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가난하고 우울한 상태 혹은 기억은 아무것도 가진 것도 기댈 것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좋은 원동력이다. 아니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가장 효율적인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좋다고 말하기 힘든 이유는 그 원동력의 기반이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것에 있다. 물론 실력 향상 혹은 무언가의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채찍질 흔히 '갈굼'이라 표현하는 것만 한 게 없다. 하지만 이는 좋은 추진력은 아니다. 실력 향상이 이루어질수록 인간성이나 사회성 그리고 건강 등에서 부정적인 변화가 초래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첫째로 인간은 유한한 체력을 가진 즉,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긴 시간 동안 무리하게 버티다 보면 어딘가 곪아 터지게 된다. 두 번째로 갈굼의 상태(가난한 상황도 일종의 갈굼의 형태라고 생각한다.)에 놓이게 되면 자신을 책망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게 되고 이 과정을 버티기 위해 자신 혹은 남을 비하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무언가에 몰입하면 외부와의 단절이 이루어지게 되고 결국 인간관계나 소통 그리고 자신의 내외적 성장 등에서의 성장이 더뎌지게 된다.
그렇지만 목표 하나만 딱 놓고 본다면 힘들고 가난하고 우울한 상태는 최적의 상태이다. 간절함 그리고 절실함도 최고치인 상태에서 외부와 고립된 자신만의 공간에 놓여있다는 것은 내공을 쌓는데 최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 경험 자체도 뻔한 스토리가 아니기에 자신만의 색깔로 키워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난함과 우울함에서 오는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배경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 가난하고 누군 부유하다. 그리고 어떠한 정점에 오른다는 가정 하에 이 두 배경은 다른 색깔의 사람을 키워낼 것이다. 부유한 사람은 보통 밝은 기억을 통해 밝은 이미지에서 미세한 감정을 드러낼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보통 어두운 이미지에서 세심하고 깊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과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경험의 힘은 그 경험을 해보지 않는 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가난한 이가 부자를 동경하듯 부자도 가난한 이를 동경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부자 체험을 하기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부자는 가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너는 내 것을 뺏을 수 있지만 나는 네 것을 뺏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가난 체험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 절실함을 키우기 위함이다. 그러니 가난에서 단물만 빼서 떠나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것은 지속적이고 오랜 기간 사람을 서서히 갉아먹는 기생충 같은 것인데 그런 면은 느낄 새도 없이 잠깐 가난하고 끝나는 것이다.
가난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래서 힘들다. 사람이 우울해지고 부정적으로 변하며 침울한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얼마나 괴로운 것인데. 심지어 그 속에서 얻은 감정들은 이후 삶이 안정적으로 돌아와도 뗄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된다. 그렇기에 가난을 체험한다는 말이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가난해볼 만하네'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그것은 참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가난을 체험한다는 행위가 가난한 이를 더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는 일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