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이 Jun 16. 2021

동물에게 사려 깊은 작은 사람을 만나다

나도 커서 저런 아이가 되고 싶다?


1. 이야기 하나.


아파트에 살고 있다. 고층이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혹시 몰라 늘 반려견 무늬를 안고 탑승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면 내려놓을 때도 있지만 보통 탑승 후 다시 내리기 전까지 안고 있는 편이다. 어느 날 무늬를 안고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1층에서 문이 열리고 초등학교 2-3학년으로 보이는 아이와 보호자가 탔다.


"아빠, 나 나중에 강아지로 태어날래. 너무 귀엽잖아!"


"그건 안돼ㅠㅠㅠㅠ 개는 더럽잖아."


"...?"


난감한 아버지와 졸지에 더러운 존재를 안고 있게 되어 더 난감한 나. 난감한 두 어른과 달리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와 무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더럽지 않아요....



2. 이야기 둘


"제가 강아지를 무서워해서요."


어김없이 무늬와 나선 산책길. 공원 입구 계단의 위쪽 시작점의 한 아이가 아래쪽 시작점에 진입한 나에게 한 말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의 몸은 표정과 함께 경직되어 있었다.


"어머나, 미안! 누나가 줄을 꽉 잡고 여기 서 있을 테니 먼저 내려올래?"


그제야 멋쩍은 얼굴을 하고 천천히 내려왔다. 아이는 거의 다 내려올 무렵 나와 무늬를 향해

  

"근데 얘 참 귀엽네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 뒤 후다닥 뛰어갔다. '에? 뭐야 뭐야. 네가 더 귀여워!!'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고백이라도 받은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재잘거렸다. 너무 잘 큰 아이 같다, 강아지를 무서워한다고 말하라고 알려준 아이의 부모님 짱 멋지다, 근데 무늬가 좀 귀엽긴 하다, 등등.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는 솔직함으로 시작해준 아이 덕에 성사된 거다. 언젠가 공원에서 나와 무늬를 향해 대뜸 인상부터 쓰던 사람에게 받은 작은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며칠 뒤의 산책길.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 걸어오던 네댓 명의 무리 속에서 한 아이가 우리와 무늬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아? 안녕!" 인사는 사람의 일이니 당연히 응답했으나 음? 동네에서 내게 인사를 할만한 아이는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 지나가는 그들 무리의 대화가 들려왔다.  


"누구?"


"아, 전에 무섭다고 하니까 강아지 잡아주신 분. "


"아~ 잘했네."

 

그 이후 아이는 마주칠 때마다 나와 무늬, 이제는 남편에게도 인사를 한다. 아이를 보면 난 리드 줄을 더욱 짧고 강하게 쥐었음을 보여주고, 아이는 천천히 느리게 걸어서 나와 무늬를 지나친다. 꾸벅하는 인사와 함께. 나도 커서 저런 아이가 되고 싶다? 는 말은 말이 안 되는 거 알지만, 작은 아이에게서 비록 강아지일지라도 상대를 품격 있게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이 날 이후부터 길에서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내가 강아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과할 용의가 생겼다. 단, 이 아이처럼 서로 같은 마음의 배려를 주고받을 의사가 있을 때만.


꽃과 풀냄새를 좋아하는 초식동물 재질의 강아지 무늬입니다.


어떤 어른의 태도를 모든 어른의 태도로 치환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어떤 아이의 태도를 모든 아이의 태도로 치환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개의 태도(혹은 보호자의 태도)를 모든 개(보호자)의 태도로 치환하는 일도 없었으면 합니다. ☺️



�무늬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ooneethedog/?hl=ko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생일, 다시 태어난 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