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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Jun 25. 2024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

다 큰 줄 알았는데...

  40대 중반. 거침없이 달려온 내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우연 또는 필연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상향 직진인생이 멈췄다. 20대 중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자영업에서 대기업으로 그리고 창업 후 접고 다시 대기업으로 그리고 스타트업, 마지막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그리고 창업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크고 작은 성공 그리고 실패, 팔로워부터 리더까지 모두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사회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을만한 위치로 보였고, 그 사이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결혼 후 6년 만인 40살 가을 어렵게 예쁜 딸아이까지 얻었다. 그럭저럭 나는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성격 덕에 아니다 싶으면 미리 차단하고 나름 사람을 좀 볼 줄 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현재 백수가 되기 전 원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은 동업이라는 걸 결정하고 추진하다 암초에 부딪혔다. 결국 믿었 동업자와 생각의 차이가 생겼고(그분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공동창업이 결렬되며 한동안 모으던 원기옥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 같았으나 괜찮은 척하며 붕 뜬 상황에 마치 표류한 난파선이 되었다.


  처음엔 동업을 시작한 후 문제가 되었으면 더 큰 일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엔 괜찮지가 않았다. 늘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았는데 이 번엔 아니었다. 결국 정신이 문제가 생기니 그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던 비루한 몸이 아팠고 한 달 가까이 난 백수로 지내며 다섯 살 딸아이를 동시에 돌봤다. 그래도 가장이 이러면 안 되지 하면 그 와중에 새롭게 무엇을 해보려 아등바등 대어 봤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다시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기에 취업전선에도 뛰어들지 않았다. 와중에 지친 나를 돌봐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당연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회사를 다니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이  날 지켜 준 것이다. 문득 '올 한 해를 저들을 위해서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착하고 현명한 아내의 응원과 천방지축 딸의 아빠에게 보여주는 행복한 표정이 승인도장을 찍어 주었다.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기 시작한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원래 가사는 20대 중반부터 해왔던 자취생활 덕분에 아내보다 내가 훨씬 더 전문적(?)인 사람이었다. 이젠 시간과 여유가 생기니 요리부터 집안정리까지 관련 아이템을 하나 둘 늘려가고 사용해 가며 준프로 주부가 되어가고 있다. 청소기와 주방도구를 검색하는 남라고 표현하면 더 와닿지 않을까 싶다. 요새 아내는 밖에서 먹는 밥보다 집에서 먹는 밥이 더 맛있다고 할 정도이니 조금씩 프로주부의 반열에 들어서지 않을까?

아빠는 요리사.. 그간 만든 요리 사진 일부 of 일부

  중요한 건 육아다. 어차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다니는 동안에 사전협의로 유연한 출근을 하였기에 원래 하던 등원준비와 등원에 앞으로 하원과 아내 퇴근 전 함께 놀이하는 시간 정도만 더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심지어 시간도 많으니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아이랑만 외부활동을 같이 해야지라는 야심 찬 포부도 있었다. 그러나 육아는 회사생활 보다 약 2.6배는 더 힘들었다. 회사는 목표, 계획 등에 의해 앞날을 예상하거나 바꿔갈 수 있었는데 육아는 하루하루 변수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아프고, 한 살 더 먹어감에 자기주장이 더욱 세지며 신체적으로 발달함에 밖에 나가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에 항상 사로잡혀 있다. 나름 쉽게 생각한 나의 육아대디 초창기는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나도 아픈데 아이까지 아픈 상황까지 겹치며 '삼재인가?'란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가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감동적인 말과 말도 안 되는 천진난만한 행동이 나를 살려냈다. 그렇게 6개월을 찐육아를 경험하며 느낀 점 그리고 내 삶을 되돌아보는 글을 남겨보기 위해 이렇게 연재를 시작한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느낀 건 그 자체가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새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본인의 스케치북에 따라 그린다. 그리고 '잘 그렸지?'라며 늘 다시 보여주는데 그때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라고 반성하게 되고, 어쩌다 칭찬할 일이 생기면 '그래그래 우쭈쭈 잘한다 역시 날 닮았어'라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결국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아이는 세상에 바로 설 확률이 줄어든다. 내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를 더 사랑할 수 없고, 그런 아이는 안정감을 가질 수 없다. '나는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이를 키우며 난 더 성장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 한 해를 내심 안식년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와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 채울 예정이다. 경험상 성장의 기록은 남겨두는 게 내 삶의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나 또한 이런 좋은 기회를 잘 살려 보아야지.


  주말육아를 마치고 야심한 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나의 정신과 육체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의 생각과 나누고픈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전달할 것이다. 오늘 하루도 육아에 최선을 다한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 모두의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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