아니었다. 어쩌면 좋지.
갈팡질팡하던 마음은 뜻밖에도 이상한 곳에서 풀렸다. 무늬를 보며 고민하던 중, 단골 헤어숍에 갔다. 헤어숍 원장님도 파양견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계셨고, 평소 솔이에 대한 이야기와 유기견을 입양하고픈 나의 마음들을 알고 계셨다. 무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고민 중이라고 했더니 원장님 말씀.
'더 좋은 환경을 만든 후 맞이하시려는 마음은 이해해요. 그렇지만 그 아이에겐 앞으로가 없을지 모르잖아요. 유기견을 입양하면 그 아이에게는 세상을 모두 주시는 거나 다름없어요. 살리는 일, 결국 앞으로의 생명을 주는 거죠. 그것만큼 값진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그 후로 몇 년 간의 고민이 우스울 만큼 무늬를 데려오기 위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입양기관에 입양 의사를 메일로 밝히고, 유선 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입양 확정 후 입양 서약서를 작성했다. 다음날 곧바로 임보자님과 연락하여 무늬를 데려올 약속을 정했다.
전날 밤, 남편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겸 무늬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을 로켓 배송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집에서 가장 조용한 서재방을 정리해 한켠에 무늬가 머물 공간을 만들었다. 솔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사용하던 물그릇과 밥그릇, 그리고 침대를 꺼내 세팅했다. 솔이는 체구에 비해 작고 보드라운 재질의 장난감을 좋아하는데 무늬는 어떨까? 솔이는 시판 간식보다 삶은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좋아하는데 무늬는 어떨까? 솔이는 함께 있다가도 슬그머니 조용한 곳을 찾아 들어가 낮잠 자는 걸 좋아하는데 무늬는 어떨까? 사진과 영상으로 알 수 없던 무늬의 취향을 궁금해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웃기게도 고민왕답게 역시 몇 년에 걸쳐 고민하고 있던 나의 퇴사 시기마저 확정해버렸다.
여러가지로 무늬는 우리의 운명의 강아지였다.
안녕하세요
그저께 통화했던 000입니다.
말씀해주셨던 아로(무늬의 입양 전 이름)의 상황을 남편에게 전달하고 이야기 나눴어요. 아로 임보자님 인스타 계정을 봐 온 저는 어느 정도 아로가 마음을 여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는 아이라는 걸 짐작은 했는데, 전화로 상세히 설명을 들은 후에는 막상 저희가 아로를 잘 대할 수 있는 최적의 식구인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남편과 저 역시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서로 의지하고 노력하며 살고 있으니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볼수록 솔이 어렸을 때를 꼭 닮은 아로와도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로를 가족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보겠습니다.
000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