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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Apr 29. 2023

노가다는 나의 벗

강릉 산불, 임업 기계훈련원 교육 참가


세상에 보고만 있어도 좋은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 하루하루 색을 입어가는 '초봄의 산' 즉, 사월의 절기 '청명'에서 '곡우'에 이르는 연두 물빛은 압권이다. 이 좋은 계절, 무심하게도  관청에 소속을 둔 기간제 근로자 몇몇 집단은 의무적으로 '직무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이름하여,산림 바이오매스 수집단 기술교육으로, 강릉 임업 기계훈련원에 입소하여 일주일 합숙 교육.



 올해는 4.10(월)~4.15(금)까지 교육. 교육과정은 임업 일반론, 임업 용어 해설, 숲 가꾸기 작업 기술, 기계톱 정비 및 벌목작업, 집재 기술, 안전사고 예방 등으로, 대략 오전 수업은 이론 및 강의, 오후 수업은 실습 위주로 진행되었다. 신참들은 그런대로 새로운 소식이라 똘망 똘망 하루가 짧았던 반면, 십수 년째 참가하는 고참들께서는 일주일이 길고 긴 고행 길. 그도 그럴 것이, 수년 전 교재와 비교해, 별반 개정판 흔적이 거의 없는 자료이다 보니, 식상한 강의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릉 임업 기계훈련원은 1982년 한국과 독일 산림 경영 사업에 관한 협력 사업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 기념으로 독일에서 공수한  참나무 묘목이 식재되어  본관 마당 잔디밭 한편에 심어져 있는데 대략, 키는 20미터, 가슴둘레 50cm의 우람한 성목으로 자라났다. 아직 새순이 나오지 않은 이 참나무의 자태를 감상하면서, 고참들은 이 참나무의 도토리는 국내산의 거의 두 배 정도로 크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신참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 참나무의 도토리는 어떤 게 가장 맛이 있을까요? 참고로 참나무는 형제가 6형제 모두 참나무라 불리지만, 제각각 이름이 있다. 신갈, 떡갈, 졸참, 갈참, 굴참, 상수리나무가 그것이다. 그중 가장 맛이 있다는 도토리는 졸참나무라 하는데, 그 도토리는 작지만 떫은맛이 강하고 야무지다고 한다. 그럼 독일 참나무의 맛은 어떨까요??  크리미한 버터 맛이라고 우긴 대답이, 정답이 되었다. 사실 누구도 그 맛을 본 적이 없으니 애초부터 오답은 없는 셈이다. 



그렇게 시작한 교육이 막 본격화되기도 전 4.11(화요일) 새벽, 안전 문자가 뻔질나게  날아들더니, 급기야 초속 30m의 강풍경보가 발령되면서 훈련원 내의  온갖 나무들도, 육중한 몸을 이리저리 가누지 못하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그 와중, 강릉시 난곡동 경포대 일원 산불 확산 중이라는 소식이 들어온다. 익히 알려진 대로, 산불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지고, 교육장에서 십수 킬로 떨어진 경포 해안가의 검은 연기가, 연곡면 진고개까지 날아오는 형세가 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교육이 제대로 될 리는 없는 가운데, 점심이 지나고 오후 시간이 되어도 강풍은 지칠 줄 모른다. 오후 3시 정도로 기억한다.그렇게 심술궂게 날뛰던 강풍이, 어디서 몰려든 구름 덩이가 갑자기 비를 쏟아내면서, 순간, 강풍이 힘을 잃었다. 이 무슨 조화일까, 그 잠깐 바람이 멎는 순간, 산불 진화용 헬기가 물을 쏟아붓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진화대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산불을 제압했다. 그리고 언제 그랬나 싶게, 동쪽 하늘에 무지개까지 띄웠다. 참말로 모를 일이다. 그렇게, 교육이 종료되고,에둘러,경포대 산불피해 지역을 둘러보았다.산불이라기보다는 융단폭격에 가까운 파괴 현장에서 망연자실, 자연의 심술 앞에 거듭 겸손을 배우고 떠난다.  






한때 나의 벗, 한국어 교원 자격 고시용 책자

침대 밑 책장 속에 처박아 두었던 교원 자격 고시용 책자들을 가지런히 단장시켜, 마지막 기념 촬영을 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폐지 더미에 쏟아부었다.  책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소리는, 달리 말해 이제 그곳과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와 함께, 다시는 볼 일이 없다는 강한 이별이 내포되어 있음이다. 시간을 돌려 보면 그 사연이 보인다. 2012년 1월 네팔 안나푸르나 봉 일원에서 함께 고락을 했던 가이드 청년 (이름은 기억할 수 없다 )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내 기어코 한국어 선생이 되어 네팔에 너를 만나러 오겠다는 간절한 염원으로 시작한, '한국어 선생 프로그램'에 역마살을 합성하니 타이에서 2년, 몽골에서 2년을 한국어로 우려먹었다. 뭐, 그런대로 본전은 챙긴 셈이다. 아쉽다면, 그토록 염원하던 파미르행 역마는, 범유행전염병 코로나에 발목이 잡혀, 수년을 겨우, 마스크에 의존해  살아남은 것에 감지덕지하며 세월을 탕진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코로나 생활지원금으로 쇠고기 대신, 독일 명품 고산용 등산화 MEINDL(마인들)을 입양해, 수년째 길들이기에 공을 쏟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아직도 그곳을 꿈꾸느냐고  묻는다면, 염치없지만 이렇게 노래하겠다. 아주 먼 훗날 그때 그 아인, 꿈꿔왔던 모든 걸 가진 거냐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 '그때 그 아인' 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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