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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블랙 Mar 02. 2020

<아프리카와, 그리고 상관없는 이야기> -6

와인과 등산

1. 남아공은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다. 국내에는 가성비 좋은 저가의 와인들 몇 개가 잘 알려져 있다.

winery투어를 하면 각 양조장의 와인들을 잘 맛볼 수 있다 하여 아침부터 과음을 시작했다.

함께 다닌 친구들은 워낙에 술을 좋아하여, 얼굴에 함박미소가 가득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해서 20~25잔을 마신다.
야 난 그만 줘 더 못 먹겠어

2. 처음에는 서로 서먹해하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온 친구는 도도하게 흔들리는 차에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세 번째 양조장 즈음 가는 길엔 모두 거나해져서 돼지우리보다도 더 시끄러웠다.

3. 여러 와이너리를 돌아보며 맛을 보았다. 그중 치즈 페어링을 시켜준 곳이 있었는데, 와인보다도 치즈가 기가 막혔다. 좀 사고 싶었으나, 역시 품절이었다.

진짜 기가 막혔다..
착한 어린이는 친구 등 밟는 거 아니에요.

4. 밤에는 새로 사귄 친구 몇몇이 클럽을 가자고 하였으나, 고민 끝에 포기했다. 다음날 일찍 테이블마운틴 등산을 하기로 했기에 밤에 무리하면 가능할 리 없었다. 


5. 남아공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역시 테이블마운틴. 높은 산의 정상이 평평한 테이블처럼 이어져있다. 실제로 그 위엔 여러 편의시설이 있으며, 다양한 야생동물들도 공존한다고 한다. 우리는 사람 몸통만 한 쥐도 보았다.


6. 하필이면 계속 좋던 날씨는, 등산을 하기로 한 날이 되어 구름이 잔뜩 끼었다. 바람도 많이 불어 케이블카도 다니지 않았다. 당초 계획은, 열심히 올라가서 정상에서 멋진 경치를 보며, 아침도 먹고 여유롭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7. 가볍게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산은 매우 험했다. 경사가 매우 높았으며, 한발 한발 올리기가 벅찼다. 재작년에 8시간 넘게 칠레의 파타고니아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도 등산했는데, 이것쯤 대수랴 생각했다가 크게 혼났다. 겨우 도착한 정상은 강풍에 아무 곳도 열지 않았다. 케이블카가 다니질 못하니, 가게를 열 점원이 없었다. 매우 춥고, 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좀 업고 내려가 줄 사람
딱 봐도 가파르다
정 상

8. 내려오는 길은 더 난감했다. 산 중턱을 휘고 지나가며 돌에는 습기가 가득했고, 제대로 된 안전망 하나 없어서 자칫하면 낙사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세 번인가 넘어지고, 두 번 정도 미끄러졌으며, 신발 앞코는 나가고, 멘털은 바스러졌다.

고생만 죽자고 하고, 영 소득 없이 내려왔다.

역시 등산은 친해지려 해도 잘 안 맞는다. 집안 내력인지 온 가족 모두 등산을 싫어한다.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게 더 빨리 내려가지 않을까?


9. 하산 후 시원한 생맥주와 햄버거를 먹고 모든 오후 일정을 취소했다. 넬슨 만델라가 투옥되었던 로빈섬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현장에서 미리 현금으로 티켓을 산 탓에, 전화로는 환불이 불가했다. 티켓 뒷면에는 투어 자체가 취소된 경우를 제하곤, 환불이 원칙적으로 불가하단 안내에 그냥 인당 5만 원씩 하는 표를 포기하고 각자 잠을 자고 책을 읽고 수영을 하며 쉬었다.

살았다


10. 마트에서 새우와 소고기를 사서 오븐에 요리하여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전기가 나갔다. 처음에는 오븐이 전력 소모가 심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케이프타운 전체가 정전이었다. 한 시간 정도 양초를 켜고 식사를 했다. 의외로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친구들과 대화도 즐거웠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주곤 한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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