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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Nov 25. 2021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우리는 서로를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제시는 "너희가 뭔데 나를 판단해?"라며 동료 래퍼들의 평가를 불쾌해했다. 그게 6년 전이다. 당시 제시는 "디스 이즈 컴페티션"이라는 말을 유행어로 만들기도 했는데, 내게는 이 두 문장이 너무도 상충되는 걸로 여겨져 헛웃음이 났다. 경쟁인데 평가를 안하면, 어쩌라는 거지? 평가없는 경쟁이라는게 가능한가.

 지금 생각해보면, 너희가 뭔데 나를 판단하냐는 말에서 가 문제를 제기한 건, '너희가'에 있는 것 같다. 내 옆에 앉아있는 너는 나를 판단할 수준이 안돼, 내 위에 있는, 정말 대단한 누군가,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평가해야해. 이런 의미였거나, 아니면 '너희들'의 평가 기준을 나는 납득할 수 없어, 이런 뜻이었지도.


 회사에 처음 '리더십 다면진단'이 도입되었을 때, 상당한 부작용이 있었다. 다면진단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썼지만, 사실 이건 그냥 '팀원이 팀장을 평가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전까지의 평가가 가지고 있던 위계가 뒤집히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나의 팀장도 그랬다. 그는 나름 해당 직무에 2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전문가(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랬다)였는데, 팀원들의 평가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같은데 왜 결과가 안 좋게 나온 거지? 하며 의문을 가졌는데, 다른 팀원들도 내게 비슷한 얘기를 해서 사태의 전말이 미궁에 빠졌던 게 생각난다. 나는 잘 줬다, 라고 모두가 말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은 상황. 누군가는, 혹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어느 누구도 팀장이 나쁜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


 평생 누구를 평가할 생각만 하며 살아온 HR경력 20년의 베테랑은, 자신이 받은 평가에 화가 많이 났다. 그때가 11월, 대충 요맘때였는데, 그는 연말까지 팀원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필수적인 보고만 받았고 연말 회식에도 불참했다. 그리고 다음해 초에는 대부분의 팀원이 교체되었다. 나는 교체되지 않은 유이한 사람이었는데, 그것도 몇 달의 유예에 불과했다. 다음해 여름이 오기 전에 나도 팀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그는 팀원들에게 나쁜 평가를 받은 후, 그 평가자들을 모조리 내보내버린 셈이다. 평가자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이라니, 평가의 위계가 뒤바뀌는 것만으로 힘의 층위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그때 나는 분명히 알았다. 어쩌면 그때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니네가 뭔데 나를 평가해? 감히."



 몇달 전, 국내 최대의 IT기업 K사에서 한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사에 나온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동료들의 평가'였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나에게 던진 냉혹한 평가들. 오히려 위계의 상층부에 있는 몇 명의 권력자가 내린 것들이었다면, 쉽게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텐데. 바로 내 옆에서 서로 웃고 떠들던, 함께 회사욕하던 그들의 차가운 말들이 그에게는, 갑자기 닥친 겨울에 차갑게 얼어버린 얼음조각으로 찌른 듯 아팠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는가'보다, '누구에게 평가를 받는가'에 더 민감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오고, 회사에서도 평가 시즌이 되었다. 조직 문화를 평가하고, 리더를 평가하고, 동료를 평가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평가를 기다린다. 스스로도 너무 잘했다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던 때에는 좋은 평가를 받고도 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게 화가 났다. 딱히 잘한 게 없다고 여긴 때에도, '그래도 중간 이상은 되는 것 같아서' 평가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노동 소득이 무의미할 만큼 자본소득의 가치가 커져버린 시대에, 조직에서 한해 한해 평가를 받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평생 경쟁하고 평가받으며 살아온 우리는,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 때문에 올해도 좋은 평가를 받기를, 최소한 나쁘지는 않기를 바란다.


 올해 처음 도입된 동료 평가제도는 한동안 점심 시간의 화두였다. 필수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보완점' 항목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질책을 칭찬처럼, 칭찬을 질책처럼 쓰는 기술을 머리를 맞대어 연구하고 토론했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평가할 준비도, 평가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상호 감시와 견제 속에 서로를 상처줄 마음이 없다. 내 옆에 앉은 동료를 평가자로 인정할 수도, 내가 그의 평가자임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떠밀려 적어내는 몇 줄의 평가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제도가 정착되어도, 정착되지 않아도 헬일것만 같은 이 시스템의 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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