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의 어느 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비닐하우스 화원에는 온돌을 깐 작은 방이 있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집에 들어가는 대신 이 방에서 생활하길 선호했다. 집은 화원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 위치했는데, 귀가 시 아무도 없는 싸늘한 아파트를 데우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차 기름값도 아끼고 보일러 비도 아낀다며, 아빠와 화원에서 겨울을 났다. 엄마는 이를 ‘겨울 합숙 생활’이라고 불렀다. 올해 초,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간 나도 예외 없이 화원의 작은 방에서 ‘합숙 생활’을 했다. 샤워기 없는 화장실에서 큰 양동이에 끓인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지만, 종일 부모님 옆에 붙어 있을 수 있어 마냥 좋았다.
합숙 생활 중 어느 한 밤의 일이다. 아빠는 모임으로 외출을 하셨고, 나는 엄마와 작은방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혹시라도 여자 둘이 있는 방에 무슨 일이 날지 모른다고 방 문을 잠가 놓았다. 머지않아 희미한 노크 소리에 수줍은 “열어주세요-“가 들려왔다. 아빠였다. 방문을 열자마자 찬바람과 술 냄새가 들이닥쳤고, 모녀 간의 아늑한 분위기는 깨졌다. 거나하게 취한 아빠는 심히 기분이 좋아 보였고, 견과류에 대한 뚱딴지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선물 받은 그 견과류 봉지... 맥주랑 같이 먹으면, 그리고 그 봉지 안에 과일도 있고 맛있잖아!, 아니 나는 견과류가 아주 그냥...” 가져와서 드시라는 엄마의 말에 꿈쩍 않는 아빠는, 견과류에 대해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아빠의 술주정에 못 이겨 견과류 봉지를 가져오신 엄마는 마치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던지듯 아빠를 향해 땅콩, 아몬드, 건포도 등을 던졌다. 아빠는 기분 좋게 입으로 견과류를 받아먹으셨다. 둘은 되게 즐거워 보였는데, 나한텐 좀 황당한 광경이었다.
엄마와 나는 바닥에 깐 이불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 동안 아빠는 엄마 옆에 누워 계속 말을 걸었다. 자기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방금 다녀온 노래방에서는 팔십 팔 점밖에 받지 못했다고. 나는 아빠가 어서 잠들기만 간절히 바랐지만, 엄마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아빠의 헛소리에 참을성있게 대꾸했다.
갑자기 엄마가 나에게 노래를 한 곡 하라고 시켰다. 두분의 즐거운 분위기에 섞이지 못 한 나는 엄마의 제안을 새침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엄마는 아빠에게 노래를 부탁했고, 아빠는 곧장, 뻐꾹 뻐꾹으로 시작하는 귀여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주크박스라도 되는 마냥 바로 재생되는 음악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아빠의 노래는 진지하게 이어졌다. 기분에 취한 아빠는 어색한 기색 하나 없이 노래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고, 엄마와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조용히 노래를 들었다. 작은 방에 나란히 누워 있던 우리 세 가족에게 갑자기 찾아온 특별한 순간이었다.
나는 아빠께 구십팔 점을 드렸다. 그는 ”무슨 구십팔 점이야, 팔십이 점밖에 안되지”라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아빠 이제 노래도 부르셨으니, 조용히 견과류에 관한 시를 쓰면서 주무시면 되겠어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곧장 진지한 태도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노래 한 곡으로 족한 밤이었고, 엄마와 나는 아빠의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화원의 작은 온돌방, 바닥은 따뜻했고, 엄마가 빨아 놓은 집이불은 보드라웠다. 아빠가 아무리 심하게 코를 골아도 괜찮았다.