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이 어머님'명찰을 찬 아빠들
상담하는 아빠는 육아휴직 중(168일) - 37.
'고객님께서 육아를 하세요?'
한 달 전쯤이다. 숲이가 태어나고 숲이를 돌보다 보니, 5개월 정도 이발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시간을 내면 낼 수 있었으나 이상스럽게 여유가 없었다).
완전 더벅머리상태로 미용실을 갔고, 미용사 선생님께 5개월 정도 못 자른 상황이니 자연스레 커트를 요청했다. 그때 미용사 선생님의 첫마디가 '출장을 길게 다녀오셨나 봐요'였고, '신생아가 태어나서요. 아이 보다 보니 정신이 없네요'라는 나의 답에 약간 놀란 눈치로 이야기한 것이 바로 '고객님이 육아를 하세요?'였다. '네 육아휴직 중이에요'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쳤지만 우리는 그 후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물론 미용사 선생님의 '고객님이 육아를 하세요?'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빠가 육아라니 대단하시네요'라는 긍정의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아빠가 육아를 해요?'라는 놀람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으며, '아빠가 육아를 하다니, 무슨 사정이 있으세요?'라는 의문의 의미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해도 분명한 것은 아직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것을 '익숙지 않아'하신다는 거였다.
비슷한 일들은 이미 육아휴직을 예고할 때부터 많이 겪었다. 다행(?)스럽게 저출생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다루면서 근 1년 사이에 그 의식이 정말 많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어제 숲이 어린이집 설명회를 갔을 때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육아와 직결된 어린이집에서도 아직 이렇구나'라는 생각에 이 주제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어린이집 설명회를 갔는데, 참가자들 명찰이 준비되어 있었다. 명찰에는 입소 아이들의 이름과 함께 '어머님'이라는 글들이 일괄적으로 쓰여있었다. 우리의 명찰은 '숲이 어머님'이었다.
반면 설명회에 참가한 아버님들의 수는 4명이었다. 참가한 총 가족수가 9 가족이었으니 적지는 않은 수였다. 심지어 1명의 아버님은 어머님 없아 혼자 오셨다.
자리가 협소해서 가족당 1명만 설명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안내를 당일 도착 후 받았고, 우리 가족은 초반부는 아내가 설명을 듣다가, 본격적인 내용이 나올 때는 교대로 내가 설명을 들었다. 즉, 혼자 오신 아버님 한 분과 나는 'oo이 어머님'이라는 명찰을 차고 설명회에 참석해야 했다.
설명회 도중 원장님은'아버님들도 요새는 어린이집 행사에 많이 참여하세요'란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오늘 참가한 아버지들만 봐도 그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소개하기 위한 자료집의 부모참여 행사 파트에는 '어머님들의 사진만 있을 뿐 아버지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육아의 시작즈음 가장 강력한 하나의 축을 형성하는 어린이집에서 조차 '아빠의 흔적'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빠가 육아를 하기 위한 사회적 인식도 분명 많이 좋아졌고, 제도 또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묘한 기분이다. 이게 무엇인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이 있다.
집안일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엄마들이 직장생활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초장기에 이러한 느낌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이상한 결론이지만) 물론 나는 사회적 분위기를 크게 고려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지금 숲이와 함께 지내는 내 삶 또한 나만의 기준안에서 가족과 함께 논의하고 함께 준비해서 결정한 삶이기에, 아빠 육아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에 대한 관심이 많을 뿐, 그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집 설명회에서 명찰이 'oo 어머님'으로만 만들어져 있는 것들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이래서 아직 우리나라는 안된다!'라고 말할 생각은 하나도 없다.
내 가슴팍에 '숲이 어머님'이라고 적혀 있는 명찰이 달려있는 게 무슨 대수 인가,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아내, 숲이, 나 이렇게 우리 가족이 웃으며 함께 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