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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Sep 01. 2023

치앙마이 한 달 살기 - 프롤로그(1)


 때는 바야흐로 2023년 8월 14일 월요일. 이 날 오후, 무더위와 씨름하다 우연히 든 생각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되었다.


 꽤 긴 시간 동안 준비하던 것들이 뭉개지고 엎어지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헤매고 있을 때,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엇인가가 과연 무엇일까. 다양한 무엇들을 떠올렸지만, 가장 구미가 당겼던 '무엇'은 이전부터 꿈꿔왔던 해외에서의 한 달 살기였다. 일단 이 숨 막히고 지긋지긋한 자취방과 따분한 동네, 답이 안 보이는 고민의 늪에서 최대한 빨리 그리고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게다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국의 낯선 땅에서 이전까지 해볼 수 없었던 경험을 하며 뭔가 조금은 달라진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럴듯한 이유도 덧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 달 살기는 '언젠가는 한 번 해봐야지' 하고 가슴 한 켠에 고이 모시고만 두었던 꿈이자 로망이었다.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면 그게 꿈이자 로망이겠는가. 이전에는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낼 엄두가 안 났다. 금전적으로도 부담스러웠다. 거기다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잘 살아왔던 이 나라 밖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이 나에겐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지금의 나에겐 얼마 정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약간의 여유 자금이 있었고, 평소에는 내기 힘든 용기를 낼 수 있는, 아니 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때문에 그냥 눈 딱 감고 '그래 가자' 하고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적기였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게 바로 그 눈 딱 감기였다.


 갈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에 조금 더 쉬운 것부터 하기로 했다. 해외 어디에서 한 달을 살 것인지 정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은 무라카미 하루키의『댄스 댄스 댄스』와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며 죽기 전에 반드시 가보고자 결심했던 하와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비싸 도저히 갈 엄두가 나서 않아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낭만적인 해변이 즐비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서퍼들이 가득한 발리는? 멀기도 꽤 멀고 혼자 가긴 조금 그래서 여기도 탈락이었다. 그렇다면 저렴한 물가와 볼거리, 먹거리 풍부한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 치앙마이는 어떤가? 가는 방법도 쉽고, 비용도 크게 안 들 것 같으니 일단 괜찮아 보였다. 그 외에 다년간의 풍부한 여행 유튜브 시청 경험으로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오키나와 등 다른 후보지들도 떠올랐지만 치앙마이만큼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치앙마이는 한국인들에게 한 달 살기 장소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인터넷상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매우 풍부했다. 유경험자들의 생생한 정보를 유튜브, 블로그, 카페 등 어디에서나 쉽게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관광 대국인 태국이란 나라도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다. 수도인 방콕도 좋지만 너무 붐비고, 정신없으며 비교적 물가도 높아서 나의 한 달 살기 취지와는 맞지 않았다. 치앙마이는 도시가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 방콕에 비해 조용하고, 풍경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하다고 하니 만약 한 달 살기를 하게 된다면 치앙마이에서 하고자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이후 내가 한 것은 모든 해외여행의 시작이자 끝인 항공권 가격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스카이스캐너로 부산발 치앙마이행 항공편을 검색해 봤는데 아쉽게도 가까운 시일 내에 출발하는 직항 편이 없었다. 도착지를 방콕으로 바꿔서 검색해 보니 제주항공에서 운항하는 노선이 대략 30만 원 초반대에 판매되고 있었다. 극성수기 항공권 가격이 50~60만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방콕발 치앙마이행 항공편은 4만 원 초면 예약할 수 있었다. 조금 번거롭긴 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한 것은 한 달 동안 지낼 숙소의 종류와 가격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숙소 종류는 호텔, 콘도, 펜션, 레지던스에서 한 달 단위로 계약하고 그 기간 동안 쭉 사는 것과 호스텔, 호텔, 에어비앤비 등 다양한 숙소들을 옮겨 다니며 지내는 것이 있는데 이 중에 본인이 원하는 것으로 선택하면 되고, 가격대는 위치나 시설, 규모 등에 따라 20만 원대에서 수백만 원대까지 매우 다양했다. 대충 궁금증은 해결했으니 어떤 숙소를 선택할지는 추후에 확실히 결정하고 정하기로 했다.


 한 달 살기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은 대충 습득했으니 나머지 자세한 것들은 차차 알아가면 되는 것이고, 준비도 결정한 뒤 하면 되는 것인데 가장 큰 난관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 지금 내 사정이 좋거나 여유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와중에 해외 나가서 한 달 넘게 지내다 온다? 가족들 입장에선 당연히 환영할 수 없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알리지 않고 떠나자니 해외 로밍을 한 달 내내 할 수도 없고, 자식이 갑자기 전화가 안 되니 무슨 일인가 싶으실 텐데 적당히 둘러댈 말도 떠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이 고민과 함께 정말 이 상황에 한 달 살기 하러 나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만 며칠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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