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버지 Jul 02. 2024

나도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은 줄 몰랐어

미안해

  날이 많이 더워지면서 함께 올라가는 것이 불쾌지수다. 회사를 다닐 때는 주로 차로 출퇴근하면서 자동차 에어컨 바람, 회사의 냉방시스템 덕분에 그렇게 덥다는 느낌을 못 받고 여름을 났다. 주말 야외 외출 때 좀 짜증이 났을 뿐 대부분 짜증도 별로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비가 오지만 요즘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과 매일 직행하는 놀이터에서 함께하는 시간 동안 숨이  막힐듯한 더위를 느낀다. 더워도 노는 게 더 즐거운 딸은 같은 어린이집 친구를 만나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논다. 나는 행여나 다칠까 쫓아다니며 몸에서 육수를 한 바가지 쏟아낸다. 한동안 흘려보지 못한 땀을 아이 덕분에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부터 흘리다 보니 아이가 조금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 엄근진 표정과 함께 낮지만 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 무서워~ 싫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림] 삐지고 놀이터 바닥에 눕고 오르다

  물론 더위가 나를 그런 아빠로 만들기도 하지만 더워지기 전부터 순간순간 '욱'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럴 때면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기도 했고, 괜스레 겁먹을 만한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물론 그런 짓을 하고 나서 30초도 안되어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무섭다며 우는 아이를 다시 토닥이며 '잠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지만, 그런 행동과 후회가 계속 반복되는 걸 보면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나도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은지 몰랐다.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동안 표가 나를 허허실실 웃으며 화도 안내는 인기관리 임원이라고 악평했던 적도 있었으니ㅎㅎ 생각해 보면 회사를 다니며 크게 화를 낸 적이 없는 것 같다. 큰일이 생겨도 해결을 위한 방안과 실행이 먼저라 생각해서인지 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육아만큼은 순간의 감정을 참아내기 힘든 건 왜 그런 걸까?


가정 1. 쉽고 빠른 통제를 위해

  다섯 살 아이가 한 번 이야기해서 바로 그 말을 들어줄 확률은 매우 낮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쉽고 빠른 통제라는 생각하에 일단 큰소리를 버럭 질러본다. 순간 아이는 멈추고 아빠의 표정을 살핀다. 더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무서움에 도망가거나 울음을 터트린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창피한 행동이다. 만약 아이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중했더라면 그렇게 했을까? 아이는 아직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 재밌는 것,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의도치 않은 실수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걸 아빠란 사람이 못 참으니... 부끄럽다. 윽박지르기 전 한 번만이라도 다섯 살 아이의 본능적인 행동을 이해하면 좋으련만.


가정 2. 화는 더 많은 화를 증폭시킴

  화를 냈더라도 다시 정정하거나 아이를 다독여 행동을 개선시키려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화를 한 번 내면 그 화가 더 큰 화를 만들어 낸다. 큰소리를 치는 내 행동이 내 신경들에게 더 화를 내라고 호르몬을 분비를 촉진시킨다. 그리고 정말 잠깐이지만 내 화에 굴복하는 아이를 보면 살짝쿵 승리감 또는 쾌감느낄 수도 있다. 와.. 정말 너무 비겁하고 창피하다. 글을 쓰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결국 이러한 나의 행동으로 아이 스스로 깨우침을 얻어낼 수 없는 건 자명한 일. 결국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같은 내용의 반복일지라도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시켜 노력했어야 한다. 그걸 포기하는 부모는 절대 정신이 건강하지 못할 것이며 그런 행동을 보고 자란 아이는 똑같이 화를 자주 내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아이의 어떤 행동에라도 화를 내고 나무라는 것만으론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나 자신을 성찰해야만 한다. 아마 성찰만으로는 힘들 것 같다. 어떤 반복된 행동이 개선되기 위해선 이해와 성찰도 중요하지만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해 본 장치는 다음과 같다.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떼를 쓸 때


1. 행동 자체의 옮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잠시 시간을 두고 아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생각다. 그리고 아이에게 질문을 한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혹은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


2. 아이는 생각하려 하거나 무턱대고 짜증을 부릴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잠시 기다려 본다. 그러면 아이는 분명 자기의 행동에 반응이 없으니 쳐다볼 것이다. 그때 다시 한번 괜찮은지 물어본다. 아마 차분한 대응에 아이도 조금 차분해질 수도.


3. 좀 진정이 되면 아이는 자기의 기분을 말하거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때 그것에 공감해 주거나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는 것보다 잠시 멈추는 게 왜 나은지 설명하려 하거나 아이에게 동의를 구해 본다.


4. 만약 아이가 요구에 응해주면 고맙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고 계속 칭얼대면 일단 아이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안아 주거나 눈을 보고 웃어주고나 공감의 말을 조금 더 던져본다.


5. 마지막으로 아빠의 감정도 전달해 보고 다음번엔 조금 다른 행동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하고 상황을 종료시킨다.


  글을 쓰고 나니 조금 놀랐다. 평상시 생각했던 것도 아닌데 글이 생각한 것보다 술술 나와서. 아무래도 내가 아이라면 이렇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썼기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그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노력해보려 한다. 온전히 아이를 위해? 아니 아이와 나를 위해. 저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또 그게 아이 그리고 나,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되겠지.


  오늘 하루도 육아대디로서 성장에 한 발자국 더 내딛는 중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육아. 세상의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계신 모든 분들 파이팅!



  

이전 01화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