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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미국 서부에서 만나다-6> 미국식 디테일

유니버설 스튜디오 투어

by 모블랙

LA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자 백미,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동생이 저번에 방문했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일찍 가는 게 좋겠단다. 이제 미국에 온 지 5일 차 정도 되니 시차도 어느 정도 적응한 느낌이 들었다. 멜라토닌이 필요하지도, 아침에 멍하지도 않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유니버설스튜디오까지 가는 고속도로에 약간 정체가 있었다. LA가 교통체증이 심하다지만 서울이랑 비교하면 서울의 평일 밤 수준이었다.


10시에 딱 맞춰 도착하려 했는데, 10분 정도 늦었다. 주차장에 차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다. 주차장은 테마파크와 가까운 거리대로 입장료를 차등해서 받았다. 역시 자본주의의 본진.. 우리는 가장 먼 곳에 주차를 하고 그래봐야 한 10분 정도 걸어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사인의 지구본이 있었고, 너도 나도 그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제일 신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딜 둘러봐도 대기줄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평일에다가, 미국은 학기 중이고, 여행객들은 산불로 LA행을 많이 취소했을 것이고, 여기는 여행객들이 주를 이루는 장소였다. 사람으로 바글바글 한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전세 낸 것 마냥 투어를 하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쪽 공간으로 내려가 슈퍼마리오 존에 먼저 들어갔다. 가장 최근에 생긴 곳으로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이라는 동생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쿠파의 귀여운 석상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마리오카트를 4D로 체험할 수 있는 놀이기구가 등장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나와 함께 마리오카트는 종종 하기 때문에 콘셉트에 익숙했다.

놀이기구가 재밌었냐 물어본다면, 신기하고 아이디어가 좋았다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보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카트를 타기 전까지의 대기줄에 만들어 놓은 일종의 ‘전시’에 있었다.


여태 미국은 디테일보다는 실용 그리고 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은 디테일을 추구하는 방식이 달랐다. 미국식 디테일은 본인들이 창조한 세계에 내러티브를 꼼꼼히 부여하고 최대한 진실처럼 구현하는 데 있었다.

마리오카트 대기줄에서는 카트에 무기로 쓰이는 폭탄, 물방울 등의 아이템이 어떻게 제조되는지를 보여줬다. 진짜 재밌었던 것은 그중 가끔 공정에 불량이 생긴다는 점이다. 자주 나오는 장면은 아니고 잊을만하면 갑자기 빨간불이 번쩍이면서 경고음이 울리고 폭탄이 터진다. 그 순간 지루하게 줄을 서고 있던 관광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다. 나는 유심히 얼마의 간격으로 불량이 생기나 관찰했는데, 규칙성을 발견하진 못했다. 규칙적이거나 너무 자주 불량이 생겼으면 지금처럼 재밌었을까? 내 생각은 아니오에 가깝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그 적정 선,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의 공간들은 말 그대로 <테마파크>였다. 각 테마에 충실해 원작의 공간을 테마파크에 충실히 구현해 놓았다. 점심을 먹는 햄버거집도 심슨에 나오는 그 햄버거 집이었고, 메뉴도 그대로였다. 맥주도 한 잔 먹었는데 메뉴 이름이 만화에서 나오는 이름(duff) 그대로였고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고, 심지어 맛있었다. 그 디테일을 위해 메뉴를 개발하고 딱 거기서만 파는 것이다. 그러니 관광객들 입장에선 진짜 심슨이 사는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받을 수밖에.


내러티브와 디테일이 가장 빛났던 것은 해리포터 테마파크였다. 원작에 나오는 장소와 장면들이 전부 고증되어 있었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마법지팡이 상점이었는데, 점원은 정말 마법사처럼 연기를 하며 관광객 중 어린이를 무대로 불러낸다. 그리고는 이 지팡이 저 지팡이를 쥐어주며 무대효과를 동원해 마법을 실제로 자기가 사용하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에 딱 맞는 지팡이를 손에 쥐었을 때 아이의 표정은…(너무 귀여웠다) 그 순간만큼은 해리포터였다. 심지어 그 지팡이는 해리포터 테마파크 내에 각종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이를테면 잠자고 있는 부엉이에 지팡이를 휘두르면 갑자기 부엉이가 잠에서 깨어나 푸드덕거린다던지..

다시봐도 귀여움..

그 무대가 끝내면 바로 지팡이들이 모여있는 상점의 문이 열린다. 아마 부모가 지팡이를 안 사주면 평생 원망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주는 부모도 너무 즐겁게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기와 강매를 동남아에서 당했던가, 그것과 비교하면 미국식 마케팅은 소비자가 소비를 할 때의 감정까지도 고려하는 수준 높은 방식이라고 느껴졌다.


스튜디오 투어도 정말 재밌었다. 스튜디오 투어는 실제 촬영하는(했던) 스튜디오를 투어버스를 타고 돌아보며 구경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것도 콘셉트이었다. 그런 콘셉트의 별도 테마파크였고, 관람객들은 내가 촬영장을 엿본다는 콘셉트에 흥미롭게 투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꽤나 디테일이 훌륭하다고 느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어디를 가도 대기줄이 없었다. 네시쯤 되니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동생은 예전부터 코리안타운에 아가씨곱창이 가보고 싶었단다. 예전에 갈 때마다 대기가 너무 길어서 실패했다고 한다. 이른 저녁에 방문하니 손님이 거의 없었다. 입구에는 블랙핑크부터 BTS, 각종 연예인들의 사인이 빼곡했다. 고기 자체는 좋았으나, 외국인들 입맛에 맞추느라 소스가 너무 달았다.


다음날은 공항 가기 전 또 근처 한인마을에서 갈비탕을 먹었다.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LA에서 먹은 한식 중 가장 훌륭했다. 거기에 서빙하는 아주머니와 학생과도 밥 먹는 내내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공항 근처 해변을 가서 커피를 한잔 하며 바닷가를 걸었다. 선탠을 하는 사람, 강아지와 조깅을 하는 사람, 비치발리볼을 하는 사람 등 저마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마지막을 좋은 날씨와 함께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비행기를 탔다. 라스베이거스 행 비행기가 두 시간이나 지연되었으나 LA에서 잠깐 지낸 탓인지 별 화도 안 나고 느긋하게 공항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LA는 훨씬 크고 다양했다. 문화의 중심지인 만큼 느낄 수 있는 것도 많았다. 분명 내 삶에, 내 주위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경험들을 많이 한 것 같다. 이래서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이, 개인의 성장에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쬐깐한게 꽤나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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