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1. 무늬일기, 하나
2020년 3월 10일 오후 일곱시였다. 삼성동 골목 이층짜리 빌라 옆 골목에서 무늬를 만났다. 임시보호자의 품에 안겨 내려온 무늬는 작고 하얬다. 긴장한 나머지 임시보호자의 옷에 배변을 했다. 올라가서 대화를 나누고 데려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내려온 무늬를 보고 나도 당황했다. 얼른 차를 길가로 다시 주차하고 캔넬을 챙겼다. 무늬를 받으려고 캔넬을 열었다. 물건을 옮겨담듯 기울였다가, 아차 싶어 바닥에 내려 놓았다. 임시보호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무늬를 캔넬에 옮겼다. 아무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동차 뒷자리에 캔넬을 싣고 문을 닫았다. 네비게이션을 맞추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는 임시보호자와 얘기를 나눴다.
고소한 강아지냄새와 약간의 똥냄새가 섞여 차안을 채웠다. 뒷문을 살짝 열고 한 시간을 달렸다. 아내는 긴장한 무늬가 힘들까봐 캔넬을 가려줬다. 다행히 아이는 조용히 한 시간을 견뎠다. 낑낑거리지도 짖지도 않았다. 너무 무섭고 힘들었겠지만 참아 준 무늬가 대견했다.
입양을 결심한 건 일주일 쯤 전이었다. 임시보호자의 인스타 계정을 한달 정도 살펴본 후였다. 지금은 장모님댁에 있는 아내의 열 다섯살 강아지 솔이와 많이 닮은, 하지만 훨씬 조그마한 하얀 믹스견이었다. 아내가 마음을 빼앗긴 건 어쩌면 당연했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일단 지금은, 한동안은 집에서 함께할 시간이 많으니 적응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임시보호자가 걱정이 많았다. 컨테이너 밑에서 구조되었다는 두 살이 된 아로 -입양 전의 이름- 는 어린 시절에 사람을 겪지 않아서 겁이 많다고 했다. 괜찮으시겠냐며 우리를 걱정해 주었다. 아내와 나도 걱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기에, 생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배움의 자세를 알기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서 캔넬을 꺼내 들고 가는데, 무서웠는지 무늬가 꿈틀거렸다. 캔넬 바닥에서부터 전달되는 흔들림. 발바닥과 무릎관절이 플라스틱 캔넬에 부딪치는 덜컹거림. 아, 이 아이는 생명이구나. 집이 흔들리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몸을 뒤척이는 살아있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잘해야지. 행복한 존재로 짧은 생 살아갈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줘야지. 게을러지지 말아야지.
다음 날 오후 세시쯤, 무늬를 보러 갔던 아내가 배실배실 웃는 입모양에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돌아왔다.
“무늬가… 내 손에 있는 간식을 먹었어. 혀로 핥는 부드러운 느낌이 너무 좋아.”
아이는 생각보다 일찍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도 얼른 가서 손 위에 간식을 올렸다. 손바닥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작은 혀의 감촉이 닿았다. 몇 번이고 반복하고 싶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촉촉함이었다.
내일은 캔넬의 뚜껑을 열어줄 것이다. 나와 아내가 둘이 채우던 세계에 들어온 이 아이에게 세계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