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형제, 미국 서부에서 만나다-11> 날씨 흐림

먹는 이야기, 날씨 이야기.

by 모블랙

지난 저녁은 새크라멘토 다운타운에 있는 Zolaco라는 멕시칸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이날 점심에 캐서린과 점심을 먹으며 그녀가 추천한 식당인데, 미쉐린가이드에도 소개된 집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해보고 싶었던 위시리스트 중 하나는 정말 맛있는 멕시칸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10년 전쯤 우연히 본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에 매료되어 미국 가면 꼭 ’ 푸드트럭에서 파는 맛있는 타코를 먹어야겠다 ‘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원어 제목은 그냥 CHEF다.

재밌는 것은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푸드트럭에서 파는 메뉴는 타코가 아니라 쿠바 샌드위치다. 그런데 쿠바에는 쿠바샌드위치가 없다. 쿠바는 냉장 및 냉동 유통기반이 없기 때문에, 실제 쿠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시키면 딱딱한 빵 사이에 다 태워버린 고기를 한 장 끼워서 팔 뿐이다. 그 정도로 바짝 익히지 않으면 이미 상하기 직전의 고기는 냄새가 너무 심해 먹지 못했다.


기억은 참 편리하게 왜곡되어, 이번 여행 내내 <아메리칸 셰프에 나오는 것만큼 맛있는 타코>를 먹자며 동생과 아내를 들들 볶았다. 그 지겨운 외침에 함께 Zocalo에 가 준 것이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Zocalo는 완전 인기 많은 현지인들의 식당이었다. 그 큰 식당이 만석이었고, 한쪽 구석에선 누군가의 생일파티가 흥겹게 벌어지고 있었다.


기본메뉴로 나오는 나초와 dip이 끝내줬다. 우리나라의 식당을 다니다 보면 밑반찬만 먹어보면 맛집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잘하는 멕시칸 레스토랑은 나초와 dip을 어떻게 내주는지에 따라 판가름 나는 듯싶었다.


메뉴들이 비싸지도 않고, 양도 많고, 드디어 내 인생에서 제대로 된 멕시칸을 먹어볼 수 있었다. 푸드트럭도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그대로 남았지만..

새크라멘토는 과거 서부개척 시대의 기차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주도가 새크라멘토이다. 그 역사적 유산을 기려 올드새크라멘토라고 불리는 길은 그 시절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전하여 예쁜 상점가가 즐비해 있는데, 우리가 간 시기는 시간도 늦고 시즌도 지나서 대부분 닫아서 아쉬웠다.


다음날은 일찍부터 짐을 싸 NapaValley로 향했다. 세계적인 와인 산지인 나파밸리에서 와인을 한 번 먹어보고 싶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에 동생이 이전부터 나파는 한 번 가보자고 했다.


귀국을 앞둔 동생이 짐을 정리하고 현지에서의 지인들과 시간을 편하게 보내게 하려고 나와 아내는 데이비스에서 일정을 하루 줄이고 따로 차를 렌트하여 나파로 향했다. 중간에 점심으로 고속도로 근처 플라자에서 파이브가이즈를 먹었는데, 고기와 빵 말고 다른 재료들은 원하면 공짜로 추가해 주는 방식이었는데 그걸 몰랐다. 그래서 plain으로 달라고 했더니 빵이랑 고기랑 치즈만 줘서 그대로 먹었는데, 예상외로 진짜 맛있었다. 내 생각에 미국 햄버거 체인 중엔 fiveguys가 최고인 것 같다. 그다음이 인 앤 아웃, 그다음이 쉑쉑 정도?


렌트비와 숙소 차액을 생각하면 나파밸리로 일정을 변경하며 거의 40만 원 정도를 더 지출한 셈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흐린 날씨덕에 아무 감흥도 받지 못했다.


아내가 술을 먹지 않아 유명한 와이너리까지 가긴 했지만 나 혼자 와이너리 투어를 하기도 좀 애매했고, 날씨도 흐려서 와인을 혼자 홀짝거릴 기분도 아니었다. 이전에 남아공에서 했던 와이너리 투어가 정말 재밌었는데, 생각해 보니 와인도 와인인데 날씨도 좋고, 함께 동행했던 친구들과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웃고 떠들어서 그랬나 보다.

나파 다운타운으로 와서 구경을 조금 했는데 딱히 흥미는 못 느꼈고, 저녁으로 근처 safeway에서 라면과 김치를 사서 식비라도 아껴보려 했으나, 맛없는 김치와 물조절을 실패한 라면 탓에 입맛만 버렸다.

룰루레몬에서 바지는 하나 득템했다.

나파에서 저녁시간 대부분은 글을 쓰며 보냈고, 아내는 중증외상센터를 한 회를 보더니 “어머 이건 너무 재밌어서 아껴봐야 돼”라더니 3화까지 열심히 보다 스르르 잠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Burlingame으로 향했다. 남은 5일간의 미국 여행은 동생 여자친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 그녀는 영상통화를 통해 먼저 우리에게 지내라며 제안해 주었다. 그녀의 화법은 정말 배울 점이 많았다. 우리가 집에 있으면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 분명한데도 “집에 사람이 없으면 쓸쓸해서요, 제가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요 “라며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고려했다. 그 이후에 여러 대화를 통해 늘 그런 화법을 구사한다는 것을 느꼈고, 그 배려심은 꾸며내지 않은 착한 심성에서 기인함이 분명했다.


아내와 결혼한 지 곧 3년이 되어간다. 우리는 크게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내는 늘 나를 치켜세우지만, 나는 그것이 내 예민하고 강한 주관을 늘 아내가 부드럽게 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위에 결혼을 하지 않은 지인들에게도 “착한 사람이 무조건 최고다. 작은 것은 안 맞더라도 성격이 맞으면 다 극복할 수 있다”며 결혼에 대한 지론을 밝혀왔다. 실제로 나와 아내는 공유하는 취미가 단 하나도 없음에도 아주 사이가 좋다. 그런데 동생의 여자친구도 그런 사람인 것 같아서 마음이 참 좋았다.


어쨌거나 평일이라 바쁠 텐데도, 그녀는 우리가 렌터카를 반납하는데 본인 차를 끌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일찍 나오시느라 커피 아직 못 드셨죠?”라며 스타벅스에서 to-go해온 커피와 함께. 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약속 시간보다 40분이나 늦었는데도 그녀는 짜증 난 기색조차 없었다. “어차피 재택으로 일 하는 날이라, 차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대답도 곁들였다.


그녀는 집으로 안전하게 우리를 데려다 놓은 뒤, 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두 시간 거리였다. 동생은 오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짐을 모두 챙겨 그녀의 집으로 합류한다.


나와 아내는 따뜻한 환대에 편안함을 느꼈다. 남은 미국여행은 샌디에이고처럼 다시 넷이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재밌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형제, 미국 서부에서 만나다-10> 캠퍼스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