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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Oct 24. 2022

[디저트] 식사 중 맨 마지막에 먹는 음식

애피타이저와 디저트

 짠맛과 고소한 기름기가 혀 아래에 남아 조금씩 꿈틀거린다. 입 안 어디에선가 퐁퐁 샘솟아 침이 고인다. 방금 내 입을 거쳐 목구멍을 넘어간 스테이크의, 초밥의, 마라탕의 여운에는 간직하고 싶은 감칠맛과 얼른 씻어내고 싶은 찜찜함이 중첩되어 있다. 그런데 상충되는 이 복합적인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마법을 우리는 안다. 디저트다.


 잔뜩 약이 오른 혀는 이제 강력한 한 방을 원한다. 달달하고 달콤하고 달큰한데 상큼하고 새콤하고 시큼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초콜릿 케익이거나 아포가토이며, 잘 익은 멜론이거나 탱글탱글한 포도다. 때로는 쨍하면서 고소한 인절미 빙수이기도 하며, 따스하고 단단하며 부드러운 크렘 브륄레이기도 하다.


 디저트의 악랄한 매직은, 그것이 기름진 식사의 찌꺼기를 씻어내면서도 달아오는 맛의 욕망을 그대로 충족시키며 이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멈출 수도 참을 수도 없다.


 디저트: 식사 중 맨 마지막에 먹는 음식 (그랑 라루스 요리백과)


 <그랑 라루스 요리백과>가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인정받으니 안도감이 든다. 그래, 디저트는 메인 식사를 하자마자 바로 때려넣어야 제 맛이지.


 결혼 생활 7년 간 아내와 가장 흔하게 겪은 대립은 '디저트를 지금 바로 먹을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먹을 것인가'였다. 원체 먹는 데에는 진심인 부부라 우리의 식사는 늘 맛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충 때우는 일이 없었다. 서울의 맛집들을 차례차례 뽀개던 시절부터 집 주변 배달음식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그 미각의 여정을 멈추어 본 일이 없다. 하지만 훌륭한 음식들을 싹 해치우고 나면, 늘 의견이 갈린다. 이 흐름을 그대로 이어 '바로 달달한 것으로!' 진격해야 한다는 급진주의와 '너무 배가 부르니 조금 쉬었다가 가자'는 보수주의가 대립한다.


 급진주의자인 나의 입장은 늘 명확하다. 달달한 건 '지금 먹어야 진짜' 맛있다. 입이 미친듯이 자극되어 있는 지금 이 순간, '짠'에서 '단'으로 즉각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을 놓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입 안의 이 꿉꿉함이 사라지기 전에, 나의 이성보다 혀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 때가 디저트를 때려넣을 바로 그 순간이다. 그랑 라루스 요리백과님도 식사의 맨 마지막은 디저트라 하지 않았나.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때다.


 하지만 보수주의자인 아내의 현실론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배가 불러서 먹을 수가 없단다. 여기에는 딱히 내세울 만한 반론이 없다. 그래도 나름 다정한 부부인데, 나는 지금 먹고 너는 나중에 먹으라며 각 방 쓰는 황혼의 노부부 같은 플레이는 곤란하지 않은가. 그래서 일반적으로 급진주의자는 패배한다. 이래서 세상은 늘 보수의 승리로 귀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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