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이 Jun 05. 2021

너의 생일, 다시 태어난 우리

반려견 무늬는 길에서 태어났다. 아니, 아마 길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비와 눈을 피할 지붕을 찾고 굶주린 배를 채우려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지자체 유기동물센터에 입소한 무늬는 유기견 출신이다. 민간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구조되어 안락사 직전에 입양의 길을 걷게 된, 그나마 대부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유기견 치고 억세게 운 좋은 강아지일지도 모르겠다. 유기동물센터에 올라온 무늬의 공고 글에는 2018년생 추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강아지의 나이는 치아의 상태로 추정한다는 글을 봤던 기억이 났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몇 살인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 한 강아지 무늬와 가족이 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마음에 짙게 남은 순간들이 많다. 인간과의 동거가 낯설어 좀체 마음을 열지 않던 무늬가 처음으로 우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던 날, 아침을 먹다 말고 식탁에 앉아 꺽꺽 거리며 울었다. 방구석을 나와 거실 소파에 올라왔던 날의 어리둥절한 무늬의 얼굴과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고마워 함박웃음을 지어버렸던 어느 날. 모든 큰 소리를 무서워하는 녀석이 산책길에 갑자기 난 쿵 소리에 앞발에 힘을 꽉 줘 안겨있던 내 팔을 더욱 세게 안았던 날의 촉감. 길거리 생활로 인해 얻었던 병이 완치된 날과 놓쳐버린 사회화 시기에 배운 적 없는 다른 개와 소통하기 위해 애쓰던 모습. 혹시 짖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려했을 만큼 조용했던 네가 '왕'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귀여운 목소리를 냈던 순간. 둘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모르는 행인으로부터 밑도 끝도 없는 폭언을 들었지만 아무것도 못 하고 부들부들 떨며 들어왔던 날. 안쓰러움, 대견함, 속상함, 과 같은 감정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 감정의 강도와 진폭이 어마어마했다. 


그 많은 날들 중에서 정작 무늬의 생일을 알 수 없어서 제법 속상했다. 그래서 집에 온 날을 입양 기념일이자 생일로 정했다. 강아지용 케이크를 사고, 알록달록한 풍선을 매달았다. 랜선 파티를 열어 SNS 친구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정작 무늬는 풍선이 무섭고, 묘하게 높아진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을 하는 우리가 낯선지 눈만 굴리고 있었다. 이제 무늬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그날은 우리가 정한 무늬의 생일이었지만, 정작 다시 태어난 건 우리 인지도 모르겠다.


생일 축하해 무늬!


https://www.instagram.com/mooneethedog/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유기견 무늬를 입양한 까닭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